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에 재미있게 읽은 책 다섯 권(43권 중 추림)

by 오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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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43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그 중에서 기억에 조금 더 오래 남기고 싶은 책 몇 권 선별하여 기록해 봅니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 무라카미 하루키


가령 그것이 실제로 바닥에 작은 구멍이 뚫린 낡은 냄비에 물을 붓는 것과 같은 허망한 일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적어도 노력을 했다는 사실은 남는다. 효능이 있든 없든, 멋이 있든 없든, 결국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대부분의 경우, 눈에는 보이지 않는(그러나 마음으로는 느낄 수 있는) 어떤 것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진정으로 가치가 있는 것은 때때로 효율이 나쁜 행위를 통해서만이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비록 공허한 행위가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결코 어리석은 행위는 아닐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실감으로써, 그리고 경험칙으로써.


달리기 열풍이 저에게도 불었습니다. 23년 여름부터 조금씩 뛰기 시작해서 올해 가을에 서울어스마라톤 하프 코스 출전 및 완주했습니다.


러너라면 이 책을 한 번쯤은 읽어보게 마련인데요. 1월부터 3월까지 매달 50km 이상 뛰다가 4월에 절반 수준으로 하락했는데 이 책 읽으며 달려야겠다는 생각이 다시 강해져서 5월에는 다시 50km 정도 달렸습니다.

달리기 예찬이라기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삶을 바라보는 태도를 덤덤한 어조로 써내려간 느낌입니다. 특히 위 인용한 글에서처럼 어떤 멋진 아웃풋이 나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더 나아가 그것이 허망한 일에 지나지 않는다 해도, 스스로가 가치 있게 여기는 일에 매진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는 생각에 공감합니다. 기록이 시원찮아도 꾸준히 운동한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달리기를 통해 지켰다면 그것만큼 의미 있는 것은 없다고 봅니다. 더욱이 달리기를 통한 기초 체력 강화는 삶의 질에 직결되기 때문에 그 의미가 더 깊다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요. 미래가 아니라 현재 삶의 질 말입니다.


그러나 나 자신에 관해서 말해달라고 한다면 ‘기초 체력’의 강화는, 좀 더 큰 규모의 창조를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 될 일의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것은 해볼 만큼의 가치가 있는 일이다(적어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하는 쪽이 훨씬 좋다), 라고 믿고 있다. 그리고 무척 평범한 견해이긴 하지만, 흔히 말하듯,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일에는 열심히 하는 만큼의(어떤 경우에는 지나치리만큼의)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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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 네이버 블로그 이 책 읽고 이전에 써두었던 다른 글입니다.


왜 마음챙김 명상인가 (당신이 어디를 가든 거기에 당신이 있다) / 존 카밧진


서구권에 마음챙김 명상이 대중화되는 데 가장 많은 기여를 한 사람이 존 카밧진 아닐까 합니다. 마음챙김 명상이 무엇이며 그 유익은 또 무엇인지 쉽게 설명합니다.


명상은 마음을 비우거나 평온하게 만드는 일이 아니다. 명상은 그 무엇보다 마음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는 일이며, 또 마음이 지금 이 순간 어떤 상태인지를 아는 일이다. 절대 다른 어딘가에 도달하는 일이 아니라, 당신이 이미 존재하는 곳에 그대로 있게 내버려두는 일인 것이다.


머릿속에서 이런저런 생각들이 원숭이처럼 날뛸 때가 많습니다. 그 중에는 도움이 되는 생각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생각도 많습니다. 특히 뇌는 예측 기계로서 시도 때도 없이 판단을 하는데, 그 판단이 늘 상황에 적절한 것은 아닙니다.


마음챙김 명상은 날뛰는 생각 원숭이들과 씨름하기보다 원숭이들을 그저 지켜보는 것에 가깝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나는 게으르다'와 같은 부정적 자기평가 원숭이나 '저 사람은 왜 저래'와 같은 비판적 타인평가 원숭이에게 힘없이 끌려갔을 테지만, 마음챙김 명상을 통해 중심을 잡고 생각의 혼돈 그 자체를 명료하게 자각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순간을 임상심리학자 타라 브랙은 받아들임이라는 책에서 '일시적 열반'이라 했고, 카밧진은 '의도적으로 잠시 죽는 순간'이라고 표현합니다.


판단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당신이 사회에서 책임 있게 행동하고 처신하는 방법을 더 이상 모르게 된다거나 누가 무엇을 하든 다 괜찮다는 의미는 분명 아니다. 판단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세계와 우리 존재의 근본적 순수성에 다가가지 못하게 막는 무의식적인 좋음과 싫음의 물결에 빠져 있다는 걸 알게 될 경우, 살아가면서 훨씬 더 분명하게 행동할 수 있고 또한 보다 균형감 있고 효율적이며 윤리적인 행동을 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일 뿐이다.


무자각 상태에서 혹은 요즘 말로 무지성으로 행동하기보다, 의도적으로 더욱 균형감 있고 효율적이며 윤리적으로 행동하는 데 마음챙김 명상이 도움이 됩니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호흡에 초점을 맞추며, 들숨과 날숨을 분명하게 자각하며 일시적 열반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쉽지 않을 겁니다. 5초도 안 돼 생각 원숭이에 끌려가는 게 자연스럽니다. 하지만 분명히 하면 할수록 잘하게 될 겁니다.


호흡을 통해 무자각은 일상적인 일이라는 걸 알게 되는 것이다. 호흡을 하다 보면 설사 당신이 원한다 해도 호흡과 함께하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반복해서 알게 된다.


에디터의 기록법 / 김지원 외


언제부터인가 저는 기록이라는 행위에 빠져들어 모든 것을 기록하는 남자가 돼 버렸습니다. 돌이켜 보면 21년도 말부터 메모를 꾸준히 했고, 그 때부터 지금까지 옵시디언이라는 노트앱에 체계적으로 메모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기록에 대한 애정을 지속해 온 에디터들이 쓴 글을 모은 책입니다.


자신이 보고 듣고 말하고 쓴 것들은 어떤 식으로든 자기 삶에 영향을 미친다. 기록으로 남긴 것들은 하나의 노드가 되어, 많은 것이 실시간으로 스쳐 지나가는 지금의 세상에서 다른 무엇들과 연결될 기회를 만든다. 그리고 기록이 쌓일수록 연결의 기회도 다양해진다.


실시간으로 수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경험하는 시대에 어떤 것을 취사선택하여 기록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나라는 사람을 어떻게 구성해 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라고 봅니다. 가령 심리상담을 업으로 하는 저는 상담을 더 효과적인 방식으로 하기 위해 많은 메모를 했습니다. 이런 메모들은 분명 상담하는 제 태도나 방식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리고 기록이 누적될수록 제가 어떤 이론적 바탕 위에 서 있고, 상담자로서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지가 더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직업뿐만 아니라 개인 생활에서도 기록을 한다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과의 대화이기 때문에 그 대화가 내 삶에 미치는 영향력은 머릿속에서 혼자 생각하는 것과는 차이가 클 수밖에 없습니다. 가령 일기를 쓴다는 것은 자기 자신과 대화하며 사건을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게 돕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그때 그렇게 행동한 것은 내가 좀 심했던 것 같다'라며 과거의 자기 자신과 현재의 자신이 대화를 주고받으며 새로운 의미를 만듭니다. 단순히 있었던 일을 기록하는 것을 넘어, 글을 매개로 넓은 맥락에서 사건을 조망하며 인사이트를 얻기도 합니다.


흥미로운 건 자기 자신과의 대화도 어쨌든 대화여서, 언제나 그 결과는 오간 말의 합보다 크다는 사실이었다. 사람 간의 대화가 각자 할 말만 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공감과 위로, 혹은 오해나 진실을 낳듯이 일기 쓰기도 마찬가지였다.


자기 구성과 성찰에서 기록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지만, 이런 딱딱한 얘기는 사실 이 책에 별로 등장하지 않습니다. 특히 기록 자체가 주는 마음의 평안과 가벼움만으로도 기록은 충분히 제 역할을 한다고 보는데 그런 점을 가리키는 부분을 발췌해 옵니다.


나의 글쓰기는 오늘만 산다. 나의 잘 잊는 뇌는 불필요하고 재미없는 글들, 만약 내가 쓸데없이 기억력이 좋았다면 내 글에 우스꽝스럽게 거대한 레이스를 달아주었을 인용문들을 자연스럽게 망각의 강으로 흘려보내는 기특한 일을 한다.
..낮엔 누굴 만났고 일은 어땠는지 또 하루가 끝난 내 기분은 어떤지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전과 비교할 수 없이 평온해졌다. 대화가 필요할 땐 자기 자신과 나누어도 된다는 걸 안 순간, 나는 진심으로 앞으로의 인생이 조금 덜 걱정되는 걸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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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와 소음 / 네이트 실버


올해 읽은 책 중에 가장 읽기 까다로운 책이었습니다. 경제, 정치, 지진, 기후, 포커, 주식, 테러까지. 저로서는 대부분 배경지식이 부족한 영역들인데, 이러한 영역에서 예측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구체적으로 풀어나갑니다. 다 읽는 데 세 달 정도 걸렸네요.


그럼에도 이 책을 끝까지 읽은 것은 지금처럼 변화의 속도가 빠르고 불확실성이 우세한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하나 라는 근본적인 화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영역에서 공통적으로 예측의 정확도를 올리는 데 도움이 되는 방법이 있다면, 그 방법을 삶에 적용하고 싶었거든요.


제게 의미가 있었던 부분은 우선 어떤 예측이라도 개선하여 정확도를 향상시킬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에 예측을 전혀 하지 않는 것보다는 하는 게 낫다는 것이고, 예측이라는 것이 늘 빗나갈 여지가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내 생각엔 말입니다. 사람들은 그에 맞붙어서 싸울 필요가 있습니다. 자기가 보고자 하는 방식으로 정보를 바라보고자 하는 자세 말입니다.


누구나 맹점이나 인지적 편향을 지닐 수밖에 없기 때문에, 예측을 하더라도 그 예측이 틀렸을 때 빠르게 인정하고 자신의 판단을 현실 데이터에 맞게 수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인지적으로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너무 강한 나머지, 혹은 개인적/직업적/기타 등등의 어떤 동기로 인해, 끝까지 자신의 예측/판단이 옳았다고 주장하게 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저도 때로는 예외일 수 없겠고요.


하지만 우리는 보통 자기가 한 예측을 쉽게 바꾸지 못한다. 예측을 바꾸면 당혹스러움에 부닥치기 때문이다. 용기가 부족한 탓이다.


예측을 개선하여 정확도를 향상시키려면 맞고/틀림의 문제가 아니라 어느 정도로 맞았는지 확률적으로 사고하는 것이 중요함을 저자는 강조합니다.


특히 베이즈 정리에 한 챕터를 할애할 정도로 이 통계방법론에 대한 애착을 보이는데요. 정확히 이해하진 못했지만 제가 이해한 베이즈 정리의 요점은 1) 기저율을 고려하라 2) 내가 틀렸을 가능성도 고려하라 3) 실제 데이터를 보고 생각을 바꿔라 입니다.


2), 3)은 이해가 바로 되는데 기저율은 좀 어렵죠. 예를 들어 설명하면, 두통이 심하게 지속될 때 뇌와 관련한 큰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닌가 걱정하게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체 인구 중 단순 스트레스성 두통을 겪는 사람과 실제 뇌 관련 질환을 지닌 환자의 비율을 생각하면 전자에 해당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이죠. 기저율(Base Rate)을 무시하고 의사결정하는 것은 예측의 정확도를 낮추는 가장 빠른 길임을 배웁니다.


3)은 이해는 바로 되지만 실제로 그렇게 하기는 쉽지 않을 수 있죠. 이런 점에서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말이 와닿습니다.


그런데 어제 당신이 한 예측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할 이유가 분명히 존재한다면, 어제의 예측에 매달릴 이유가 없다.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도 유명한 말을 남겼다. "사실 관계가 바뀔 때, 나는 내 마음을 바꾼다."


행복의 기원 / 서은국


43권 중 올해 유일하게 별 다섯 개 만점을 준 책입니다. 심리학자가 쓴 책이라서 편 드는 것은 아니고, 다른 어떤 책보다 빠져들어 읽었습니다.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상황에서 행복을 느껴야만 했던 것이다.


생존과 번식을 위해서는 다른 인간 존재가 필수입니다. 저자가 지적하듯이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동물의 생존 확률은 다른 개체와 함께 있을 때 높아"집니다. 먹이를 구함으로써 생존 확률을 높이는 것이든 번식하는 것이든 사회적 과제를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대개 다른 사람이 필요하고, 대인관계 경험에서 느끼는 행복은 인간과 인간의 유대를 강화함으로써 사회적 문제 해결을 용이하게 만든다는 것이 저자가 행복을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행복이라는 감정의 기능적 특성에 천착합니다.


긍정적 정서의 기능은 생존에 필요한 자원을 추구하도록 하는 것이다.
뇌는 우리의 행복에 일말의 관심도 없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찾도록 하기 위해 뇌는 설계되었다. 그것은 생존과 직결되는 '사람'이다. 그래서 뇌는 사람이라는 생존 필수품과 대화하고 손잡고 사랑할 때 쾌감이라는 전구를 켜도록 설계된 것이다.


행복이라는 감정은 친사회적 행동을 비롯하여 생존과 번식 확률을 높이는 행동을 더 하게끔 일종의 인센티브 같은 역할을 하지만, 노력하지 않아도 인센티브가 지속되면 행동의 동기가 사라질 수 있습니다. 이에 한 개인의 관점이 아닌 인류의 생존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행복은 오래 지속되어서는 안 됩니다. 즉, 우리 뇌는 생존을 위해 행복감을 금방 '초기화'시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쾌락의 챗바퀴(Hedonic treadmill)라고 부릅니다. 로또를 맞아도 그 기쁨은 얼마 가지 않아 사라지고 기저선(baseline)으로 돌아옵니다. 돈이나 명성에 수반되는 긍정적 정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이 지점에서 영화 평론가 이동진의 말이 떠오릅니다.

낮 동안에 일하느라 힘들었으니까 오늘 저녁은 한 번도 안 가본 곳에 간다거나 그런 게 우리는 행복이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습관 부분에서 재미를 느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머지는 오히려 쩔쩔매는 시간이에요.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거죠. 그런데 패턴화되어 있는, 습관화된 부분이 행복한 사람이 있다고 해보세요. 그러면 그 인생은 너무 행복한 거죠. - 이동진 독서법


행복을 좇으면 행복에서 멀어진다는 말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고 강렬한 행복이 아니라 습관에 배어 있는 소소한 행복 정도는 우리가 노력하여 경험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동진이 말하듯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고, 습관화된 행동에서 작은 행복을 자주 경험할 수 있다면 그것이 좋은 삶이라고 생각해요. 서은국도 같은 얘기를 합니다. "큰 기쁨이 아니라 여러 번의 기쁨이 중요하다."


행복이 꼭 기능적인 특성으로 다 설명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설명의 근거가 탄탄하고 빨려들어갈 만큼 유려한 문체도 좋습니다. 다른 사람과의 경험이 행복의 많은 부분을 설명하며, 큰 행복이 아니라 소소한 행복을 촟으라는 근거에 기반한 현실적 조언도 좋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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