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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배운 매니징 실전에 적용하기

주니어 PM의 생각 한 조각 (7)

by 오하경



저는 대학 졸업 후 3년여간 프리랜서로 일하다가 유니콘 기업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약속된 것 없이 바닥부터 나를 시장에 증명해 나가야했던 프리랜서 시절에 비하면 복지, 일정한 수입, 주52시간을 제공하는 회사라는 울타리는 참 따스했고, 맡게 되는 모든 일들이 순한맛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오래오래 행복하게 이지모드 회사 생활을 이어나가고자 했던 나의 꿈은 수습기간을 채 넘기지 못했는데, 회사가 나에게 대뜸 '액팅 파트장'을 맡기고 신규 팀 세팅을 요청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3개월 후인 입사 반년만에 정식으로 팀장이 되면서 회사 생활 난이도는 한순간에 하드모드를 아득히 넘어서게 되었습니다.



이 일을 잘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


팀원들을 기술적으로 가르치고 이끄는 것은 할 수 있었습니다.

저 역시 나를 기술적으로 이끌어 준 좋은 선생님들을 통해 스킬을 쌓았으니 그 교육법과 지식을 팀원들에게 물려주면 되었습니다.


이 직무가 가장 효율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시스템을 세팅하는 일도 할 수 있었습니다.

프리랜서 시절에 시도해서 성공적인 결과를 낸 적이 있었으니 그 경험을 참고하면 되었지요.


하지만 저는 조직을 관리해 본 경험이 전무했습니다.

관리는 둘째치고 조직에서 일을 해 보는 것 자체가 이곳이 처음이었습니다.

신규 팀을 세팅하는 일이었기에 당연히 인수인계도 없었고, 직장 경험이 없으니 행동모델로 삼을 선배도 없었습니다.


조별과제 조장이나 동아리 팀장과 같은 유관 경험들을 더듬어 떠올려 보아도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경험이 손에 꼽힐 정도였고 그 중 몇은 거의 트라우마가 되어 제가 프리랜서가 되도록 결정한 하나의 이유가 되어주었을 정도였습니다.


저는 회사에도 이러한 저의 부족함을 가감없이 드러내며 제가 적임자가 아님을 어필했지만, 왜인지 저의 상사와 회사는 이러한 사실에 크게 개의치 않고 모자란 것뿐인 저에게 팀장직을 맡기셨습니다.



잘 하는 법은 모르겠고, 못하면 어떻게 되는지는 알겠다.


열정없이 일 만들지 말고 안전히 회사를 다니고자 하는 팀장의 품에서 열정 넘치는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는 팀원이 얼마나 될까요? 있더라도 그가 원하는 최대한의 성과를 낼 수 있을까요?


반대로 J커브를 향해 밤낮없이 달리는 팀장의 품에서 루즈하게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는 팀원 또한 많지 않을 것입니다.


부바부 팀바팀이라는 말이 있듯 한 기업 안에서도 리더의 성향에 따라 분위기도, 업무 방식도 큰 차이가 나게 마련이고, 구성원들이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내게 되는지, 어떤 기분으로 보내게 되는지, 모두가 얻게 되는 성과는 어떻게 되고 함께 한 이 시기를 거친 이후의 모습에는 이 시간이 어떤 영향을 끼칠지 또한 조직장의 성향과 방침에 따라 많이 달라집니다.


당시 저는 이십대였기에 회사에 다니는 나의 친구들 중에는 아직 관리자의 역할을 맡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대부분이 자기 상사로 인해 끔찍해진 하루에 대해 푸념하는 막내들이었습니다.


친구들로부터, 상사의 책임감과 적극성, 실력, 인격 중 무언가가 모자랄 때 수많은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수많은 사례들을 들으면서 제 공포감은 커져만 갔습니다.


못하면 제가 책임진 모든 사람들의 삶에 악영향을 끼치게 되는데, 그러니 절대로 못 해서는 안 되는 일인데, 나는 그걸 잘 하는 방법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맡았으니 잘해야만 한다.


하지만 결국 저는 팀장이 되어버렸고 저에게 소속된 팀원들이 생겨버렸습니다.

보고 자란 직장 선배도 없고 인수인계도 없지만 기업내 조직 관리를 아주 잘 할 수 있게 되어야만 했습니다.


제가 맡게 된 팀원 한명한명의 하루하루가 제법 살만해야했고, 그들의 이후 삶에 저와 함께한 시간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야만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구성원에 따라 누군가는 이 안에서 안정감, 즐거움, 인정과 같은 것들을 느낄 수 있어야 했고, 누군가는 더 높은 처우를 받을 수 있게 해야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성장을, 누군가에게는 심리적 안정감을 주어야 했습니다.


책으로 배우는 매니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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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막막하기 그지 없던 상황에서, 추천받은 많은 비즈니스 명저들은 제게 유일한 동아줄이 되어주었습니다.


제가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을 생각하게 해주기도 했고, 제가 잘못하고 있던 부분을 마치 관찰한 듯 예시로 적어두어 저를 당황하게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책으로 배우는 것'과 실전의 괴리는 적어도 분명히 존재했고, 저는 당장 실전에 도움이 되어야 했기 때문에 단 한 문장도 그냥 '좋은 말씀'으로 넘길 수가 없었습니다.


괴리를 느끼면서 실전에 그대로 대입해, 실제 효과는 없이 팀원들로 조직 문화 관련 실험을 하는 느낌을 주는 일도 최소화 해야했습니다.


결국 책을 읽고도 책의 주제와 관련된 나의 가려운 부분이 전혀 풀리지 않으면 혼자서 책을 사람 멱살 잡듯 잡고서 '어디가! 이것도 말해주고 가!'라며 울부짖곤 했습니다.


실전에 대입하기 어려운 것들을 시대 차이, 나라간 문화 차이 등으로 덮어 넘어가거나, 어중간하게 소화하고 정책화한다면 팀원들에게는 '팀장이 또 어디 강연 가서 뭐에 쫒혀 온 모양이다.'라는 생각과 함께 피곤한 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생각으로 책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졌습니다.


'솔직히 상사한테 완전히, 지독하게 솔직할 수 있나? 옆자리 직원이 요즘 월급 루팡 중이라 너무 행복해 한다고? 이직용 포트폴리오가 생각보다 빨리 완성이 안 돼서 고민이라고? 이번 새로운 회사 정책이 너무 짜증난다고?

인사평사를 적는 팀장에게 얘기하는게 시스템적으로 말이 돼? 그게 어떻게 하면 되는데?'


'규칙없음을 위해서는 인재 밀도가 중요하다고? 법 없이도 살 사람들만 모아두면 법 없이도 살 수 있다는 말 아닌가?

그렇다면 어떻게 법 없이도 살 사람들만 모을 수 있는지, 인재 밀도 높게 인재를 모집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가!'


이러한 의문들을 그냥 머릿속에만 남겨두지 않고, 노션 리스트로 정리해두고,


다른 책을 읽어보거나 혼자서 어렵다면 팀원들과 솔직하게 토론하며 어느 정도 스스로 답할 수 있을 때까지 체크리스트에서 지우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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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질문에 대한 부정적 의견, 긍정적 의견, 관련 액션과 결과, 회고를 정리하기 시작하자 불가능하게만 보이던 조언들이 실제로 작동하는 모습을 보게 되기도 하고, 우리 상황에 더 맞는 다른 책이나 이론들을 찾게 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저라는 상황의 한계를 고려했을 때 할 수 있는 범위를 파악하게 되기도 했습니다.


이후 저의 상황과 유사한 상황을 직접 겪어보신 멘토님들을 여럿 뵙게 되면서 현장의 생생한 조언들을 듣게 되었고 그 조언들은 빠르게 피와 살이 되어주지만,


경험도 무엇도 없던 당시에는 절박하게 책을 물고 늘어진 이 목록이, 단순히 '책으로 배운 매니징'을 넘어 실전 경험 자산이 되게 정말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갑작스럽게 리더나 매니저의 직책을 맡게 되어 당황스러워 하시는 신입 리더분들께 저는 책에서 배울 부분과 인상적인 부분을 정리하는 것 외에 '내가 실제로 적용하기 어려울 것 같은 부분을 적어 정리하고, 그 부분을 실전에서 어떻게 메울지 치열하게 고민해보라.'고 조언드리곤 합니다.


그리고 저 또한 계속해서 쌓여나가는 체크리스트들을 계속해서 삭제해 나가기 위해 오늘도 읽은 책들을 다시 펼쳐 놓고 머리를 쥐어 뜯으며 고민을 계속해봅니다.


그리고 부족한 역량으로 열심히 꼭꼭 씹어 소화시키려고 노력한 이 경험들이, 저를 더 빠르게 성장시켜주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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