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과관계의 환상 - 우리는 선을 그릴 수 있는가?

Lectio 1. illusio Causalitatis

by 구름꽃

스티브 잡스는 2005년 스탠포드 대학교 졸업식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미래를 내다보며 점들을 이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흔히 삶이 정교한 인과관계로 이루어져 있다고 믿습니다. 열심히 공부해서(점) 좋은 대학에 가면(점) 행복해질 것(선)이라는 믿음이죠. 내가 지금 찍고 있는 이 점이 미래의 특정 지점과 직선으로 연결될 것이라는 확신, 우리는 이것을 '성실함'이라 부르며 스스로를 다그칩니다.


하지만 잡스는 말합니다. 내가 찍고 있는 점들이 훗날 어떤 모습으로 연결될지는 그 순간에는 결코 알 수 없다고 말이죠. 우리가 그동안 굳게 믿어 온 인과관계가 때로는 거대한 ‘환상’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사실 무언가가 되기 위해서 현재를 수단화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이걸 하면 무언가가 될 수 있을 거야!’라는 방식의 사고는 현재를 능동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미래에 의해 ‘살아지게’ 만듭니다. 미래라는 주인에게 현재라는 노예를 바치는 셈입니다.


저의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를 하나 해드릴까 합니다. 저는 예체능을 전공하는 학생이었습니다. 당시 제가 다녔던 여고에는 이과반 인원이 부족했고, 저는 그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예체능 전공임에도 이과반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사실상 수능 점수가 대학진학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전공이었기에 사탐이든 과탐이든 상관이 없었지만, 덕분에 저는 선택 인원이 적은 물리와 화학을 배워야만 했습니다.


그 당시 물리 수업은 저에게 마치 '외계어'를 듣는 기분이었습니다. "내가 왜 여기서 이걸 듣고 있어야 하지?"라는 의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죠. 하지만 저는 주어진 50분의 수업 시간 동안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고, 다행히 물리 기본은 이해할 수 있는 상태로 졸업했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 뒤, 저는 직업을 갖기 위한 국가시험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고등학생 때 외계어처럼 들렸던 그 물리 지식은 시험 합격을 결정짓는 가장 강력하고 유용한 무기가 되었습니다. 만약 그때 물리를 배우지 않았더라면, 저의 합격은 아마 1년 이상 늦춰졌을 것입니다. 그 당시 '인원수 보충'이라는 우연으로 찍었던 점 하나가, 제 인생의 결정적인 선이 된 순간이었습니다.


이때 저를 지탱해 주는 것은 교육학자 존 크럼볼츠의 ‘계획된 우연(Planned Happenstance)’ 이론입니다.

그는 인생의 결정적인 기회 중 80%는 예기치 않은 우연에서 온다고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미래를 완벽하게 설계하는 능력이 아니라, 우연히 찾아온 점들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재에 집중하라’는 익숙한 말보다 조금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나의 오늘이 미래의 수단이 아님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찍고 있는 점이 미래에 어떤 선이 되어 있을지는 그 누구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모름’이야말로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이 점이 나중에 금메달이 될지, 그저 길가의 돌멩이가 될지 계산하지 마십시오. 대신 여러분의 손에 쥐어진 오늘의 점 하나를 정중하게 대접해 주시길 바랍니다.


선을 그리려는 조급함을 내려놓고 점 하나를 온전히 살아낼 때, 역설적으로 그 점들은 가장 역동적으로 연결되기 시작합니다. 선은 여러분이 그리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흐른 뒤 여러분의 삶이 스스로 그려내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