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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한별 Jan 14. 2022

내가 산 것은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권리였다

이 일기는 2018년 쯤 내가 퇴사하고 나서 쓴 글이다. 이후에 두 달 정도 여행을 했는데 아주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



퇴사하면 죄다 브런치에다 글을 쓴다던데 나는 원래부터 브런치에서 글을 쓰고 있었지만 어찌됐든 현재는 백수이니 의도치 않게 시류에 편승하게 된 셈이다. 정식 퇴사일로부터는 20여일, 휴가를 쓰고 집에 있었던 날로부터 세면 약 두 달이 지났다. 여태까지는 이직을 해도 거의 곧바로 출근했기 때문에 쉰 날이 거의 없는데도 지금은 회사라든가, 노동이 아득하고 멀게 느껴진다. 물론 이건 착시효과에 가깝고 다시 일하게 되면 무서울만큼 일을 체감하게 될 거라는 것도 알고 있다.


다행히도 나는 내 직무를 아주 좋아하기 때문에 다른 이유 때문에 고통스러운 적은 있어도 일이 적성이 안 맞아서 괴로운 적은 없었다. 그런데도 회사에 다닐 때는 노동만큼 신기한 것이 있을까 하고 자주 생각했다. 가까운 곳만 봐도, 심지어 인터넷에서도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말이 넘쳐난다. 그런데도 아침이 되면 열심히 줄을 서가며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회사에 도착한다. 꾸물꾸물 회사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가 거대한 자본주의의 컨테이너 벨트 위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직접적으로 등을 떠밀진 않았지만 모두가(나를 포함하여) 입력된 규칙을 이렇게 성실하게 따르고 있다. 자본의 힘이란 대단하구나 느꼈다. 보이지 않는 자본의 힘이 우리의 등을 열심히 떠밀며 돈을 벌어오라고, 그래야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주문을 걸어주는 것이다.


퇴사를 하고 가장 기뻤던 것도 무엇을 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아침에 억지로 일어날 필요가 없고, 점심 시간을 맞추기 위해 배가 고프지 않은데 밥을 먹을 필요가 없고, 지금 자면 얼마나 잘 수 있을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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