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의 연애기간을 거쳐 남편과 결혼했지만 결혼 전에도 취미나 관심사가 썩 맞는 건 아니었다. 계획을 짜서 놀러 가고 싶은 나와 무계획성인 남편. 영화 인기도 순위를 따져 이미 검증된 작품을 보고 싶은 반면 남편은 남자들이 대부분 좋아하는 액션물을 좋아한다. 맛집 가서 줄을 서서라도 먹고 싶은데 남편은 줄 서기나 기다림, 시끄러운 것을 싫어해 한가한 곳을 찾아다닌다. 나는 밖으로 나가서 돌아다니고 걷고 몸으로 행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남편은 특별한 일이 아니면 집에 머무는 것을 좋아한다. 나물 위주의 자연식을 즐기는 나와 다르게 남편은 생선과 육고기를 선호한다. 팥죽을 먹어도 나는 팥칼국수 위주로 먹고 남편은 팥국물 위주로 먹는다. 뭘 더 먹어야 살로 갈까 생각하고 있을 때 남편은 먹을 때마다 살찔까 봐 고민한다.
이렇듯 외모나 취향이 전혀 다른데 어떻게 함께 살기로 결정했을까? 콩깍지가 씌어도 단단히 씌었나 보다. 결혼 후 첫 아이를 낳던 날 타지로 떠나간 남편, 한 달에 한 번이나 보며 살았다. 이미 결혼 전 사업실패로 부채가 많았던 남편은 삶이 녹록지 않았다. 뭔가 일을 해보고자 애를 썼으나 십 년이 지나도 여전히 제자리걸음이었다. 아이 둘을 키우면서 남편 뒷바라지에 들어간 돈만 해도 수천만 원이다. 빚독촉에 아이를 떼어놓고 일을 다니고 밤근무를 하면서 흘린 눈물만 해도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다.
워킹맘으로 동분서주하는 동안 나이 마흔이 되었다. 또 남편은 큰 사고를 쳤고 행정절차를 밟아야 했다. 어렵게 마련했던 아파트를 팔고 남은 자금이 또 고스란히 남편 밑으로 들어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돈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남편과 끊임없이 줄 줄만 알았던 나는 결혼 십오 년 무렵이 되었어도 구도는 변함이 없었다. 이 과정에서 밝혀지는 남편의 외도는 크나큰 배신감을 가져왔다. 이때의 충격은 고스란히 몸에 상흔을 남겼다.
이를 계기로 나이 마흔이 되어서야 남편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끊었다. 두 번째 이혼도 했다. 첫 번째는 경제적인 사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이혼했다가 아이들이 커가면서 합쳤다. 두 번째 이혼은 정식으로 내가 요구했다. 내 마음에서 끊어냈다. 정서적인 부분에서도 자립이 필요했다. 두 번째 이혼 후 요가를 하면서 앞으로의 인생에 대해 충분히 생각해 보았다. 일 년 정도의 숙려기간을 거치고 다시 부부로서 살아가기로 결정했다. 나는 이 남자와 재결합이 아닌 재혼을 했다. 아이들의 아빠로서 남편으로써 그래도 가장 제격이라는 판단에서 고른 남자다.
마흔에 요가를 시작한 시점부터 삶이 달라졌다. 전에는 삶의 소용돌이 안에 매몰되어 허우적거리느라 정신이 없었다면 요가를 하면서부터는 그 안에서 빠져나와 가만히 삶을 조망하는 위치에 설 줄 알았다. 그전에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고도 애달팠다면 마흔부터는 평정심을 가지고 균형을 맞추어 나가기 시작했다. 삶의 중심에 나를 두면서 마음이 안정되고 우울과 불면, 탈모를 극복하였다.
총 질량보존의 법칙이 적용되었다. 남편 또한 아내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호의가 권리인 줄 알고 살던 남편도 그 이후 가정을 돌아보고 여전히 경제적 도움은 안되지만 정서적인 합일을 이 루어날 갈 줄 알았다. 새로운 마음으로 상대방을 받아들였다고 한날한시에 모든 것이 정리되고 평온해진 것은 아니었다. 물리적인 거리와 상관없이 상대방을 의심하려고 생각하면 한없이 의심스러운 것이 부부 사이다. 부부라 할지라도 서로에게 배려하는 마음이 없으면 남남처럼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다. 재혼한 이후 의심의 눈초리를 완전히 거둘 수는 없었지만 아내로서 줄 수 있는 관심과 정서적인 부분을 신경 썼다. 남편이 원하는 것을 맞춰주려고 노력했다. 남편 또한 상대방의 기분을 살피고 의심 살 만한 행동은 하지 않았다. 서로에게 신의를 저버리는 행동을 하지 않음으로써 질퍽했던 땅을 단단하게 다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