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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연 Nov 10. 2022

애가(哀歌), 혹은 기도문처럼. '와칸다 포에버'

숨기지 않는 채드윅 보스만의 빈자리

 20세기 말, 미국 블랙 컬처의 정신적 지주라고 평가받는 인물은 덴젤 워싱턴이다. 지적인 이미지로 인종을 불문하고 사랑받은 배우였고 흑인 문화를 위해 물적 기부를 주도해왔던 인물이었다. 그의 선한 영향력 아래 자라난 차세대 배우 중 하나가 채드윅 보스만이다. 그래서 그가 블랙 팬서를 연기한건 특별하다. 미국사회에 자리잡은 흑인들이 소실한 흑인들의 고대문화를, <블랙 팬서>는 최첨단 기술을 지닌 강대국으로 은유하고 이를 대표하는 인물을 블랙 팬서로 상정했고 이는 덴젤 워싱턴의 후원을 받고 그 정신을 이어나갈 적자가 채드윅 보스만처럼 보였기 떄문이다. 영화가 개봉한 후 사람들은 '와칸다 포에버'를 연호했고 채드윅 보스만은 현 흑인문화의 얼굴로 떠올랐다. 물론 그는 그 역할을 해낼 만한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덴젤 워싱턴과 채드윅 보스만




 그랬던 그가 대장암으로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당황스러운건 마블스튜디오였겠지만 가장 놀랐을 사람은 라이언 쿠글러 감독이었을 것이다. 흑인 중심 영화를 제작해온 그에게 채드윅 보스만은 미국 흑인문화를 대표할 인물이자 대체불가능한 배우였기 때문이다.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는 헐리우드에서 가장 거대한 프렌차이즈 영화에게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 주어진채로 제작해야만 하는 비운의 영화가 되어버렸다.

영화는 채드윅 보스만을 대체하지 않았다. 비슷한 외모를 지닌 배우를 캐스팅하지 않았고, 그의 외형을 CG로 구현하지도 않았다. 이는 '블랙 팬서 = 채드윅 보스만' 이라는 이미지를 유지하면서 고인이 된 그를 추모하기 위한 선택이다. 그렇다면 블랙 팬서 그 자체였던 인물을 소환할 수 없는 이 속편은 어떻게 제작되어야만 할까. 라이언 쿠글러와 제작진은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촬영이 불과 세 달 연기되었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역량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듯 하다.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는 티찰라 국왕의 사후 채택될 2대 블랙팬서를 조명하고자 하는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들끓는 외부세력의 위협, 와칸다 지도층의 혼란, 와칸다와 일치하는 세력 '탈로칸'을 소개함으로서 티찰라의 부재를 더욱 강렬히 부각시킨다. 라이언 쿠글러는 전편에서 일찍이 티찰라와 킬몽거의 대립을 통해(마틴 루터 킹 - 말콤X) 극단적 흑인민족주의를 비판하고 평화와 고결한 태도를 추구해야 한다는 방향성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티찰라의 사후 와칸다를 위협하는 세력과 맞닥뜨린 지금, 슈리를 위시한 현세대는 고민한다. 티찰라의 고결함을 구시대적 잔재로 처분해야 할까. 킬몽거처럼 목적을 위해 필연적인 폭력을 휘둘러야만 할까.


 영화는 와칸다와 대비되는 세력 '탈로칸'을 거울로 삼는다. 탈로칸은 와칸다처럼 위대한 고대문명의 후손들이지만 외세(유럽 백인 침략자)의 위협으로 터를 옮긴, 과거 중앙아메리카의 마야 문명을 은유한다. 인종과 문명발생지역이 다르지만 와칸다와 탈로칸은 비브라늄(인종의 역사와 문화권력)을 소유한 공통점이 있고, 영화는 이 두 세력을 같은 처지에 놓인 집단으로 바라본다. 미국사회에 아프리카계-라틴계 시민들은 지속적으로 내-외부로 위협을 느껴고 있는 공동체인 것이다. 그럼 이들은 전쟁을 통해 우열을 가르고 외세를 향해 전쟁을 선포해야 할까, 아니면 같은 처지에 놓인 공동체들끼리 연대하여 그들의 고결함을 지켜야만 할까. 영화는 외세로부터 위협을 느낄 때 티찰라의 정신을 다시 고찰시키고자 한다.




현 세대를 상징하는 슈리는 구시대적 전통에 답해야 한다. 어느 것을 택하고 어느 것을 버릴 것인가.





 아이언 하트, 2대 블랙팬서, 미드나잇 엔젤 같은 캐릭터 소개는 마블스튜디오가 제작진에게 주는 일종의 숙제처럼 느껴진다.(라이언 쿠글러에게 전권이 주어졌다면 이들은 출연조차 못했을 것이라 확신한다.)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는 흑인 문화 내부에 경종을 울리는 영화 같다. 팬데믹 시기에 재발한 BLM 운동 중 몇몇 세력이 집단적 폭동으로 변질되며 흑인문화의 응집을 방해하는 과정을 지켜본 라이언 쿠글러는 그들 곁을 떠난 티찰라를 추모한다. 동시에 그가 내세웠던 고결함을 포기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허나 아쉽게도 그의 고결함은 2대 블랙팬서가 될 수밖에 없었던, 한때 지난 세대의 잘못된 전철을 밟을 뻔했던 새 세대조차 쉽게 대체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영화는 이제 우리 곁을 떠난 채드윅 보스만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애가(哀歌)다. 그가 대표했던 블랙 컬처는 '와칸다 포에버'라는 말로 영원히 구전되어 흑인 문화가 내적 유혹에 시달릴 때마다 읊는 기도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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