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에서 예배로
일교차가 커지면서 감기가 돌기 시작했다. 스스로의 위생을 챙기지 못하는 화음이는 씻지 않은 손을 자주 입으로 가져갔기 때문에 이 시즌이면 늘 감기를 옮아왔다.
며칠 전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요즘 우리 반 아이들 사이에서 감기가 돌고 있어요. 오늘 보니, 화음이가 옅은 기침을 하고 콧물이 조금 흐릅니다. 심각한 것은 아니지만 알고 계시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연락드려요.
아니나 다를까, 집으로 돌아온 화음이의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코 주변이 헐어 발갛게 부어있었고 맑은 콧물을 연신 비벼대서 얼굴이 온통 콧물로 번들거렸다.
뜨거운 물을 틀어 샤워부스를 부연 수증기로 채운 뒤 아이를 밀어 넣었다. 노곤한 증기들이 아이의 콧속을 부드럽게 만들어 맑은 콧물이 저절로 주르륵 흐르도록 만들 것이었다.
화음이는 스스로 코를 풀지 못한다. 그렁그렁 코 속에 갇힌 누런 콧물들이 빠져나오지 못하고 겨울마다 내 속을 태웠다.
학교는 온갖 세균들이 번성하는 장소이고 하필 모든 사람, 모든 물건들과 접촉으로 교감하는 화음이는, 당연하게도 세균들의 환영받는 숙주가 되곤 했다.
그래서 학교에서 돌아온 화음이를 바로 샤워실로 데려가 씻기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상의 루틴 중 하나이다.
그런데 점차 아이의 몸이 커지고 고집이 세지면서 샤워실까지 데리고 가는 것조차도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위생의 개념이 없는 데다 이 닦기, 얼굴 문지르기 등을 자기를 향한 공격으로 느끼는 아이에게 씻는 것의 중요성을 이해시키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아이가 휘두르는 주먹질을 요리조리 피해 가며 비누칠을 하고 막힌 코를 빼어내고 손톱을 잘라냈다.
씻고 난 후에도 몸에 남은 물기를 닦아내고 머리를 말리고, 로션을 바르는 일, 옷을 챙겨 입히는 일들이 줄지어 따라온다. 이 모든 일련의 과정들에 화음이는 대체로 비협조적이다.
내 몸을 씻기고 돌보는 일은 뭐 가끔 귀찮을 때도 있긴 하지만, 완료하고 났을 때의 상쾌함이 희열로 돌아온다.
자기애가 살아나고 피로가 씻겨나간다.
그런데 내가 아닌 다른 몸을 씻기고 돌보는 일은 크게 보람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악덕 기업의 사장처럼 그저 내 노동력을 보상도 없이 착취할 뿐이다.
나는 종종 씻고 나와 보송한, 벗은 몸으로 옷 입기를 거부하고 도망 다니는 화음이에게 소리를 질렀다. 소리지름이 절대 옷 입기를 수월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데도 나는 그만 참지 못하고 버럭, 화풀이를 하곤 했다.
“언제까지 엄마가 너를 다 챙겨줘야 해! 엄마가 해 줄 때 순순히 협조라도 잘하던지. 엄마 정말 힘들어 죽겠어.”
나는 자꾸만 커져가는 아이의 몸이 무섭다. 화음이에게서 나타나는 2차 성징의 징후들이 나를 바짝 긴장시키고 앞으로 내가 감당해야 할 ‘일들’의 목록이 더 늘어나는 것이 두렵다.
육체를 입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 땅에서의 삶이 참 버겁게 느껴지는 하루하루다.
썩어 없어질 몸을 왜 우리는 이토록 매일 가꾸고 돌보아야 하는가, 빠져나올 수 없는 더러운 늪에서 진이 빠지도록 발버둥을 쳐 보지만 결국 제자리에서 헐떡일 뿐이다.
그런 중에 요즘 읽고 있는 책, 챕터 3에 붙은 소제목 ‘이 닦기’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몸을 돌보는 사소한 일과가 어떻게 거룩한 예전(禮典)의 과정이 될 수 있는지를 조목조목 설명해 주는 챕터였다.
몸을 소홀히 여기거나 얼굴만 쳐다보면서 주근깨 숫자를 세는 등 어떤 방식으로든 몸을 폄하하는 것은,
가장 영광스럽고 오래된 대성당보다 더 경이로운 예배 공간이자 거룩한 장소를 경시하는 것이다.
화음이를 향해 고함치고 있는 내 뒤통수를 누가 ‘정신 차리라’며 흠씬 후두려팬 느낌이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쩜 이렇게도 절묘한 타이밍에 책의 한 구절만으로도 나를 반성케 하시는가. 나를 향한 하나님의 관심이 이토록 내 일상에 밀착해 있음을 감사함으로 느낀다.
나는 나뿐 아니라, 화음이의 몸을 청결하게 돌보는 매일의 행위로도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일순, 치가 떨리도록 서로를 경계하고 공격했던 ‘이 닦기‘의 노동이 거룩한 행위로 승격되었다.
나의 도처에 흩뿌려진 하나님의 세심한 비유들을 자주 눈치챌 수 있기를 바란다. 시선의 변화는 나의 삶을 좀 더 할 만한 것으로, 좀 더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들어준다.
그러므로 빡빡한 일상 중에도 나는 성경을, 책들을 도무지 놓을 수가 없다. 단단히 붙들고 하루를 살게 하는 생수를 들이켜야만 한다.
화음이가 다시 그렁그렁 막힌 콧소리로 나에게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다.
자, 그럼 이제 한 손에 식염수 코 스프레이와 면봉을 챙겨 들고 정결한 마음으로, 아름다운 성전인 화음이의 몸을 가꾸러 경건하게 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