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마블 보셨나요? 유명한 유튜버 세 명이 전세계를 한 달 동안 여행하면서 찍은 영상으로 조회수 배틀을 벌이는 컨셉입니다.
그 중 한 명인 유튜버 원지는 헬기에서 하와이의 멋진 협곡과 바다를 내려다보다가 울컥합니다. 일 년 전에 하와이에서 저런 멋진 풍경을 볼 줄 알았겠느냐고 말하며 "인생 어떻게 될 지 모른다!"고 강조합니다. 지금 시점에서 미래를 재단하면 안 된다고 말하는 것 같았어요.
일상도 우리가 계획한 대로 상상한 대로 흘러가기보다 우연한 상황과 마주할 때가 많습니다.
며칠 전에 홍대 유명한 타이 음식적에 아내와 마실 갔는데 기대 이하였습니다. 그냥 집에 가기 헛헛하여 커피 한 잔 할 요량으로 근처 스타벅스에 갔습니다. 스타벅스 리저브 지점이더군요. 일반 스벅 매장에서는 주문할 수 없는 특별한 원두 커피를 제공하는 곳이었고, 아내가 거금 만 원을 들여 커피 한 잔을 시켰습니다.
'무슨 놈의 커피가 만 원이나 하나' 생각하던 게 무색하게 독특한 풍미에 사로잡혔습니다. 큰 만족감을 느꼈습니다.
돌아보면 인생 이렇게 계획과 다르게 흘러가도 되나 염려하던 때가 오히려 미래의 더 나은 행보를 결정 지은 시점이었음을 깨닫는 때가 간혹 있습니다.
계약 종료로 인해 워라밸 보장되던 종합병원을 나온 후 풀타임잡 면접의 고배를 번번이 마셨고, 예전처럼 괜찮은 자리를 구할 수 있을까 걱정하면서 잠 못 이룰 때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프리랜서 2년을 꽉 채워가는 지금 시점에서 돌아보면 그때 나와서 다행이라는 생각입니다. 커리어의 불투명성은 그때보다 더 높지만, 높아진 자율성과 두려움을 받아들이며 대체로 만족스럽게 지내고 있습니다.
숀케 아렌스는 이런 의도되지 않은 우연한 만남이야말로 우리가 많은 것을 배우는 핵심 통로라고 말합니다. 그는 "만약 우리가 배우겠다고 계획한 것만 배우면서 살았다면 아마 말조차 배우지 못했을 것"이라며 "대개는 예측하지 않은 아이디어가 최고의 아이디어가 된다"고 말합니다. - 피와 살이 되는 메모법
삶이 예측한 대로 굴러가지 않기 때문에 괴롭기도 하지만, 예측한 대로만 굴러가면 그것 또한 생기 잃은 지옥일 것입니다. 예측한 대로 굴러가지 않았기 때문에, 새로운 무언가를 경험하고 배우며 막연히 머릿속에서만 그리던 가능성을 현실화할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통제감을 느끼는 것이 삶의 만족도에 많은 영향을 미치지만, 정말 귀중하고 값진 것은 예측 불가능함 속에 숨어 있을 때가 많고, 불확실성에 몸을 맡기며 취약해질 용기가 있다면 그 값진 무엇을 내 삶에 들여올 수 있음을 느끼는 요즘입니다.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게 여행이고, 계획이 틀어졌을 때 그 변해버린 상황에 맞게 대처하는 지구마블 여행자들의 마인드셋이, 프리랜서로서 예측 불가능한 변수에 시시각각 대처해야 하는 제 경험과 맞물리며 공감이 됐던 것 같습니다. 지구마블 시즌2 기대해 봅니다. 빠니보틀, 곽튜브, 원지 덕분에 즐거운 10주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원문 url: https://slowdive14.tistory.com/130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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