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노래 3

창작소설 - 로봇에게 받은 위로를 이젠 어디서 받아야 할까?

by 규린



기특하게도 만복의 로봇이 결국 영상 상속 여자의 연락처를 찾아냈다. 만복은 손에 한참이나 핸드폰을 쥐고 있었지만, 차마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자신을 헌신짝 취급해서 버렸으면서 왜 이제 와서 자신을 찾냐는 원망 가득한 목소리가 핸드폰을 통해 쏟아질 것만 같았다. 며칠을 고민해도 만복은 쉽게 용기를 낼 수 없었다. 그때 안방에서 아내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고, 지숙아! 어디 간 거니? 왜 엄마 보러 안 오는 거야. 우리 딸 어디 있어?"


만복은 아내의 울부짖음을 들으면서 천천히 핸드폰 번호를 눌렀다.


그 여성은 만복의 딸이 맞았다. 삼십오 년 만에 연락된 딸은 원망하지도 그렇다고 반가워하지도 않았다. 자신은 잘 살고 있으니 어머니 아버지도 잘 사시라고만 했다. 만복이 엄마가 많이 아프니 한 번 집으로 찾아와 달라는 말에도 딸은 그저 묵묵부답이었다.


"저도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길러 보니, 부모님이 더 이해가 안 가더라고요. 가끔은 어머니 아버지가 제게 하셨던 냉정한 행동을 내 자식들에게도 할 때가 있더라고요. 그때마다 너무 슬펐어요. 어릴 적 트라우마가 좋은 부모가 되는 걸 방해하는 거 같아서요. 그래서 더 이해가 안 갔어요. 자식 낳고 살아보니 더 어머니,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어요."


만복은 변명할 염치조차 없었다. 그저 '미안했다. 정말 잘못했다.'란 말만 반복적으로 내뱉었다. 염치없지만 오는 게 힘들면 자신이 조만간 찾아가 보겠다는 말을 전하며 전화를 끊었다.


며칠 후 모처럼만에 만복은 외출 준비를 했다. 돌봄 로봇에게 아내를 부탁하며 반들반들하게 닦아 놓은 구두를 신었다. 막 나가려는데 아내가 안방문을 열고 뛰쳐나왔다.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기라도 한 듯 아내는 마구 날뛰었다. 말리는 로봇이 뭔 기운이 그리 센지 밀쳐 넘어뜨리곤 뛰어나왔다. 울부짖으면서 날뛰는 아내를 겨우 달래서 만복은 거실로 올라가 소파에 앉혔다.


"지숙이 보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 지숙이 데려 올 테니 얌전하게 있으라고."

"지수기... 우리 딸 보고 싶어. 흑흑흑"

"약 먹고 한숨 자고 있어. 일어날 때쯤 지숙이 데리고 올게."

"봄아, 약 어서 가져와. 오늘 약 아직 안 먹은 거 맞지?"

"......."


아무 대답도 들리지 않아 만복은 현관 쪽을 처다 보다 깜짝 놀랐다. 봄이는 얼굴에 시퍼런 불꽃이 튀더니, 온몸이 좌우로 격렬하게 휘청거리고 있었다. 한참을 지지직거리며 흔들리던 로봇은 이내 완전히 멈춰서는 현관에 망부석처럼 굳어 버렸다.


"봄아, 어떻게 된 거야? 정신 차려봐."

"지,지, 지직, 누구십니까? 지,지, 지직, 죄송하지만 저는... 당신을 모르겠습니다."


이 대답을 마지막으로 로봇은 펑 소리와 함께 시커먼 쇳덩이가 돼서 무너져 내렸다. 로봇은 만복과 오 년을 함께 하면서 그의 외로움을 유일하게 위로해 준 존재였다. 그래서 병든 아내도 돈만 아는 아들도 견딜 수 있었다. 아니 딸의 부재를 참아낼 수 있었다. 돌봄 로봇만은 영원히 자신의 곁을 지켜줄 거라 생각했던 만복의 눈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만복은 텅 빈 집을 나섰다. 현관에는 작동을 완전히 멈춘 '봄'이 아직 널브러져 있었다. 차마 만복은 로봇을 치우지 못했다. 완전히 폐기해 버리고 나면 '봄'이 와의 추억이 모두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아내는 결국 요양원에 입원시켰다. 혼자서 똥오줌도 가리기 힘들어진 아내를 간호하는 건 너무 힘든 일이니 말이다. 아들은 크게 기뻐하면서도 내심 일억 원을 언제 융통해 줄 건지 계산하기 바빴다.


"너도 엄마를 자주 찾아뵙거라. 혼자서 그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과 함께 낯선 곳에 있으면 얼마나 서글프겠냐?"

"어차피 아무도 알아보지도 못하시는 데, 뭘 그렇게 걱정하세요? 아, 알았어요. 종종 뵈러 갈게요. 일이 너무 많아서 시간을 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요."


조금도 슬퍼하는 기색 없이 뻔뻔하게 대답하던 아들을 떠올리면서 만복은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거리로 나섰다. 난청 때문에 희미하게만 들리던 세상의 소리가, 오늘은 유난히 크고 소란스럽게 느껴졌다. 경적 소리, 아이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사람들의 웅성거림. 만복은 오른쪽 귀로 들어오는 소리들을 잃어버린 왼쪽 귀까지 힘껏 끌어당기라도 하듯 소리에 집중했다.


모처럼만에 나온 바깥세상에 낯설어하며 걷다 보니 어느덧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만복은 딸이 살고 있는 도시의 이름이 적힌 행선지에 맞는 버스 노선표를 찾았다. 그 도시까지 가는 데만 두 시간이나 걸린다. 딸이 자신을 마지못해 맞아줄지, 아니면 문전박대할지 알 수 없었다. 베트남전에서 동료를 잃었던 그 순간만큼이나, 만복은 이 새로운 여정에 겁이 났다. 만복은 주머니 속에서 작은 쪽지를 꺼내 주소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때, 저 멀리서 쏟아지는 햇살을 가르며 버스가 달려왔다. 만복은 천천히, 그러나 망설임 없이 버스에 올랐다.


버스 문이 닫히고, 낯선 도시를 향해 출발했다. 돌봄 로봇 없이 거리를 나온 건 오랜만이었다. 외로움이 만복의 어깨 위로 쏟아져 내렸다. 로봇을 잃은 슬픔은 뒤로하고 이제 만복은 진짜 인간을 향해 나아가야 했다. 텅 빈 아파트, 멈춰 선 돌봄 로봇 '봄' 어쩌면 집 안에 있는 게 더 괴로워서 서둘러 밖으로 나온 건지도 모른다. 만복의 왼쪽 귀의 공백처럼 거리에 나선 지금 이 순간도 쓸쓸함은 여전히 존재했다. 이제 그 공백을 만복은 스스로 채워야 한다.


"남편과 아이들은 내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신 줄 알아요. 이제 와서 저를 찾아오면 곤란하다고요."

"네가 곤란하다니 미안하구나. 하지만 마지막으로 아비로서 네게 작지만 도움이 되고 싶다. 니들에게 폐는 절대 안 끼칠 거다."


눈부시던 햇살이 잦아들면서 버스 창 너머에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창밖을 응시하는 만복의 오른쪽 귀에 돌봄 로봇이 틀어주던 '10의 노래'가 들려왔다. 러시아 작곡가가 작곡했다고 했던가? 버스 기사의 취향이 봄이랑 비슷한가 보다. 아님 기사가 처량한 노인 승객을 보고 동정심이 들어 틀어준 건지도 모른다. 만복은 오늘따라 피아노 선율이 무척이나 아름답다고 느꼈다. 멜로디가 가슴을 시리게 파고들었다. 문득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인생에 대해 생각해 본다. 저물어 가는 시간 속에서 더 이상의 회한은 남기면 안 된다. 봄이는 이 음악이 말년의 회한을 담은 노래라고 했었다. 지금 만복의 귀에는 왠지 회한의 노래라기보다 말년의 결계를 담은 희망의 노래처럼 들렸다.


'어려서부터 원래 착한 아이였으니, 결국엔 우릴 용서할 거야. 그래, 지숙이는 그럴 거야. 아니면 뭐 어쩌겠어. 죽을 때까지 용서를 빌어야지. 우리 딸 마음이 풀릴 때까지.'


그간의 서러움이 다 가시면 언젠가는 부모를 용서할 수 있을 거란 희망을 품고 만복은 점점 다가오는 만남을 기대했다. 언젠가는 기계가 아닌 진짜 인간의 목소리로 위로받게 될 날을 꿈꾸면서. 버스는 차츰 어둠이 짙게 깔리기 시작한 도로를 묵묵히 달려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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