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월간별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한별 May 10. 2018

글쓰기의 탄생

주간별문을 시작하면서

최근에 아주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알게 되었다. 일간 이슬아인데, 평일마다 이슬아씨가 본인이 쓴 에세이를 메일로 보내준다. 시험 삼아 결제해보았는데 무척 맘에 들었고 그 이후로 계속 결제를 하고 있다. 매일매일 글을 생산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는 그 작업이 내면과 과거를 토대로 직물을 생산하는 것처럼 상상되었다. 장인이 무척 공을 들여서 가내수공업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이미지다.

그 프로젝트가 또 한 가지 나에게 좋은 영향을 미친 것은, 나도 다시 글을 쓰고싶다는 마음을 불어넣어주었기 때문이다. 스무살 무렵의 나는 관심 있는 것이 텍스트밖에 없었기 때문에 고민을 전혀 해보지 않고 국문학과를 선택했다. 언어만으로 이루어진 것 외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 쯤에 나는 글을 쓰고 있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나는 시를 썼다.

어릴 때니까 전설과 민담으로 이루어진 동화도 많이 읽었다. 그러나 읽고 나서 가장 큰 감정적 여파를 불러일으키는 건 시였고 나는 어른들이 쓴 동시를 읽으면서 어쩌면 이렇게 멋진 말로 세상을 표현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런 것은 세계에 대한 탁월한 시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섬세하게 언어로 풀어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달걀을 까끌한 도화지 안에 담긴 바다로 비유했던 동시이다. 읽고 나서 매우 감탄했는데 다시 찾아보니 나오지 않는다.

언어를 아름답게 제련한다는 것에 경도되어 나도 시를 썼고 고등학생 때까지 꾸준히 써서 청소년 문학상을 타기도 했다. 그러나 그때까지 나는 계속 혼자서 글을 썼었는데 청소년 문학 캠프에서 문학상을 목표로 한 학원을 다니는 아이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런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에 충격 받았다. 그 캠프에서도 수상을 하긴 했지만 현실은 내가 생각하던 것과 달랐다. 그때부터 나는 점점 하고 싶은 말이 없어졌다.

작가란 무엇인가 라는 책을 보면 그 중 시를 썼던 소설가가 꽤 많이 등장한다. 시를 먼저 썼었지만 자신은 ‘신이 말을 더 이상 걸어주지 않는 시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고백한다. 그런 대단한 작가와 나는 연관은 없지만 슬프게도 동일한 원리가 적용되어서 나에게도 신이 말을 걸지 않게 되었다. 하고 싶은 말이 없어지자 시를 쓸 수도 없었고 쓰고 싶은 마음도 생기지 않았다. 그 이후로는 글을 거의 쓰지 않았다. 쓰더라도 소설을 습작하거나 일기만 썼다.

쓰는 것보다 읽고 해석하는 쪽의 즐거움이 압도적이었기 때문에 상관없었다. 처음으로 시작한 일도 텍스트를 분석하는 것이었고 지금 하는 일도 기호와 기호 사이 기호화 되지 않은 것을 해석하는 것이다. 사건이든 정서든 언어나 숫자로 백퍼센트 표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결국 표현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추측하거나 윤곽을 그리는 작업이 필요한데, 내가 이런 작업이 매우 사랑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지금 직무도 좋아하게 되었다.

일은 일대로 계속 해나가면서, 나는 나를 위해 블로그를 시작했다. 단순히 내가 읽은 책을 정리하기 위해 한 것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계속 구독자가 생겼고 지금은 업로드가 뜸한데도 구독자는 꾸준히 늘고 있다. 블로그를 통해 이직을 제안 받거나 강연을 요청하는 일도 생겨서 의아하면서도 기뻤다. 어찌됐든 글을 쓰는 것이 나에게만 유의미한 일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블로그는 이미 존재하는 텍스트를 이해하고 다시 재배열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의 정체성이 개입할 부분이 비교적 적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이슬아씨의 일간 이슬아를 읽고 나도 다시 내가 가진 것만으로 글을 정제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거의 11년만의 일이다. 내가 쓰는 글이 중요하든 중요하지 않든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는 상관 없다. 나도 어떤 일이든 쓴 것에 대해서만 이해를 할 수 있는 부류의 사람인 것이다(이 이야기를 나는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에서 읽었다). 신이 말을 걸어주지 않아도 상관 없다. 꽃을 피우기 위해 성실하게 물을 주는 것처럼 느린 속도라도 꾸준히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keyword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