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가 중요한 건 알겠는데, 왜 자꾸 꼬일까?"
7년 차에 첫 이직 했을 때였다. 나는 이미 '관계가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첫 주에만 10명 이상에게 커피챗을 신청했고, 회의 때마다 "이전 회사에서는 이렇게 했는데요...."라며 의견을 냈다. 열심히 했으니까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줄 알았다.ㅎㅎ
그런데 이상했다. 3개월쯤 지나니까 미묘한 신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말을 꺼내면 회의실 분위기가 살짝 어색해졌고, 점심 약속도 점점 뜸해졌다. 어느새 나는 팀에서 '약간 좀 부담스러운 사람'이 되어 있었다.
대체 뭐가 잘못된 걸까?
그 때 쯤 깨달았다. 사람 사이의 관계가 중요한 건 맞긴 맞는데, 잘못된 방식으로 관계를 맺으면 오히려 독이 된다는 걸 말이다. 14년 차에 또 이직했을 때는 7년 전과는 완전 달랐다. 같은 '관계 맺기'를 했지만 방식을 바꿨더니 결과가 완전히 달라졌다.
오늘은 이직 후 90일,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빠지기 쉬운 함정과 그걸 피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준비되셨나요?
대부분의 업무는 여러 유관 부서와 함께 진행된다. 그래서 조직의 공식적 구조와 눈에 보이지 않는 영향력 구도를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이른바 비공식 조직, 비선 실세(?) 뭐 이런 거라고 해두자.
조직도는 내가 속한 부서가 어떤 부서와 협업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다. 하지만 업무는 공식적 관계로만 이뤄지지 않는다. 누가 그 부서의 핵심 인물인지, 누구와 가까운지, 왜 가까운지 같은 비공식적 관계들이 존재한다.
이런 정보는 공식 루트로 전해지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이직자들이 스몰 토크를 통해 신뢰를 쌓으며 조직의 영향력 구도를 파악하려고 한다.
근데 여기에 함정이 있다.
내가 7년 차 때 저지른 실수다. 첫 주에 조직도를 보고 협업이 필요해 보이는 부서 팀장들한테 먼저 커피챗을 신청했다. '빨리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 때문이었다. (사실 나는 매우 성취지향적인 사람이라서 더 그랬을 수도 있다.)
그런데 한참 후에 회식 자리에서 몇 몇 사람들이 얘기를 해줬다.
"저 사람 왜 이렇게 적극적이지? 뭘 캐내려는 거야?"라고 나를 생각한다는 것이다.
나는 관계를 맺으려 했는데, 상대방한테는 '정보를 얻으려는 의도'로 보였던 거다. 게다가 아직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일하는지 아무도 모르는 상태에서 다가갔으니 경계심만 샀다. 섭섭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반면 내가 아는 어떤 지인은 "일단 내 업무부터 파악하자"며 석 달을 책상에만 앉아 있었다. 그러다 협업이 필요한 프로젝트가 생겼을 때, 이미 다른 팀들은 서로 편하게 소통하고 있는데 혼자만 이방인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새로 온 사람(경력이든 신입이든)한테 호기심을 갖는 기간은 한 달에서 3개월 정도다. 그리 길지 않다. 그 시기를 놓치면 "저 사람은 우리한테 관심이 없나 보다"는 인상을 준다.
14년 차 이직 때는 이렇게 했다.
1주차는 조직도를 보며 관찰만 했다. 회의나 이메일로 누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누구랑 누가 자주 소통하는지 파악했다.
2주차부터는 자연스러운 계기를 활용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쳤을 때, 식당에서 우연히 같은 테이블에 앉았을 때, 가볍게 인사하며 관계의 물꼬를 텼다.
3주차부터는 실제 업무 협업이 필요한 시점에 실무자한테 먼저 연락다. 이때 중요한 건 도움을 요청하는 자세다.
위와 같이 이렇게만 글을 쓰면 '뭐 어쩌라고?' 하실 수도 있어서 구체적인 대화 예시를 적어보자면,
"이 부서 파워 구조가 어떻게 되나요? 누구한테 결재 받아야 하나요?"
이건 정보를 캐내려는 의도가 너무 명확하다. 좀 아마추어 같다고나 할까?
"이 프로세스를 처음 밟아보는데, 제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을까요? 혹시 조언해주실 수 있을까요?"
상대방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도움을 구하는 자세다. 이건 말하지 않아도 Good Case이다.
사람들은 누군가를 도와줄 때 그 사람한테 호감을 느끼는데, 이걸 '벤자민 프랭클린 효과'라고 한다. 처음부터 친해지려 애쓰기보다, 업무를 통해 자연스럽게 도움을 주고받으며 관계를 쌓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또 하나 중요한 팁을 얘기해 드리면,
조직도만 보고 직급 높은 사람부터 만나려 하지 마라. 오히려 실무를 함께할 실무자부터 관계를 맺는 게 좋다. 실무자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면, 그들이 자연스럽게 당신을 팀장이나 임원한테 소개해준다. 그게 훨씬 더 자연스럽고 신뢰할 만한 소개다.
목적 없이 편안하게 나누는 스몰 토크는 얼핏 시간 낭비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목적 없는 대화에서 더 쉽게 마음을 열고, 상대를 도우려는 마음을 갖는다. 업무적으로 꼭 필요할 때보다 처음 인사를 나누거나 우연한 기회가 생겼을 때 차 한잔하는 시간을 통해 신뢰를 쌓으면서, 회사 내 꼭 알아야 하는 비공식 네트워크를 파악해두면 이후 협업에 큰 도움이 된다.
일단 빌드업을 하세요. 그런데 그 빌드업이 너무 뻔히 보이면 안됩니다.ㅎㅎ
팀은 가장 가깝게 일하는 공동체다. 팀에서 가장 많은 협업이 이뤄진다. 그래서 팀원들의 일하는 방식과 성향, 의사결정 흐름을 이해하고 관계를 잘 만드는 것은 소속감뿐 아니라 업무 효율을 높이는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아직 팀에 적응되기 전에는 이직한 여러분도 어색하지만, 팀원들도 어떻게 다가가는 게 좋을지 몰라 어색해할 수 있다. 이때 팀원들이 쉽게 다가올 수 있도록 나를 먼저 보여주는 게 좋다. 자기 생각과 감정을 공유할 때 사람들은 더 신뢰를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를 보여준다'는 게 생각보다 무지하게 어려운 기술(?)이다.
7년 차 때의 또 다른 실수다. 나는 "내가 이런 사람이에요"를 보여주려고 회의 때마다 적극적으로 발언했다. "저희 전 회사에서 이런 프로젝트를 진행했었는데요, 그때 이렇게 하니까 성과가 좋았거든요."
내 의도는 '내 경험을 공유해서 팀에 기여하자'였다. 근데 팀원들한테는 이렇게 들렸던 것 같다. "이전 회사가 더 나았다는 거야? 우리 방식이 잘못됐다는 거야? 그럴꺼면 이직은 왜 했데?"
경력사원의 가치는 다른 경험에서 나온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 비교가 아닌 기여로 말해야 한다. 이전 회사 얘기를 하더라도, 지금 여기에 어떻게 도움이 될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반대의 경우를 보자. 어떤 경력사원은 "실수하기 싫다"는 생각에 조용히 업무만 파악했다. 회의에서도 발언하지 않고, 점심도 혼자 먹고, 팀 회식도 "아직 적응 중이라"며 한두 번 빠졌다. (이게 결정타인 것 같다...)
3개월이 지나자 팀원들은 그를 이렇게 인식하고 있었다. "저 사람, 뭐 하는 사람이지? 우리한테 관심 있는 건가? 이직은 왜 한거지?" 존재감이 없으면 평가받을 기회도 없다. 더 중요한 건, 그렇게 자꾸 숨으면 협업의 기회도 오지 않는다. 어쩔 수 없다. 경력사원들은 내가 왜 이직을 했지?를 항상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
14년 차 이직 때, 나는 첫 팀 미팅에서 이렇게 말했다. "처음이라 낯설고 긴장되네요. 잘 부탁드립니다. 궁금한 게 지금도 한 보따리인데요. 제가 한분 한분 찾아뵙고 문의드리면, 신입사원에게 알려주시는 것처럼 잘 알려주세요."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려 하지 않았다. 대신 진짜 내 모습, 그러니까 긴장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임을 솔직하게 드러냈다. 놀랍게도, 이 한마디가 팀원들의 마음을 열었던 것 같다. 그 후에 친해진 몇 몇 동료가 그 때 내모습에서 사람 냄새가 났다고 말해줬다. 사람들은 완벽한 사람보다 진정성 있는 사람한테 더 쉽게 다가간다.
자기소개도 전략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00회사에서 5년간 근무하며 여러 프로젝트를 성공시켰습니다."
이런 이력서 같은 소개, 면접관에게 할 만한 자기 소개는 왠지 거리감을 만든다.
"저는 OOO(지역명)에 사는데, 출퇴근이 조금 멀어서 아침형 인간으로 변신 중입니다. 저희 집 근처 오시면 맛있는 식사 대접하고 싶습니다. 부담스러우시면 맛집이라도 추천해드릴게요!"
위 자기 소개가 정답은 아니지만 개인적이고 친근한 정보가 대화의 물꼬를 튼다.
조직과 팀의 목표, 나한테 기대하는 업무 성과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팀장 개인의 성향을 이해하고 어떻게 파트너십을 맺을지 파악하는 게 더 중요할 수 있다 아니 중요하다. 이걸 위해서는 상사가 일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이 뭔지, 원하는 팔로워십의 모습이 어떤지 등을 직접 물어보며 함께 조율해가는 게 좋다.
근데 그걸 언제, 어떻게 묻느냐가 중요하다.
1주차에는 "팀장님께서 저에게 기대하시는 성과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첫 3개월, 6개월 동안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면 좋을까요?"라고 물으며 큰 그림을 먼저 파악했다.
1개월차에는 "저의 업무 방식에서 개선할 점이 있을까요? 팀장님께서 선호하시는 커뮤니케이션 방식도 알고 싶습니다"라고 구체적인 피드백을 요청했다.
3개월차에는 "다음 분기 목표에 대해 제 생각을 공유하고 싶은데, 시간 내주실 수 있을까요?"라고 주도적으로 제안했다.
질문하는 자세도 엄청 중요하다.
"제가 뭘 하면 되나요?" 이런 질문은 지시를 기다리는 사람으로 보인다. 별루다.
"A안과 B안을 고민 중인데, 우리 팀 목표에는 어느 쪽이 더 부합할까요?"
스스로 생각하되, 방향을 조율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상사는 모든 걸 가르쳐주는 선생님이 아니다. 함께 목표를 달성하는 파트너다. 그 파트너십을 어떻게 설정할지를 초기에 조율하는 게 이후 3년, 5년의 관계를 결정한다.
이직은 단순히 일의 종류만 바뀌는 게 아니라, 문화와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를 동반한다. 그래서 에너지 소비가 크고 스트레스도 높다. (Life Change Unit를 기준으로 이직은 배우자의 죽음, 이혼/별거, 감옥 수감, 가족의 죽음/투병 다음으로 스트레스가 높다.)
그런데 많은 이직자들이 이 부분을 간과한다. "나는 괜찮아, 내가 적응하면 돼"라고 생각한다. 근데 나의 감정과 스트레스 관리에 신경 쓰지 않으면, 허니문 기간을 현명하게 보내기 어렵다.
"적응 못 하는 건 내가 무능해서야." 이런 생각에 사로잡히면, 더 무리하게 일하게 된다. 남들보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한다. 주말에도 업무 자료를 본다. 그러다 어느 순간, 탈진한다. 출근길에 배가 아프고, 주말에도 푹 쉬지 못한다. 이직 3개월 만에 번아웃이 온다. 이건 비단 갓 이직한 경력사원만의 문제는 아니다. 직장인은 항상 조심해야 한다.
"원래 이직은 힘든 거야.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이렇게 생각하며 힘든 감정을 방치하면, 우울감이 누적된다. "이전 회사가 나았어"라는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든다. 그러다 6개월도 안 돼서 또 다른 이직을 고민하게 된다. 그러다가 어떤 회사에서도 온보딩을 제대로 못하는 프로 이직러가 되고 말 뿐이다.
아래 항목 중 3개 이상 해당되면, 전략을 전환해야 한다는 신호다.
□ 주말에도 일 생각에 잠 못 잔다
□ 출근길에 배가 아프다 (화장실 배가 아니다)
□ 동료들이 웃는데 나만 못 웃겠다
□ "이전 회사가 나았어"라는 생각이 하루 3번 이상 든다
□ 친한 사람에게도 회사 이야기를 하기 싫다
□ 퇴근 후나 주말에도 에너지가 회복되지 않는다
이직 초기의 스트레스는 '정상'이다. 하지만 그게 일상을 잠식하기 시작하면 문제가 된다.
아무리 일이 바쁘고 힘들더라도, '나와의 관계'를 다지는 시간을 반드시 가져야 한다.
하루 30분, 무조건 나만의 시간
산책, 운동, 독서, 명상, 뭐든 좋다. 중요한 건 '해야 하는 일'을 완전히 내려놓는 시간을 갖는 거다. 내가 아는 지인은 이직 후 번아웃이 왔을 때, 매일 저녁 30분 산책을 했다. 핸드폰도 두고 나가서, 그냥 걸었다고 한다. 처음엔 머릿속이 업무 생각으로 가득했지만, 2주쯤 지나니 머리가 비워지고 여유가 생겼다는 얘기를 소주 잔을 기울이면서 하는데 꽤 효과가 있어 보였다. 독자님들 중에 비슷한 증상이신 분은 한번 해보시길 추천한다.
주 1회, 이직 일기 쓰기
감정을 글로 쓰면 객관화된다. "오늘은 왜 힘들었을까?", "오늘은 뭐가 좋았을까?" 이 두 가지만 짧게 적어도 된다. 3개월치를 모아서 읽어보면, 내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보인다. 그리고 "아, 생각보다 잘하고 있네"라는 걸 깨닫게 된다.
월 1회, 비슷한 경험이 있는 친구와 수다
이직을 경험한 친구나 선배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라는 동질감이 주는 위로가 생각보다 크다. 혼자 끙끙 앓지 마라. 사람은 다 거기서 거기다.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과 나누면, 해결책도 보이고 마음도 가벼워진다.
이직 초기의 힘듦 속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가끔씩 "왜 이직했지?"를 떠올려야 한다. (이게 제일 중요하다)
돈 때문이었나? 커리어 성장 때문이었나? 워라밸 때문이었나? 새로운 도전 때문이었나?
지금 이 힘듦이 그 목적으로 가는 과정인가?
만약 그렇다면, 이 힘듦은 견딜 만한 가치가 있다. 하지만 만약 "내가 왜 여기 왔지?"라는 생각이 든다면, 멈춰 서서 다시 생각해봐야 할 시점이다.
'해야 하는 일'을 내려놓고, '가장 편안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왜 이직을 했는가'에 대한 장기적인 목적과 비전을 떠올리는 것. 이게 이직으로 인한 단기적 스트레스를 넘어설 수 있는 에너지를 제공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걸 도와준다.
이직 후 90일은 세 가지 관계를 다지는 시기가 맞다. 유관부서와의 공식/비공식 관계, 팀과의 신뢰, 그리고 나 자신과의 건강한 관계. 이 세 가지가 탄탄할 때, 이후 1년, 3년의 직장생활이 달라진다.
근데 중요한 건 '어떻게' 관계를 맺느냐이다.
유관부서와는 너무 급하지 않게, 자연스러운 타이밍에, 도움 받는 자세로 접근해야 한다. 팀에서는 완벽한 모습보다 진정성 있는 모습을, 주도적이되 겸손함을 보여주자. 나 자신에게는 무리하지 않되 방치하지도 않으며, 장기 목적을 잃지 말자.
관계를 잘 맺는다는 건 '많은 사람을 아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도울 수 있는 연결'을 만드는 거다. 그리고 그 시작은 나 자신과의 건강한 관계에서 출발한다.
불확실성과 모호성이 높은 시대이다. 혼자 하는 일보다 다양한 사람들과 협업해 답을 찾아가야 하는 업무의 비중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요즘에는 사람을 넘어 AI와도 협업해야 한다....) 이직 후 90일, 세 가지 카테고리의 관계를 현명하게 구축해서 새로운 조직에서 좋은 협업러로 자리매김할 수 있기를 응원한다.
다음 회 예고
끝나지 않는 하드랜딩, 왜 이렇게 힘들까?나만 힘든가?
다음 회에서는 "끝나지 않는 하드랜딩, 왜 이렇게 힘들까?"를 다룹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