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송태섭의 과거가 필요했을까

<더 퍼스트 슬램덩크>로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말하고 싶었던 것

  이노우에 타케히코는 이번 영화를 준비하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는 인터뷰에서 '이 작품을 봐주신 사람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의 인터뷰대로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단순한 팬서비스용 영화에 불과할까.

  영화는 원작과는 다르게 '포인트 가드' 송태섭의 시선으로 진행한다. 이런 선택을 한 이유는 송태섭이 이노우에 타케히코의 오너캐인 동시에 팀의 사령탑 역할인 포인트 가드가 시합을 조율하는 포지션이기 때문일 것이다. 경기 전반을 훑어보는 포인트 가드의 눈은 영화의 카메라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 그리고 원작에서는 내적 묘사가 부족했던 캐릭터의 과거를 들여다 보면서 스포츠물의 성장 서사와 일맥상통한 지점을 포착해 내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송태섭은 농구 재능이 충만하긴 하지만, 북산고등학교의 스타팅 멤버들은 자신에 비해 신체적으로 우월한 재능을 가졌다. 농구라는 스포츠에서 신장이 가장 중요한 조건이고, 송태섭은 늘 부담을 안고 플레이해야 하는 압박에 시달리는 인물이다. 이는 각본과 연출까지 직접 하기로 결심한 이노우에 감독이 짊어진 압박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미 TV시리즈와 극장판으로 여럿 제작된 작품이지만, 이노우에 감독은 처음으로 원작 코믹스의 영화화를 직접 연출했다. 농구경기의 박진감을 위해 3D CG를 활용하면서 만화의 질감을 살리기 위해 많은 분량을 직접 리터치했고, 낮은 채도를 선택하여 컬러 코믹스의 느낌을 냈다.

  캐릭터를 SD화 하여 코미디를 발생시키는 원작과는 다르게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코트에서 벌어지는 농구 경기에 온전히 집중하기 위해 코믹스의 유머를 그대로 활용하지는 않았다. 종종 원작을 본 사람들을 위한 팬서비스를 위한 유머들이 몇 씬 존재하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경기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선에 그친다. 영화는 자칫 '만화책의 하이라이트 영상'으로 전락할 수 있는걸 경계한다. 경기진행은 시종일관 진지하고 긴박하다. 그리고 이야기 도중 송태섭의 과거를 여러 번 플래시백하여 소환함으로서 2022년을 관통했던 문장 '중요한건 꺾이지 않는 마음'을 연상시키는 성장스토리를 완성시킨다. 작은 키의 선천적 한계, 그리고 산왕공고로 상징하는 삶의 난관을 드리블로 돌파하는 불굴의 의지는 지난 1990년대에 만화와 함께 성장한 팬들 개개인의 삶의 서사에 포개어지며 감동을 더한다.

  한때 가족의 일원이었던 독자들은 이제 가족의 주장 역할을 맡은 채로 영화관을 찾아왔다. 북산고등학교의 승리 한가운데에 있는 송태섭의 시선은 관객의 시선과 일치하며, 이는 지난 청춘을 복기하는 동시에 팬들에게 '그냥 나이가 들어버린게 아니라 훌륭한 캡틴이 된 것이다' 라는 이노우에 타케히코 감독의 팬들을 향한 찬사처럼 보인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단순 팬서비스가 아니라 자신들의 독자를 위한 진정성 있는 감사와 함께, 코믹스를 근간으로 하는 만화영화는 이렇게 만들 수 있다는 가이드를 제시한다.

  팬들에게 "농구 좋아하세요?" 라는 만화 속 대사는 이제 "당신의 청춘은, 당신의 인생은 어떤가요?" 로 읽힐 것 같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영화를 보고 나서 이렇게 답할 것이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이렇게 답할 것이다. "좋았어요. 그리고 여전히 좋아합니다. 거짓이 아니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