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장애아 부모들의 두려움
어제저녁에 Missing Child 알림이 떴다. 한 아이가 숲에서 사라졌다. Asheboro는 우리 집에서 1시간 반 정도 떨어진, 숲이 빽빽한 동네다.
아이는 자폐증을 가졌고 말을 할 수 없으며 사람들이 접근하면 도망쳐버리는 특성을 가졌다. 아이는 이제 겨우 7살이다.
남일 같지가 않아서 온종일 지역 뉴스를 찾아보고 있다. 아이가 사라진 지 30시간이 지났다. 지역의 모든 경찰 인력이 동원되었고 헬리콥터가 떴다.
지역 주민들 모두가 숲으로 뛰어들어 아이를 찾아 헤매고 있다. 지난밤에도 수색은 그치지 않았고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아이를 찾고 있다.
뉴스 댓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간절한 기도와 조언들을 남겼다. 물가를 수색해 보라는 댓글이 종종 눈에 띈다. 우리 아이도 그렇지만 장애를 가진 많은 아이들이 물을 좋아한다.
위험에 대한 인지가 없는 우리 아이들은 물의 깊이를 가늠하지 못한다.
눈부신 경이로 가득 찼던 자연이 하루아침에 아이를 삼켜버린 끔찍하고 거대한 미로가 되어버렸다. 아이의 경로를 짐작할 수가 없다.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은 앞으로만 끝없이 걷는다. 뒤를 돌아 되짚는 법이 없다.
아이가 사라진 숲은 하필 National Forest로 지정된 울창한 숲이다. 핸드폰 신호도 잡히지 않아서 운 좋게 아이와 마주친다 해도 경찰에 알릴 방법이 없다.
아이를 붙잡을 수도 없다. 아이는 낯선 사람의 접근에 부리나케 달아나버릴 것이 뻔하다.
미국은 대도시가 아니고서는 가로등도 흔치 않다. 해가 떨어진 숲은 그야말로 칠흑 같은 어둠으로 덮인다.
경찰은 연못과 계곡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절망스럽다.
야속하게도 저녁 7시가 지나면서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발달장애아이를 키우고 있는 집들은 아이가 언제든 사라져 버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매일 긴장하며 살아간다.
집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모든 문에 온갖 잠금장치를 설치하고 아이를 집안에 가둔다. 가둔다는 표현이 언짢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아이를 보호하려는 최소한의 노력일 뿐이다.
외출할 때 허리줄을 채우거나 미아방지 목걸이를 걸고 아이의 등에 이름과 주소가 적힌 스티커를 붙여두기도 한다.
부모들은 아이의 심기를 최대한 건드리지 않으면서 아이의 인적사항을 사람들에게 알릴 방법을 어떻게든 모색해야 한다.
화음이는 감각이 매우 예민한 아이다. 몸에 무엇이든 걸리적거리면 죄 해체해 버리고 물어뜯어 버린다.
우리는 아이의 움직임을 최소화하기 위해 외출할 때 유모차형 휠체어를 사용한다.
지금으로서는 책가방에 에어택을 심어둔 것이 가장 현대화된 방법이다. 어떻게 하면 이 현대화된 추적장치를 몸에 붙일 수 있을지 고심하고 있다.
하루는 온 집을 뒤져도 화음이가 보이지 않았다.
청소기 소음 때문에 아이의 움직임을 듣지 못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밖으로 나갔으면 어쩌나. 순간적으로 오싹한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내렸다.
화음이를 소리쳐 부르면서 집 안을 뛰어다닌 건 사실, 몇 초 남짓이었을 것이다. 차고로 이어지는 문의 잠금장치가 풀려 있는 것이 보였다.
아이는 차 문을 열고 들어가 콘솔박스에서 그동안 금지되었던 물품들을 잔뜩 꺼내어 흩어놓고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자유시간을 들켜버린 아이의 실색한 표정과 마주하자 안도와 함께 그만 화가 치밀었다. 아이를 놓친 것은 순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내 탓이면서도 아이에게 모든 원망을 쏟아냈다.
아이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수시로 죄책감을 전가할 대상을 찾는다.
숲에서 아이를 놓친 부모의 심정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졸아붙는 기분이다.
제발, 이 대대적인 수색의 끝에 부모의 품에 달려와 안기는 아이의 뉴스를 보고 싶다.
숲을 헤매다 지친 백설공주가 난쟁이들의 오두막을 발견하고 단잠을 자고 일어난 것처럼 부디, 사라졌던 아이가 숲의 어느 친절 속에 머물다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위의 글을 쓰고 만 하루가 지났다. 사라졌던 아이는 결국 연못에서 발견되었다. 소식은 NC 전체에 전해졌고 뉴스에 귀기울이며 마음 졸이던 모두에게 슬픔을 안겼다.
아이가 하나님 품에 안겨 고통 없는 그 곳에서 온전한 모습으로 한없이 뛰어놀기를 기도한다.
부모의 자책이 오래가지 않기를. 하나님의 위로가 그 가정을 다시 회복시키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