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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벌어진 일을 흘려보내는 연습

by 오송인

지난 주말에 오른쪽 광대뼈 부근이 멍이 들 만큼 다쳤습니다.

오전 첫 상담을 마치고 다음 상담이 바로 이어지는데, 다음 상담까지 10분 정도가 남아서 커피를 사러 건물 1층으로 내려갔습니다.

시간이 얼마 없어서 급한 마음에 빠르게 걸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머릿속에서 딴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정확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오늘 하루 처리해야 하는 일들에 관한 생각이었을 테죠.

그 순간 쾅..

앞에 유리문이 있었는데 생각에 너무 잠겨서 그 문이 제 눈에 안 보였나 봅니다.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1초 정도 상황 파악을 못하다가 겨우 정신 차리고 땅바닥에 떨어진 안경을 줍습니다. 안경 오른쪽 다리가 충격 때문인지 많이 벌어져 있네요. 오른쪽 광대뼈가 욱신거리고 머리도 그 욱신거리는 리듬에 맞추어 지끈거립니다.

그 와중에도 커피 생각이 간절해서 안경을 주섬주섬 쓰고 커피를 사서 다시 상담실로 올라옵니다. 내담자께서 아직 안 오신 터라 거울로 얼굴을 천천히 살피는데.. 벌써 약간 부어오른데다 살짝 건드리면 피가 날 것처럼 빨개진 상태입니다. 상담을 취소해야 하나? 0.1초 생각하다가 어차피 다 오셨을 테니 그냥 진행하기로 합니다.

상담이 어떻게 끝났는지 모르겠습니다. 두 회기를 연이어 진행하는 터라 상당한 집중력이 요구되었는데, 다행히 제 아픔에 초점을 두기보다 내담자 이야기에 생각보다 잘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내담자께서 제 걱정을 하셨더라면 오히려 상담에 집중이 안 되었을 텐데 지나치게 걱정하진 않으셔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016년도에 무리한 제주도 라이딩으로 인해 강한 허리 통증을 몇 달이나 경험해야 했습니다. 화장실에 앉는 것도 불편한 날이 많았습니다. 그때는 자기비판도 많았습니다. 욕심을 부린 나머지 경험하지 않았어도 될 고통을 경험하게 한 자신을 원망했습니다.

이제 와서 돌아보면 이미 충분히 고통스러운 자신에게 너무 모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남이었다면 그렇게까지 비판했을까요? 비판이 아니라 위로를 건넸을 겁니다. 그런데 자신에게는 참 가혹할 때가 많습니다.

상담이 모두 끝나고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앉아 잠깐 멍때리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사고를 당한 저 자신을 비판하지 않았습니다. 광대가 욱신거리는 와중에도 맡은 역할을 잘 수행하기 위해 노력한 스스로의 어깨를 마음속으로나마 다독였습니다.

다행히 상처는 잘 아무는 중입니다. 안경도 안경사께서 거의 원래 상태로 깔끔하게 되돌려 놓았네요. 너무 감사했습니다.

살다보면 이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더 큰 불운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자신에게 가장 자비로운 태도를 유지할 수 있기를 바랄 따름입니다. 이 모든 노력은 언젠가 죽어가는 순간이 다가올 때 자신에게 자비로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과도 연관이 되고요. 유리문에 얼굴 부딪힌 에피소드에서 너무 멀리 갔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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