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을 향한 갈망

과연 평범이란 것이 있을까

by 채플힐달봉

2016년 12월 16일,

지난 일주일을 살면서 가장 많이 한 생각이 '나도 평범하게 살고 싶다.'였다. 이 말을 마음에 담는 순간부터 눈물이 맺힌다.

사실, 평범이라는 것은 실재하지 않는다. 평범이라 여기는 삶들의 속속을 들여다보면 어느 것 하나 평범한 것이 없다. 우리는 모두 비범 가운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재한 적 없는 그 '평범'을 부러워하게 된 것은 순전히 내 삶을 향한 연민 때문이다. 자기 연민은 죽지도 않고 살아 돌아오는 각설이처럼 때마다 나를 찾아온다.

내 삶을 이토록 고단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일까?

장애를 갖고 태어난 둘째 아이, 7개월째 job 없이 점점 주눅 들어가는 남편, 4년이나 살았는데도 여전히 영어의 고통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하는 낯선 이 미국 땅.


장애아를 키우는 엄마'는 결코 평범하지 않다. 존재하지 않는 평범이라지만 그래도 엄연히 존재하는 일반적인 범주 안에는 들고 싶었다.

사회는 점점 장애에 관대해져 가고 있다고 하지만, 나는 여전히 드러나지 않는 사람들의 거리낌을 굳이 느끼며 살아간다.

나의 아이가 자신의 아이 가까이로 갈 때 그 부모는 흠칫 놀라 자기 아이를 보호하려 든다. 본능적이고 반사적인 행동에 머쓱해져,

" 아니요, 우리 아이는 어찌 되어도 상관없는데 혹시 그 댁 아이가 다칠까 봐서요."

라며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변명을 하는 것이다. 그 행동과 그 눈빛들에 담긴 낯섦에 대한 두려움을 나는 너무 잘 알고 있다.

나도 그랬다. 내가 그 일반의 범주 안에 들어 있을 때 나 역시 그들처럼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태연함을 가장했지만 흠칫 피하게 되는 본능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것은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사과할 일은 더더욱 아니다.

때문에 나는 점점 내 아이를 보호하는 일보다 다른 아이를 보호하는 일에 더 신경을 많이 쓰게 된다. 내 아이를 질책하게 되고 내 아이를 가두게 된다.

그 사실이 슬프다. 평범에 어울리지 못하는 우리의 일상이 그들 눈뿐 아니라 나의 눈에도 이질적인 것이 될까 봐 두렵다.

자라며 많은 장애우 가정들을 보아왔다. 그들은 한결같이 고단함을 온몸에 지고 사회의 언저리에서 행여 평범들과 부딪힐까 봐 조바심 내며 살았다.

내 아이가 장애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결심했던 것 중 하나는

'나는 결코, 고단할지언정 고단함을 지고 살지 않으리라.'

그 결과는 이웃들의 " 어쩜 그렇게 씩씩하고 밝아요? "라는 칭찬 아닌 칭찬으로 나타났다.

나는 그 말이 기분 좋다. 씩씩함을 꾸며낸 것이 아니라 나는 실제로 씩씩하기 때문에 처음 그 결심을 지켜낸 것 같아 뿌듯하고 스스로가 대견하다.

열 중의 구는 그렇다.


열 중 하나가 오늘 같은 이런 날이다. 지극히 평범한 것을 향한 갈망.

이 갈망은 살아가는 평생 품고 살아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다만 바라는 것은 이 하나가 스무 중의 하나, 서른 중의 하나, 백 중의 하나로 점점 희미해져 가길..


2016년에 써 두었던 글을 다시 복원해 읽으면서 10년 사이, 나는 참 많이 자랐구나 싶어 묘한 성취감을 느낀다. 평범을 향한 갈망은 어느새 백 중의 하나로까지 희미해졌다.

참 감사한 시간들이었다.

나의 비범이 나를 지키는 무기가 되었음을 이제는 고백할 수 있게 되었다.

내 마음이 약해질 때, 땅 끝에서 주님을 부릅니다. 내 힘으로 오를 수 없는 저 바위 위로 나를 인도하여 주십시오
시편 61:2 새번역

나는 단단해졌고 동시에 유연해졌다.

아이가 자라는 동안 나도 함께 자랐다.

아이와 함께 하는 하루하루가 평범하고, 또 동시에 비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