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닝스탬은 BPD 연구로 유명한 존 건더슨과 협업을 많이 한 스웨덴 출신의 임상심리학자입니다. 80년대 중반부터는 미국에서 활동 중이고 현재 보스턴 근처에 위치한 McLean Hospital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아래 소개 페이지에 전문 분야로 BPD가 언급되고 있기도 하네요.
https://www.mcleanhospital.org/profile/elsa-ronningstam
논문은 NPD 연구가 많고 여전히 왕성하게 연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pubmed.ncbi.nlm.nih.gov/?term=ronningstam+e%5Bauthor%5D
이 책은 자기애성 성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입니다. 자기애성 성격의 다차원적이고 연속적이며 역동적인 측면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통합적으로 다룹니다. 교과서임에도 한 달 남짓한 시간 동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쉽고 간결한 언어로 씌어 있기 때문에 독해의 압박이 적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입니다.
제가 이 책에 매료된 이유는 우선 성격장애라는 것이 DSM-5에 기술된 그런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당연하게도 늘 변화하는 어떤 흐름에 가깝다는 사실을 생생한 사례들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병리적 자기애나 자기애성 성격장애인 경우에도 치료적 노력 and/or 삶의 다양한 경험들에 따라 건강한 자기애로 변모할 수 있다는 것을 설득력 있게 전합니다. 실제로 3년 팔로우업한 저자 본인의 연구 결과로 입증하기도 했고요. 바로 아래 연구입니다.
pubmed.ncbi.nlm.nih.gov/7840360/ 실제적 성취,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애착관계, 환멸(즉 어떤 계기로 인한 스스로의 한계 자각)이 병리적 자기애를 건강한 자기애쪽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반대로 병리적 자기애로 자랄 수 있는 소인을 가진 사람이 성공적인 커리어를 통해 이를 잘 방어하며 Extraodinary narcissism 수준에서 살다가 어떤 트라우마틱한 삶의 경험으로 급격하게 병리적 자기애를 경험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8장에 실린 항공관제사의 사례가 그렇고요.
로닝스탬에 따르면 자기애는 크게 아래와 같은 연속선(제일 윗 행)과 차원(제일 왼쪽 열)으로 구분됩니다.
자존감 조절, 정동 조절, 대인관계, 초자아 조절이라는 네 차원에서 지금까지 어떤 연구 성과가 축적돼 있는지 알 수 있고, 이 각각의 영역이 자기애의 연속선에 따라 어떤 차이를 보일 수 있는지 설명하는 부분이 자기애를 보다 심층적으로 개념화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 책에 매료된 두 번째 이유입니다.
임상에서는 DSM-5 진단기준에 딱 들어맞는 환자를 보는 것이 꽤나 드문 일로 느껴집니다(아마 경계선 성격이나 회피성 성격 등 다른 성격장애도 비슷하겠고요.) 하지만 DSM 진단 기준에는 들어맞지 않는다 하더라도 차원적 측면에서 볼 때 자기애성 성격 특성(traits)을 붙이는 것이 환자 치료에 도움이 될 것 같을 때가 있게 마련입니다. 내현적 자기애(즉, Shy type)가 특히 그렇죠. 병리적 자기애의 Arrogant 유형, Shy 유형 등이 공유하는 근간을 자기애의 네 차원에서 이해하고 있다면 단순히 DSM-5에만 근거하여 진단을 내리는 우를 피할 수 있고, 이 책이 이런 면에서 도움이 됩니다.
일례로, Arrogant 및 Shy 유형은 자존감 조절에서의 문제라는 공통점을 지닙니다. 즉, 겉으로 드러나는 양상이 다를 뿐이지 과대한 공상(grandiose fantasies), 다른 사람의 감탄어린 주목을 받고 싶은 욕구(need for admiring attention), 비판과 패배에 대한 강한 반응(strong reactions to criticism and defeat) 등을 통해 취약한 자기를 보호하고 자존감을 고양하고자 하는 점은 같습니다. 또한 정동 조절 측면에서 공감 능력이 미흡하거나 결여돼 있고, 대인관계 측면에서 다른 사람과의 지속적인 관계 유지에 어려움이 있다는 점이 같습니다.
이 책의 2장에서는 자기애의 건강한 측면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정신병리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애초에 어떤 기능적 특성에서 유래한 것인지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하는데, 심리치료 경험이 부족할수록 이런 면을 깊이 있게 체득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닌가 합니다. 어렴풋하게만 알고 있던 자기애의 건강한 측면, 기능적 특성을 한 장을 할애하여 상세히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책 제목처럼 환자를 보다 이해(understanding)하고 공감할 수 있게 합니다.
예를 들어, 지나친 특권의식으로 나타나기도 하는 entitlement는 건강한 자기애에서 한 개인의 사적/직업적 성장에 연관될 수 있습니다. 스스로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면 성장이 저해될 뿐만 아니라 다양한 어려움에 처할 수 있습니다. 자기애성 성격에서 나타나는 주요 감정 중 하나인 시기(envy)는 내가 바라는 어떤 것을 타인이 지니고 있을 때 그것을 파괴하고 싶은 추동에 연관됩니다. 뒤집어 보면 스스로의 가치, 욕구 등을 명확히 하는 데 도움이 되는 감정이기도 하죠. 이와 비슷하게 자기애성 성격의 핵심 감정인 수치심(shame)도 과하지 않다면 사회적 상황에서 타인과의 상생과 통제/숙달감의 회복을 돕는 적응적 특성을 지닙니다. 공격성(aggression) 또한 과대 자기 및 복수심에 연관되지 않을 때는 건설적인 동기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끝으로 자기애성 성격과 자살의 관계를 다루는 7장도 상당히 흥미롭습니다(7장의 제목이 My Way or No Way!인데 센스 넘치죠). 자기애성 성격을 지닌 사람이 자살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 살펴볼 수 있는데요. 자살을 통해 (1) 손상된 통제 및 숙달감(control and mastery)을 회복하고 (2) 예상되는 자기애적 위협과 손상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며 (3) 위협적으로 지각된 상대나 상황을 통제하고 복수할 수 있습니다. 또한 (4) 스스로가 절대 파괴될 수 없다는 과대 망상이 자살이 초래할 결과를 간과하게 할 수 있고 (5) 반대로 스스로의 불완전함이나 결점을 공격하거나 파괴하고자 하는 소망에서 자살을 시도할 수 있습니다.
저자가 이야기하듯이 자기애성 성격에서 우울과 같은 감정은 부인되거나 억압되기 쉽기 때문에 우울증에 수반되는 다양한 증상들을 통해 자살사고나 시도의 가능성에 주의하기 어렵습니다. 그뿐 아니라 윗 문단에 언급하였듯이 자기애 성격 역동에 따른 자살시도도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가시적인 행동이나 수치화된 점수로 자살시도 가능성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정말 어려울 수 있겠습니다. 다만 자기애성 성격에서 내적 조절(inner regulator)의 일환으로 자살사고나 시도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유념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