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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음악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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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연 Sep 27. 2022

X까, 나는 내 음악을 할거야

비비(BiBi)의 "가면무도회" 뮤직비디오를 보고

 난 현 사회적 풍토를 대변하는 밈은 '누가 칼로 협박함?' 과 '누가 물어봄?' 이라고 생각한다. 타인을 이해하려 들기보다, 그들의 어떤 선택에 따른 힘듦을 토로하는 것조차도 묵살시키려는 사회. 이미 미니앨범 [인생은 나쁜X]으로 인생을 좌절과 불행으로 가득한 것이라고 적었던 비비에게는 세상의 날선 시선들이 잔혹하면서도 그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고 이미 받아들이고 있는 듯 하다. 그는 최근에 인스타그램 라이브를 통해 자신의 일에 관한 고충을 감정적으로 털어놓았고, 사람들은 '네가 선택한 삶이고 충분히 돈 많이 버는데 뭐가 힘들다고 징징거리냐' 식의 반응을 보이며 비비의 고충을 전혀 이해하려들지 않았다. "가면무도회"는 이러한 사회적 풍토와 비비 개인의 경험이 겹쳐보이기만 한다. 통제하려는 익명의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희생양이 되지 않으려는 뮤지션의 결기처럼 보인다.



[인생은 나쁜X]에서 인생 자체를 좌절과 불행으로 바라보았던 비비는 이번 정규앨범 [LOWLIFE PRINCESS], 즉 '하류인생 공주'라는 스토리 중에서 "가면무도회"를 선공개했다. 턱시도를 입고 가면을 쓴 채로 우아하게 식사를 하고 있는 테이블 가운데, 비비는 꽁꽁 묶여 사과가 물린 채로 전시되어 있다.



'죄악의 단어, 위선의 가면,(중략) this might be right, this might be justice' 


 가사에서 추측하건대 비비는 세상을 거대한 가면무도회로 비유하는 듯 하다. 정체 모를 사람들은 가면을 쓰고 우아한 파티를 벌이는 척 하지만, 파티에 필요한건 그들의 테이블에 전시되어 씹고 맛볼 수 있는 희생양이다. 희생양은 몸이 묶여 행동이 제약되어야 하고 입에는 사과라는 재갈을 물려 목소리도 박탈된다. 뮤직비디오의 도입부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어야 하는 예술가를 단상에 올려두고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로 전시시켜 소비하고자 하는 대중의 욕망을 투사한 이미지다. 



비비는 돼지 가면을 쓰고 식사를 하는 테이블 가운데에 속박되어 입에 사과(재갈)가 물려있다.




 그간 비비가 대중들에게 소비된 이미지를 떠올려 본다. 워터밤 페스티벌에서 섹슈얼한 무대를 뽐낸 이미지, 예능에서 성에 관한 개방적인 언행을 서슴치 않는 캐릭터. 이는 비비 자신이 대중에게 선택받기 위한 전략 혹은 그의 천성일 수 있겠으나, 이를 지켜보는 대중들은 그가 그러한 이미지에 국한되기만을 원하는건지도 모른다. 자신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하는 욕망. 그 욕망은 지금껏 아이돌, 뮤지션, 배우들에게 종종 트렌디에 뒤쳐진다느니 행동이 과하다느니 같은 말로 그들을 흔들고 조종해 왔다. 비비는 이번 싱글의 설명에 '어떤 사회에서도 희생자는 있을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라고 적었다. 스스로 희생양을 자처한 것 같았던 이번 뮤비에서 그는 직접 칼을 뽑아들어 가면 쓴 사람의 목을 베어버린다. 영화 <킬 빌>을 레퍼런스 삼은 액션 시퀀스를 통해 비비는 성대한 위선의 파티장에서 칼춤을 추며 무도회장을 자신만의 공간으로 독차지한다.




영화 <킬 빌>을 레퍼런스 삼은 액션 씬. 비비는 현실에서는 실현할 수 없는 폭력을 마음껏 실행한다.





 비비는 자신의 작가적 소양을 음악이라는 매체에 옮겨 적는 예술가다. "가면무도회"는 정규앨범 중 한 챕터에 불과하고, 그가 앨범에서 어떤 스토리텔링을 선보였는지는 세상에 나와야만 알 수 있을 것이다. 선공개한 뮤비에서 비비는 자전적 경험을 가상의 무도회로 상징하여 구현했다. 그리고 대중을 상대로 사랑받아야만 하는 엔터테이너로서의 억압된 고충을 <킬 빌>의 이미지로 표출했다. 희생양이 되기 전에 그들의 손과 귀와 목을 베어버리고, 남들이 뭐라 하든 나는 나의 음악을 하겠다는 결기에 가득찬 기타 연주가 인상적이다. 곧 공개할 정규앨범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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