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가 없는 이유

육아는 내 마음을 돌아보는 일

by 키우는 중입니다

내 조카를 처음 만나는 날


조카가 처음 도착했을 때

아이는 장난감을 갖고 와서 보여주며 같이 놀자하니

신기했다.

유치원에서 장난감 양보가 쉽지 않아 늘 선생님께 주의 듣는 아이였기에 놀랍고 안심이 되었다.


그러다 어디에서부터 잘못되었을까

조카의 것을 탐내고 내 거야 소리치기 시작했다.

또래 친구들과 만나도 흔히 있는 일이기에

이때까지도 상황은 나쁘지 않았다.


조카의 사운드북을 갖고 놀면서는

자신이 춤을 추며 동생보다 더 이쁨을 받기 위해

신나서 더 흥분해 땀을 뻘뻘 흘리며 놀았다.

마음이 짠할 정도로 반복했다.

그럴수록 어른들이 의식적으로 칭찬해 주었다.


지쳐 놀다가 방전된 아이는

조카의 울음소리에 놀라

잠투정과 함께 속 안의 속상함을 터트리며 울었다.

동생 거 다 뺐을 거야

싫어

저리 가

소리도 지르고 울음이 그쳐지지 않았다.

나도 이런 적이 처음이라 혼이 쏙 빠졌다.

그런데 아침까지만 해도 우리 아기 우리 아기 하던

할머니 할아버지는 갑자기 정색하면서

오빠는 듬직해야지

울면 안 되지

울지 말고 말로 해

형이니까 동생을 잘 챙겨야 한다고 말한다.


만 세 살에게 너무한 요구 아닌가?

형이 되기 위해 준비가 전혀 되지 않은 상황인데

듣는 내가 많이 속상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우리 아이는 기특하게도

동생에게 본인의 장난감을 보여주기도 하고

형으로서 어떻게 동생을 돌보아야 할지

아주 작게나마 알고 있었다.


우리 아이의 마음이 다치지 않기를

마음을 어루만지며 달래는데,

동생과 놀려고 노력했던 너의 첫 모습이

진짜 너의 마음인걸 엄마는 알고 있어

이 말을 내가 해주면서

갑자기 내 눈에 눈물이 주룩 흘렀다.

그 옛날 어쩌면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일지도.

나 스스로 치유받는 기분이었다.

(셀프치유 북 치고 장구치고 혼자 다해)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으로 다 알기 어려운 말이다.

첫째니까 형이니까 오빠니까 누나니까

동생을 잘 돌봐야 한다는 그 말.

어릴 때부터 나는 그 말이 너무나도 듣기 싫었다.

내 의지대로 먼저 태어난 것이 아닌데

그저 부모님의 똑같은 자식인데

누가 누굴 돌보며 챙긴단 말인가,

나이 사십이 되었음에도

첫째니까 동생을 돌보아야 한다는 그 책임감을

마음 깊이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조카가 와있는 동안 내 아이의 입장에서 바라보니

모든 것이 다 서운하다.

하루 종일 업어주던 할머니는

등 돌려 아기만 바라보고 있고

단 한 번도 안아주지 않던 할아버지는

아기를 계속 안아주고

숙모와 삼촌은 눈길조차 주지 않는데

나조차도 너무나 서운하던데

만 세 살을 앞둔 아이에게는

받아들이기 힘겨운 일 아닐까?


부모님의 첫 번째 아이였던 나는,

내가 낳은 첫 번째 아이에게 첫째로서의 역할을

어떻게 이해시켜주어야 할까?

내가 마음 깊이 이해하지 못하는 이 마음을

사랑하는 내 자식에게는 어떻게 알려주어야 할까?


언젠가 혼자가 될지도 모르는 아이에게

가족공동체를 꾸려주어야 하는 것 아닐까

고민이 많았는데,


이런 나여서 둘째는 없다.

이렇게 선언한다.


이런 나여서

내 첫 번째 아이에게 동생을 만들어주기 어렵다.


미안해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