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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희 Apr 15. 2021

이은혜, <읽는 직업>


<읽는 직업>에 대해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전에 한 가지 솔직하게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나 자신을 달래야 했다. 그 이유는 방대한 독서량을 바탕으로한 풍부한 인용과 지적인 문장들에 조금 위축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책 안에 언급되는 저자나 책들을 모두 알고 있어야만 책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저자는 책이 진행되는 맥락 안에서 충분히 예상하고 이해가능한 방식으로 저런 것들을 언급했고, 적절하게 설명했다. 더구나 저자가 밝혔듯 그녀는 15년간 출판 편집자로 일해 온 전문가다. 그녀가 한 권의 책을 발행하기 위해 다방면의 책을 섭렵해야 함은 어쩌면 직업인으로서 꼭 해야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책에 대해서만은 언제나 '좀 적게 읽고 있다'는 내 안의 자격지심 같은 것이 문제였다. 대단한 독서가도 아니면서 나는 왜 이런 자격지심을 가지고 있는건가. (나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지만, 일단 그렇다고 하니 그러려니 하는 중이다.) 책을 읽으며 '모르는 저자가 왜 이렇게 많아?' '이 책이 그렇게 유명하다고? 난 처음 들어!' 같은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다행히 초반부를 지나며 '그래, 세상은 넓고 내가 모르는 저자와 책은 많아. 우선 책에 집중하자'며 스스로를 설득(이라 쓰고 포기라 읽는다) 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이 글이 "이은혜 편집자님은 대단한 분이십니다. 그녀의 독서량은 어마어마 합니다."가 될 뻔 했다.







다시 책으로 돌아와서,


15년간 편집자로 살아온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독자와 저자 그리고 편집자의 삶과 이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 엮어낸 이 책은, 바야흐로 글쓰기와 책 출판이 '취미'가 된 시대에, 그럼에도 언제나 불황을 면하기 어려운 출판 시장에서, 다시 책에 대해, 책을 읽는 일에 대해, 책을 쓰는 일에 대해, 그리고 책을 만드는 일에 대해 진지하게 되돌아본다.


편집자라는 직업인으로서의 자아를 내려놓는다면 저자는 꽤 많은 책을 읽는 다독가일 것이고, 이 책을 쓰면서는 '저자'가 되었다. 책의 제목처럼 그녀는 편집자라는 직업을 '읽는 일'을 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것은 그녀 스스로가 저자의 입장과 편집자의 입장, 마지막으로 독자의 입장을 모두 조금씩은 경험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테다. 책의 구성 역시 '저자 관찰기', '편집자의 밤과 낮', '독자와 책을 옹호하며'라는 세 개의 장으로 구성하여 저자가 각각의 영역에 대해 경험하고 느낀 것들, 보고 배운 것들을 고루 담았다.


가령, "일종의 산파 역할을 했던 편집자는 밤새 침대 옆을 지키며 출산을 도왔던 그 산모(저자)와 아기(책)을 잊지 못한다" "책은 저자와 편집자만 자족하는 물건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같은 문장들은 다분히 편집자의 입장에서 쓴 것이겠고, "책을 읽으면 삶이 나아질까." 라고 묻고는 곧, "삶에 윤기가 좀 흐르지만 자기 자신이 꽤 나아지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기적인 자아는 잘 변하지 않아 책을 읽어도 제자리걸음인 자신을 발견할 때가 많고, 그것은 꽤 서럽다."는 문장에서는 독자로서의 자아가 완연히 드러나는 식이다.



저자는 "1000권밖에 안 팔리는 책을 줄줄이 생산해내는' 기이한 존재"로서의 편집자를 말하면서 이제는 저 말이 "반은 칭찬으로, 반은 비웃는 소리로 들린다"고 고백한다. "부는 커녕 자신의 밥벌이도 못 하는 것 같기 때문"이라는데, 그러면서도 어떤 저자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자신에게 "결여되어 있던 새로운 감수성을 얻"고 "무엇보다 어려운 현실을 딛고 탄생하는 작가를 구체적으로 목격할 수 있던 점"을 잊지 못한다. 이러한 경험은 자연스럽게 "작고 연약한 존재들과의 관계에 생채기를 내지 않고 잘 다져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저자가 단지 자신의 직업 정신과 입장의 한계를 옹호하려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가 실패할 기회를 허용하지 않고, 한번 미끄러지면 정상 궤도로 다시 올라올 수 없는 곳이라는 비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럼에도 채용자로서 왜 이런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걸까"라며 다양한 경험을 통해 실패를 쌓아온 지원자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반성하고, "모험과 실험보다는 안정과 확신에 올라타 애초에 자신이 무엇 때문에 편집자가 됐는지 점점 망각해간다"고 질책한다.



저자는 결국 '책'이라는 매체를 통해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 - 독자, 저자, 편집자 - 가 끝내 포기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독자는 베스트 셀러나 쉬운 책들만 좋아한다는 편견을 갖기 쉽지만, 실은 자신만의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 예리하게 훌륭한 책들을 골라내는 사람들이라는 것, 저자는 매너리즘에 빠지거나 자기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성마른 존재인 것 같지만, 실은 책 속에 "자기 자신을 투신"하고 "자기만의 개별성을 지우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하면서" 글을 써내는 사람들이라는 것, 편집자는 베스트 셀러에 목맨 채로 수준 이하의 비슷한 책들만 찍어내는 사람들인 것 같지만, 실은 자신이 기획한 "진지한 책들은 판매가 잘 되지 않아 현실 감각 없는 무능한 편집자가 될 뻔한 비참한 기분"을 안고 다시 일어나 도전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 말이다.


나아가 저자는 감히 이 모든 사람들이 만나 서로 연결되면서, 책을 만드는 일이나 그와 관련된 산업들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장의 제목처럼 "독자와 책을 옹호"하는 것이 저자와 편집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 고민하는 것이다.








어떤 일에든 그 일을 겉에서 바라볼 때는 알 수 없는 면이 존재한다. 이런 경우 대부분은 어두운 면에 대해 잘 모르리라 생각하지만, 결국 겉에서 바라보는 위치에서는 밝은 면도 어두운 면도 일부분만 알 수 있으리라. 나는 지금까지 독자의 입장에서만 책을, 그리고 책을 둘러싼 산업과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조금은 환상을 가진 채로, 자주 오해했다.


<읽는 직업>을 통해 들여다 본 책과 독자, 저자, 편집자의 삶이란 내가 모르는 밝은 면 만큼이나 어두운 면도 있는, 지극히 인간적이고 평범한, 동시에 그것만이 가지는 특별함이 공존하는 세계였다. 책과 가까웠다가, 잠시 멀어졌다가, 다시 책과 가까워지려는 내가, 이 책을 통해 책이 조금은 '살아 있는' 존재인 것처럼 느껴졌다면 그 또한 오해일까. 여전히 책 안에, 그리고 그것을 읽고 쓰고 만드는 행위 안에 뭔가가 남아 있다고, 그리고 그것은 이어질거라고 말한다면 섣부른 전망일까. 하지만 희망을 갖는 것조차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세상에서, 책마저 희망이 되지 못한다면 그건 좀 많이 서글픈 일이 아닐까.








덧. '팩트체커'에 대한 부분이 흥미로웠다.

"지성, 전문성, 근면성, 인내심을 갖춘 팩트체커들은 실제로 만나면 얼음처럼 차가울 것 같지만 오히려 유연하고 이해심이 많아 놀라움을 자아낸다. 왜 그럴까. 타인의 오류를 지적할 때 상대의 마음이 다치지 않게 부드러워야 하며, 또 인간이라면 언제나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아서 오만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류를 인정하는 것과 외면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우리는 오늘도 그 일을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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