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중2를 탐구해 보자.1
추석 전 날이었다. 분명히 12시쯤 일어나 밥을 먹고 다시 낮잠을 자기 시작해 3시간을 내리 잤다. 잠이 안 온다고 한참을 뒤척일 거라 예상했는데 눕자마자 잠들었단다. 추석 날 아침에 8시에 깨워 차례를 지내러 갔다가 점심때쯤 집에 돌아왔는데 돌아오는 차에서 졸기 시작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소파에 눕자마자 또 2시간을 잔다. 소파에 몸을 모로 세우고 등받이에 얼굴을 묻고 자는 아이의 뒤통수를 보고 있으니 이 정도면 낮에 활동이 불가능한 귀신이 아닐까 싶다.
다행히도 북한이 무서워할 만큼 무서운 아이는 아니다. 그저, 수시로 검은 아우라가 몸을 감쌀 뿐이다. 검은 아우라에 휩싸이면 아이는 말이 느려지고 억양이 없는 일관된 톤을 유지한다. 세상 귀찮다는 표정과 몸짓을 갑옷처럼 두르는데 방금 전까지 내 옆에서 떠들던 아이는 온데간데없다. 아마 아이의 방은 검은 마법이 충전되는 장소인 듯하다.
며칠 전 아이와의 대화는 이랬다.
아이의 방문을 열면 순간 머리 뒤로 흑막이 촤라락 펼쳐진다. 곧 검은 아우라가 스멀스멀 움직이며 몸 전체를 감싸기 시작한다.
“김치찌개에 밥 먹을래?”
미리 해 둔 김치찌개와 식사를 권했다. 아이는 무표정한 얼굴로,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말한다. 목소리는 낮고 느리다.
“김치찌개는 별론데?”
“그럼 곤드레볶음밥 해줄까?”
당장 다른 음식을 할 시간이 안되니 냉동실에 있는 냉동밥을 권해본다. 냉동밥은 팬에 볶고 고기 몇 점 구워서 올려주면 될 거라 생각하며.
“점심에 학교에서 곤드레밥 먹었어.”
“그래? 그럼 짜장범벅 끓여줘?”
둘째 아이가 좋아해서 떨어질 때쯤 사다 놓는 컵라면을 권해본다.
“그게 뭐야, 그럴 거면 그냥 라면 끓여 먹지.”
아이의 방문을 잡은 내 손이 힘이 들어간다.
“그럼 김치볶음밥이라도 해 줘?”
아이가 멀뚱멀뚱 허공을 보고 있다. “어휴”하며 그냥 문을 닫아버렸다.
써놓고 보니 별 것 없는 대화 같다. 하지만 아이는 내 말의 대부분을 부정하는 말로 응수하고 이는 명확한 거절이 아닌 에두른 거절이다. 그리고 대답의 시작과 끝에 2초 정도의 정적을 두는 데다 대답하는 말도 늘어진 테이프 소리처럼 느리다.
그냥 ”아니, 안 먹을래! “ 라든가 ”아니, 파스타 먹을래! “라고 해주면 좋겠다. 빠르고 명확하게.
‘속이 터진다’라는 말이 어디서 왔는지 십분 이해 가는 순간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검은 마법은 탁월한 방어막이 있다. 이 방어막만 있으면 검은 마법쯤은 간단히 사라진다. 다들 알겠지만 방어막은 ‘친구’다. 친구 옆에 있으면 텅 빈 눈빛도, 어눌한 말투도 사라진다. 깔깔대며 웃기 바쁘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걷는다. 방어막은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으로도 가능한데 스피커폰을 켜 놓고 여럿이서 영상통화를 한다. 화면은 천정을 향할 때가 많고 각자 할 일을 한다. 누구는 게임을 하고 누구는 숙제를 하다가 “야, 아까 축구공 넘어갔을 때 체육쌤 열폭하는 거 봤냐?” 하고 말하면 우르르 한 마디씩 한다. 대화가 끊기면 자연스레 각자 일을 한다. 게임하는 타자 소리가 계속 울리기도 하고, 유튜브 소리가 나기도 한다.
있는 힘을 다해 기운을 쓰는 것을 ‘악’이라고 한다. 악을 바락바락 쓰며 아이들이 집중하는 것은 제 또래와의 소통이다. 그러고 나면 부모들에게 쓸 소통 에너지는 바닥이 나기 마련이다.
학원이 끝나면 저녁 시간이라 친구들과 만나도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한다. 아쉬운 마음에 밤까지 통화를 한다. 숙제도 해야 하고, 게임도 해야 하고, 음악도 들어야겠기에 아이들은 밤까지 바쁘다. 모자란 잠은 휴일 낮에 보충한다.
그래서 중2는 악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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