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틈 활용하기

가벼워지는 연습

by 채플힐달봉

긴 방학이 끝이 났다. 아이들은 학교로 복귀했고 나 역시 아이들이 없는 오전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려고 재정비 중이다.

아이들을 학교에 등교시키고 부랴부랴 책가방을 챙겨 내 학교(community college)로 등교했다.

1시간 15분짜리 Public speaking 수업에 등록한 학생들은 나를 제외하곤 전부 20대 초반 학생들이다. 이 젊음들 속에서 완전한 소외를 느낀다.

옆 자리에 앉은 발랄하고 상냥한 21살 여학생에게 내 나이를 공개했더니 이 도전이 너무 훌륭하다며 미국인 특유의 과장된 칭찬이 돌아왔다.

교수는 어림잡아 보아도 80에 가까운 노인이다. 자신의 경험담들을 늘어놓을 때 묻어나는 그의 연륜-일테면, ‘1975년에 교직을 시작했을 때’라는 말속에서-은 학생들과 그 사이의 간극이 어느 정도인지 뜨아, 하게 만든다. 나는 마치 이 어린 학생들과 교수 사이에 놓인 중간 징검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 그렇게 느낀다. 왠지 교수는 강의 내내 나만 쳐다보는 것 같다.

학생들의 대부분은 고개를 숙이고 있거나 자신의 모니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국 교육에 길들여진 80년대생 아줌마만이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교수의 모든 말에 동의한다는 듯한 제스처로 나이 든 교수를 향한 존중을 표한다.

오늘 내 앞자리에 앉은 벌크업 심하게 한 남학생이 작은 모니터 속에 아이폰을 감추고 게임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 놈의 시키, 이 버르장머리 없는 놈!‘, 뒤통수를 한 대 딱 때려주고 싶었다.

나이 많은 교수는 뒷 말을 자주 흘렸다. 간혹 말을 삼키듯이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과의 대화는 온 신경을 곤두서게 만들고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가중시킨다.

’아니, 당최 communication 전공이라는 교수의 말이 저토록 불분명하다니!‘, 나는 매 강의마다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가 없다.

영어 듣기는 어느 정도 경지에 올랐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수업은 20%도 알아듣지 못하는 기분이다.

교수의 말을 녹음해서 집에 돌아와 여러 번 반복해 들어봐도 도통 의미를 알 수 없다. 난감하다. 하지만 아직 아무도 나의 상태를 눈치채지 못했다.

이 수업은 세 번의 발표가 계획되어 있다. 이제 곧 나의 모든 눈속임이 낱낱이 드러날 것이다.

오늘 수업은 예정보다 15분 일찍 끝났다.

교수가 시계를 보며 “60초가 남았군, 그렇지만 오늘은 이것으로 수업을 맺자”라고 했을 때, 사실 교실에 있던 모두가 우리의 수업 시간은 10:30분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10:45분에 끝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누구도 교수의 착각을 정정하지 않았다. 암묵적인 환호가 모두에게 동시에 번졌음이 분명하다. 행여 교수가 아뿔싸, 그의 착각을 눈치챌 새라 일제히 가방을 챙겨 교실을 빠져나갔다.


계단에서 한 무리의 EMS(Emergency Medical Services) 학생들이 응급 환자를 이송하는 실습을 하는 중이었다.

그들의 교수는 그들에게 계단에 쓰러진 응급 환자(dummy)를 들것에 안전하게 싣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었다. 학생들은 모두 의료 scrub을 입고 있었고 몇몇 여학생들은 저들끼리 키득거리고 있었다.

아마도 불쑥 나타난 나 때문에 모의 실습에 몰입이 깨져 불현듯 민망함을 느꼈던 것 같다.

언젠가 저들 중 누군가는 진짜 응급환자를 이송하면서 이 계단에서의 실습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그들의 기억 속에 계단에 불쑥 나타난 40대 동양인 아줌마도 남아있을까?

’아, 그때 머리를 질끈 묶고 연신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사라졌던 그 아줌마는 지금 뭐 하고 있을까?’, 뭐 누군가는 그렇게 나를 떠올릴 수도 있지 않을까?

모든 마주침을 다 기억할 수는 없지만 나는 때때로 우연한 마주침 들을 기록해 둔다. 기록은 찰나의 순간을 영원으로 바꾸어주기도 하니까.


수업이 일찍 끝나 계획보다 일찍 학교 근처의 스타벅스에 도착했다.

나는 주로 주문할 때 남편 계정으로 된 앱을 사용한다. 자리를 잡고 앱으로 음료를 주문하고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렸다.

남편은 한사코 어려운-미국인들 누구도 한 번에 제대로 부르지 못하는- 한글이름을 10년째 사용하고 있다.

분홍색 염색머리를 질끈 묶고 검은색 캡 모자를 눌러쓴 직원이 남편의 이름을 불렀다. 음료를 받으러 다가갔더니 “제가 제대로 발음했나요?” 묻는다.

내가 지금껏 들어보았던 발음 중에 가장 정확했다. 그녀가 활짝 웃는다.

이전에도 이 매장에서 만난 직원 한 명이 컵에 한글로 남편의 이름을 또박또박 적어놓았기에 너무 놀라 물었더니-물어본 사람은 내가 아니라 남편이다. 그날은 남편과 함께 있었으니. 혹시라도 내 글을 읽고 사실을 왜곡했다고 시린 눈을 뜨고 지적할까 봐 사실을 밝힌다- 그녀가 대답하길 2018년부터 지역 학교에 개설된 한글 수업을 듣고 있다고 했다.

한국의 문화는 내가 살고 있는 작은 시골 동네에도 영향을 미쳤다. 실로 놀랍고 뿌듯한 일이다.


사소하고 일상적인 기록들을 많이 남길 생각이다.

일상의 틈에서 사소함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은 시간을 느리게 연장하는 효과가 있다.

일상의 가벼움들이 나를 고통으로부터 잠시 떠나 있게 만든다.

최소한 지금, 이 시간에라도 내 무거운 고민들로부터 자유할 것. 떠나려는 고통을 끝끝내 끌어다 내 옆에 앉혀두진 말자.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 마태복음 6:34

재충천을 위해 주어진 이 시간에까지 괴로움을 생각하지 말고 새로운 에너지로 채워 오후의 전쟁을 준비하자.

아니, 어쩌면 지금의 가벼움이 오늘 오후를 괴로움이 아니라 화해와 어울림으로 바꾸어줄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