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주 죽고 싶었고, 가끔 정말 살고 싶었다 / 아른힐 레우뱅 지음
“..나는 누구인가?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이며, 나에게 소중한 사람은 누구일까? 삶에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규칙이 있나? 그중에서 나는 어떤 것을 유지하고 싶어 하나?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고 좋아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삶에서 내가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조현병을 지녔다가 완치된 저자는 증상이 위와 같은 질문들에 전념하고 답을 모색하라는 일종의 경고등이라고 표현한다.
이 책의 기본적인 관점을 보여준다. 이 책은 의학적인 관점이 아니라 조현병을 지녔던 아른힐 레우벵이라는 사람의 주관적인 경험을 따라 간다. 10대 때 전구 증상이 발생하던 순간부터 병이 다 나을 때까지의 몇 년 동안 아른힐의 마음 속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병원에서 일하는 임상심리사로서 경험하는 한계 중의 하나는 환자가 정말 어떤 경험을 하고 있는지 들여다 볼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병원은 여타 기업과 마찬가지로 실적과 수익을 중시하는 기관이다. 더 많은 환자를 보기를 원한다. 이런 압박이 주어질 때 환자의 내적 경험이 어떤 것인지 찬찬히 들여다 보기란 요원한 일일 수밖에 없다.
조현병으로 진단되었거나 조현병이 의심되는 환자를 수도 없이 만났지만, 이들을 정말 제대로 만났다고 할 수 있을까 묻는다면 답은 아니오다. 내가 만난 건 조현병이라는 의학적 진단과 그 진단을 도출하기까지의 환자마다 약간 다른 설명들이지 조현병을 지닌 사람은 아니었을 거다.
조현병을 지닌 어떤 사람이 경험하는 것을 온전히 함께 경험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느낄 수 있다. 충분한 시간을 들여 그와 함께 있을 수만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의료진에게는 그럴 만한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는 게 사실이다.
“불안, 무기력함, 무력감, 슬픔, 절망감, 수치심은 우리 모두가 이해하는 감정이며, 우리는 그 속에서 자신을 다시 찾을 수 있다. 그다음에 우리는 진단과 증상, 범주에서 벗어나 사람이 되기 시작한다. (중략) .. 나는 누군가 내가 어떤지 살펴보고, 내게 관심을 갖고, 안정감과 약간의 보살핌을 제공해주기를 바랐다. 늑대[아른힐이 경험한 환각] 때문에 훨씬 더 힘든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단지 계속 되풀이되고, 이해 가능하며, 다른 옷을 입고 있는 인간의 감정이었다. 그뿐이었다.”
“이해하려면 마주해야 한다.”
이 책은 내게 “당신은 마주하려는 용기를 얼마나 냈나요?”라고 거듭하여 묻는 것만 같다. 아른힐의 경험을 읽는 것 자체가 다소 힘든 일인데 스스로가 애써 합리화하려 했던 부분을 다시 들춰내는 것만 같아 죄책감을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으면서 환자나 내담자가 지닌 감정에 함께 머무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또한 아무리 심각한 정신병적 증상을 나타낸다 하더라도 그가 건강한 사람이 되었을 때 어떤 모습일지 그려보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이런 것들을 이루지 못 하는 치료가 얼마나 해악일 수 있는지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수련생 때는 별다른 근거도 없이 조현병이 치료 불가능한 병이라고 단정짓고 그런 프레임으로 조현병을 지닌 환자를 봤다. 이제 와서 돌아보면 정말 부끄럽다. 통계적으로 조현병을 지닌 사람의 1/3은 평생 호전을 기대할 수 없다. 하지만 설령 99%가 호전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1%의 희망이다. 그 희망을 짓밟는 짓은 반치료적일 뿐만 아니라 죄악이다.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항상 희망이 있는 진실 쪽을 고를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것이 건강에 가장 좋으며, 마음에도 가장 적은 상처를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다가 실제로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굉장히 중요하다.”
이 말에 백프로 공감한다. 내가 죽을 병에 걸렸는데, 그래도 그 중 1%는 기적적으로 죽지 않고 살아간다면, 99%에 관한 얘기보다는 1%에 관한 얘기를 강조하는 의사를 만나고 싶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병 그 자체를 보기보다 내가 병을 지니기 이전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고, 어떤 강점이 있었고, 현재 병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변화되기를 원하는지 물어보는 의사를 만나고 싶다. 사람은 저마다 다르지만 비슷한 구석도 많아서, 아마 내가 봐왔던, 그리고 앞으로 보게 될 내담자나 환자의 마음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를 잊지 않는 것이 전문적인 지식과 임상 경험을 쌓는 것만큼 중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