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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송인 Feb 10. 2020

몰두형 애착을 지닌 내담자와의 상호작용

Attachment in Psychotherapy의 13장을 읽고 나름대로 정리한 내용입니다.




몰두 애착을 지닌 내담자와의 상호작용에서 어떤 전이/역전이 양상이 발생할 수 있는지 알려줘서 좋았습니다. 몰두 애착의 스펙트럼에서 히스테리컬/보더라인을 나눠 설명하는 것이 유용하고요.




연극성 성향의 내담자는 유기를 두려워한 나머지 외부 대상에만 몰두하는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내적 경험을 회피하게 되는데, 이 내적 경험이 무엇인지에 초점 맞추는 게 재현에 끌려들지 않는 방법임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Inclusiveness라는 표제가 의미하는 바 같습니다. 이건 실제로 이런 유형의 내담자를 많이 만나보고 수퍼비전도 받으며 배워야 하는 부분 같아요.




연극성 성향의 내담자가 치료자를 이상화할 때 자기애적으로 거기 끌려들어갈 것이 아니라, 내담자가 지닌 강점과 자원은 무엇인지에 초점 맞추며 내담자의 주체성 발달을 고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이런 접근을 피상적으로 하게 되면(특히 회피성 애착에 가까운 치료자의 경우) 내담자가 치료자로부터 버림받는다고 느끼기 쉬운 것 같습니다.




밸런스를 맞추는 게 어려운 일 같습니다. 책에서는 유능감이나 주체성을 발달시키는 것이 연극성 성향을 지닌 내담자에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이런 자기개념을 가져본 적이 없기에 두려울 수 있습니다) 공감하는 것이 내담자가 내쳐진다는 느낌을 받을 가능성을 낮추는 한 방법이라고 보는 듯합니다.




또한 치료자 스스로가 지닌 의존성과 회피된 정서를 자각하는 정도가 높을수록 연극성 성향의 내담자가 보이는 몰두 애착 패턴에 회피적으로 대응하거나 자기애적으로 반응할 가능성이 낮아진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자기인식을 위해 평소에 애써야 하는 또다른 이유가 되겠고요.




책에서 성적 전이에 관해서도 다룹니다. 살짝 샛길로 빠지면, 자기애적인 남성 치료사와 히스테리컬한 여성 내담자가 만났을 때 성적인 전이/역전이가 발생하기 쉽습니다. 둘 다 친밀감이란 것을 제대로 경험해 본 적이 없거나 애착 관계에서 이런 정서를 보이며 취약해진다는 것 자체가 위험한 것임을 배운 개인력이 있기에 성적인 에너지로 친밀감을 오인하여 행동화하기 쉽게 되는 것인데요(히스테리에서는 불안을 방어하기 위해, 자기애에서는 대상을 통해 자존감을 고양하기 위해서라는 차이가 있긴 합니다마는..). 행동화하게 되는 경우 그 책임은 전적으로 치료사에게 있습니다. 법적인 책임을 물어야겠지요.




성적 전이가 발생할 때 회피 애착을 지닌 치료자의 반응과 몰두 애착을 지닌 치료자의 반응이 다릅니다. 같은 회피 애착이라도 강박성과 자기애가 또 다르죠. 이런 차이에 관한 지식을 숙지하더라도 성적 전이를 안정 애착으로 향하는 도약대로 사용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에 수퍼비전을 받거나 그래도 안 되는 경우에는 다른 치료자에게 리퍼하는 것이 윤리적입니다.




이번 챕터의 중반부 후반부는 경계선 성향의 내담자와 치료적으로 작업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과 해결책에 관한 내용입니다. 공감하면서도 한계를 잘 설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돼 있습니다.




경계선 성향의 내담자는 자기 안의 나쁜 것을 투사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기에(투사되지 못 할 때 자해와 같은 자기파괴적 행동이 발생하기 쉽습니다) 치료적 관계 안에서 투사가 반드시 일어나게 돼 있습니다. 투사된 것에 비반성적으로 반응하게 되면, 즉 부정적 역전이를 행동화하게 되는 경우 당연히 치료적 관계가 지속될 수 없기 때문에, 내담자가 온몸으로 투사하는 내용에 호기심을 갖고 정신화를 통해 반응하는 것이 치료적 공감임을 얘기하는 것 같습니다.




이 때, 정신화를 통한 반응은 언어적인 것이라기보다 행동적이어야 이런 내담자들에게 효과가 있습니다. 책에서 저자는 자기 치료 사례를 언급합니다. 내담자가 행동을 통해서 자기가 느끼는 감정(즉, 불안이나 분노)을 치료자도 느낄 수 있게 할 때, 그것이 매우 당혹스럽거나 위협적이라 하더라도 함께 설정한 한계를 넘지만 않는다면, 치료자가 자기 몸의 반응을 잘 자각하여 내담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으로 투사된 것을 되돌려줌으로써 내담자의 self를 통합할 수 있다고 봅니다. 투사된 것을 어떻게 잘 소화시켜서 언어가 아닌 행동적으로 되돌려주는가 하는 부분은 경험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는 지점인 것 같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allowed the patient to find himself in the mind of a benevolent other as a thinking and feeling being."(240쪽)하는 것이 최종 목표임을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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