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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진진 Mar 06. 2022

입학식 날, 교장 선생님께 편지를 쓴 내 딸.

아이들이 개학을 했다.

전면 등교.

아이들이 등교를 시작했는데도 마음은 여전히 불안하다. 언제 학교에서 아이가 돌아올지 모르고 언제 학교에 가지 않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아직은 두터운 이불처럼 깔려있다. 학교에서도 언제 시작할지 모르는 온라인 수업을 대비하여 교과서를 학교에 두지 않고 들고 다니라며 집으로 교과서를 보내왔다. 무거운 교과서와 함께 하교한 아이들을 맞은 부모들은 두터운 이불 위에 얇은 먼지가 쌓인 기분이었을 테다. 무겁고, 갑갑한 공기가 절반은 차있는 듯하다.


고맙게도 아이들은 마냥 기뻐한다. 화장실 다녀오는 것만 빼면 움직이지도 못하게 하고 친구와 말도 못 하게 했었는데 쉬는 시간이 10분이나 생겼다고 좋아한다.

이번에 초3이 된 아이는 체육이 생겨 더 좋아한다. 1, 2학년에 없는 교과목일지라도 코로나만 아니었으면 공연도 하고 줄넘기도 하며 체육관에 드나들었을 텐데 2년간 체육관 한 번 들어가 보지 못한 아이는 누나에게 체육 시간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부러워했었다. 이제 정식으로 체육 교과가 생겼으니 축하해 아들!

참 웃프다.


올해 중학교 1학년에 입학 한 딸아이가 집에 오자마자 도서관이 어떻고, 선생님은 이랬고, 식당은 저랬고 하며 말을 쏟아내었다. 둘째 아이가 한참을 옆에서 같이 듣더니 "누나는 엄청 새롭겠다. 나는 교실만 바뀌었는데도 새로운데 누나는 다 바뀌었잖아." 한다.

 학교를 너무 좋아하는 딸아이는 신이 나서 외친다.

"응, 새로워. 엄청 달라!"

맞다. 다르다. 그것도 엄청나게.


코로나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참, 살다 보니 이런 일도 있네’를 남발하고 있지만 코로나를 빼보아도 차이는 여전히 존재한다. 가파른 경제 성장만큼 가파르게 치솟은 세. 대. 차. 이.

내가 학생이었을 때와 비교하면 아이와 나의 공통점은 ‘교복을 입는다’ 정도일듯하다.

나는 학교에서 정해준 교칙에 어떤 의문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교복을 입어야 한다기에 입었고 귀밑 3센티의 머리 길이여야 한다기에 맞추어 잘랐다. 발목 양말을 신어야 한대서 긴 양말을 신을 때면 두세 번 접어 내려 발목선을 맞추어 신었다. 선생님들과 사적인 대화를 해본 적도 없고 친하게 지내야겠다는 생각도 해 본 적이 없다. 내게 선생님은 그저, 교탁 위에 서 있는 우뚝 솟은 하나의 인간이었을 뿐, 로봇으로 대체해 놓아도 전혀 상관없을 존재였다.


딸아이는 중학교 입학식이 다가올 때부터 교장선생님께 편지를 써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옆 학교는 염색이 허용되는데 왜 자신의 학교는 안되냐며, 부당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이의 말을 듣고 어른들은 토론의 장이 열렸다. 염색을 왜 하려고 하느냐는 논제 확인부터 시작하여 이점과 단점을 열거하고 서로 자기주장을 아이에게 관철시키려 노력했다. 나는 아이에게  좀 더 객관적인 데이터를 가지고 편지를 쓰는 것이 좋겠다고 인근 학교의 염색 규정에 대해 알아보라고 했다. 아이는 학교마다 전화를 걸었지만 원칙은 안되고 자세한 건 담임선생님께 물어보라는 뜨뜻미지근한 답변을 받았다.


아이는 세장의 손편지를 썼다. 컴퓨터로 써서 출력해놓고 단어와 문맥을 고치고 또 고쳤다. 그리고 한 자 한 자 정성스레 써 내려갔다. 자신의 글씨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한숨도 쉬고 잘못 쓴 글씨 때문에 편지지를 잘라 붙이며 눈을 부릅떴다. 다시는 틀리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엿보였다. 아이는 곱게 접은 편지지 위에 가장 어울리는 씰링 왁스를 고르고 골라 붙였다.


학교 입학 첫날, 아이는 처음 입어보는 교복을 매만지며 한참을 거울 앞에 서서 머리를 빗고 안경을 썼다. 그리고 교복 주머니에 편지를 꽂았다. 떨어질까 봐 염려되서인지 주머니에 편지를 잡은 손은 빠질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집에서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전화가 왔다.

“엄마, 교장선생님이 누군지 모르겠어!”

나는 교장실을 찾아가 보라고 했다. 짧은 전화를 끊고 어이없는 웃음이 났다. 아이들은 ‘이것을 이 정도 하니 저것도 이 정도는 하겠지’라는 예상 따위 하면 안 된다. 어떤 건 어른보다 나은데 어떤 건 유치원생보다 못하다. 인지의 범위가 넓어졌지만 그 편차는 매우 들쑥날쑥하다.


학교를 다녀온 아이에게 편지 잘 전해 드렸냐고 물었다. 아이가 교문에 서 계신 선생님께 교장실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그 선생님께서

“내가 교장이야”

라고 하셨단다. 아이가 얼른 편지를 드렸더니

“이쁘게 썼네. 잘 읽어볼게”

하셨다고 한다.

나는 그것으로 만족한다. 되든 안되든 아이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싶어 하고 표현할 방법을 스스로 찾아 실행하는 것이 기특하다.

중학교 입학식 날 교장선생님께 편지라니.. 사실 놀랍다.

머리끝에서 10센티 정도를 파란색으로 염색하고 싶다는 것도 놀랍다. 왜 파란색이냐고 물었더니 특별하고 싶은데 초록색은 촌스러울 것 같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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