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히 이직했나... 전 회사가 더 나았던 것 같기도"
블라인드에 올라온 글이다.
"이직한 지 한 달 정도 되어 갑니다. 서른 중반에 경력으로 이직하다 보니 회사에서는 경력인 저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크고... 이미 '그들만의 리그'가 단단하게 결성되어 있다 보니 혼자 일하며 시간 보내기 일쑤고, 사람들과 친해지기도 쉽지가 않습니다. 텃세 아닌 텃세에 상처받고 있습니다. 인수인계도 잘되지 않아 혼자서 성과를 내야 하는 자리입니다."
댓글에는 비슷한 고민들이 쏟아졌다.
"저도 39살에 이직... 3달째인데 내일이 너무 안 왔으면 좋겠어요."
"3개월 차인데 뭐만 하면 '경력직이시잖아요' 이 말이 노이로제 걸릴 것 같아요."
"적응 못 하는 거 보면 또 안타까워서 퇴사 생각뿐인데, 그냥 투명인간처럼 일만 하고 지내요."
또 다른 글이다. 경력 이직한 지 6개월이 됐는데, 업무 파악이 안 돼서 팀원들한테 일 분배도 제대로 못 하고, 그러니까 본인이 일을 더 많이 하게 되고, 야근하고 피곤하고 지치고, 다시 악순환이라는 거였다.
"이런 부분을 조직에서 알아주지도 않고, 도와주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이걸 말하면 너무 징징거리는 것 같고.. 팀장님과 커피를 마시면서 지나가는 말로 '저 정도면 하드랜딩 아닐까요? ㅎㅎ'라고 했더니 돌아오는 건 '정색'뿐... 이제 슬슬 업무 파악됐으니 빨리 다른 팀원들에게 일을 주라는데.. 월요일이 돌아올 때마다 심적으로 너무 지치고 힘듭니다."
많은 사람들이 현재의 고통과 스트레스에서 해방되기 위해 사표를 던진다. 그리고 새로운 회사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는 순간부터 새로운 세상이 열릴 거라고 기대한다.
근데 현실은 과연 그럴까?
초반에는 새로운 희망과 꿈에 부풀어 있다. 하지만 상당수의 이직자들은 이직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 생각을 한다.
'괜히 이직했나?'
'뭐야??.. 더 힘들잖아? ㅠㅠ'
'여긴 또 왜 이래?'
'뭐야.. 예전 회사가 더 나은 것 같기도?'
그리고 이런 생각들이 차츰 커지면서 스스로에 대해서도 '나는 조직생활에 안 맞는 사람인가?'라는 근본적인 고민에 빠진다. 이 고민은 이전 회사생활은 물론 새롭게 시작한 회사에 대한 적응마저도 어렵게 만들고, 결국 스스로에 대한 깊은 회의감으로 끝난다.
블라인드에 또 다른 글이 올라왔다.
"하소연할 데도 없어서 노트북을 켰는데, 징징거릴 기운도 없네. 경력 이직해서 현 직장에 다니는 사람인데 업무 적응이 너무 힘들다. 좀 심각해서 밥도 안 먹히고 표정이 펴지질 않는다. 아무리 경력이라지만 다른 산업군에서 와서 업무 관련 용어부터 그냥 다 처음 들어보는 것들인데 일만 주어지고 끝이다."
"보고 날짜는 다가오는데 일은 진도가 안 나가고, 선임이나 팀장에게 SOS를 쳐도 그냥 '잘하고 있겠지' 하면서 정말정말 큰 방향만 다시 리뷰해준다. 업무의 프로세스 자체가 전혀 감이 안 오는데... 내일 출근해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 상태를 보고하면 진짜 난리 날 거 같다."
댓글에는 이런 반응들이 달렸다.
"14년 차에 이직했는데 별도 교육 없이 바로 투입됐거든. 경영진 다이렉트 보고하고 있고 법인 전체 성과 모니터링 하는데 임원들이 비협조적이고... 그러니 불안 증세가 생긴 거 같아. 이걸 이겨내야 하는데 불안하고 힘들어."
"동물원 원숭이 된 기분임. 어디 알아서 잘해봐... 하고 막상 하면 '이건 왜 체크 안 했어? 이 데이터의 근거는 어디서 가져왔어?'"
신입사원 때를 기억해보자. 취업하자마자 곧바로 능력을 최대치로 발휘해서 높은 성과를 만들어 냈었는지...신입사원이?? 아닐 것이다. 새롭게 주어진 환경, 이전과는 다른 대인관계 패턴들에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다. 일하는 것, 즉 직무 자체에 적응하는 데만 해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되돌아보면, 신입사원 때 적응하는 데 얼마나 걸렸나? 이직 경험이 있다면 새로운 회사에 적응하는 데 얼마나 걸렸나? 신입사원 때가 더 오래 걸렸나, 아니면 경력사원으로 이직할 때가 더 오래 걸렸나?
답은 명확하다. 경력사원으로 이직해도 신입사원 때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 어떤 경우라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에는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회사에서 예전에 근무하셨던 선배님들은 경력사원을 "경력신입사원"이라고 불렀다.)
주관적으로 느끼기에는 사표를 던지게 만든 이전 회사의 경험이나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는 과정이나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근데 그 내용을 보면 상당히 다르다.
이전 회사에서의 고통은 충분한 적응 기간이 끝난 후 일하는 과정에서 생긴 어려움이다.
새로운 회사에서의 심리적 어려움은 적응하는 과정에서 겪는 스트레스다.
이것들을 정확하게 구분하지 못하면, '이거 뭐야?! 여기도 힘드네.. 잘못 이직했나? 내가 회사에 안 맞는 사람인가?'라는 잘못된 문제의식을 갖게 된다.
보통 이직 후에는 3가지 적응 과제가 주어진다.
첫 번째: 조직 자체에 대한 적응
같은 대기업이라고 하더라도 각 조직은 매우 다른 분위기와 조직 문화를 가진다.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혹은 그 반대의 경우로 이직한 경우라면 조직 자체에 대한 적응이 더욱 더 필요하다. 이런 환경적 변화에 익숙해지는 것만도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두 번째: 사람들과의 관계 패턴에 대한 적응
각 조직이나 회사는 나름대로의 고유한 대인관계 패턴을 보인다. 같은 게임 회사라고 해도 자율적이고 개인적인 분위기의 회사가 있는 반면, 오히려 대기업보다도 더 강한 군대식 조직문화를 가진 곳도 있다. 각각의 경우 그 안에서 발생하는 대인관계 패턴이나 상사 관계 등이 다를 수밖에 없다. 특히 이런 대인관계 패턴이나 성향은 주관적인 심리적 만족에 매우 큰 영향을 끼친다.
세 번째: 직무 자체 및 일하는 구체적 방식에 대한 적응
구체적인 업무 내용 상에서도 상당히 다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같은 제약 회사라고 하더라도 외국계 회사와 국내 회사는 매우 다른 업무 체계를 가지고 있다. 게다가 같은 제약 회사 마케팅이라고 하더라도 제품 종류와 내용에 따라서 고도의 전문성을 기반으로 하는 제품의 마케팅도 있고, 거의 소비재 기업과 유사한 마케팅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결재 단계나 과정, 직급별 의사결정 수준과 내용, 담당자의 권한 범위 등 모든 것이 다르다고 보는 게 더 합당하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이직 후 적응과 관련된 합리적인 기대와 행동은 다음과 같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알고 배우자
새로운 회사는 이전 회사와는 매우 다른 분위기와 조직 문화를 가진다. 어떤 점이 다른지 빨리 파악하고 그에 맞추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전학생의 비애를 감수하라
학기 초 새로운 반이 구성될 때 전학을 가면 그나마 낫지만, 이미 반이 구성되어서 자기들끼리의 관계가 충분히 형성된 다음에 합류하는 경우 전학생은 기존 그룹에 합류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전학생이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적응의 속도나 내용이 다르듯이, 이미 관계가 형성된 속에 합류할 때는 그만한 각오를 해야 한다.
일의 방식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업무 처리 방식의 경우에도 각 조직마다 오랜 기간 동안의 경험에 근거한 고유한 방식이 있다. 이를 고려하고 내가 맞춰야 할 부분과 새롭게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을 구별해서 접근해야 한다.
회사생활도 연애 생활과 마찬가지다. 서로 호감을 가지고 접근하며 서로에게 애정을 가지고 노력할 때 좋은 결과를 만들어낸다. 반면에 갈등이나 다툼이 있을 수도 있으며, 이를 어떻게 해결해 나가는지가 항상 중요하다.
환상은 항상 금물
새로운 회사에 Magical Solution이 있으며, 이전 회사에서 힘들었던 일이 다음 회사에서는 없을 거라고, 밝고 환한 미래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환상이다. 회사는 어디 가나 회사일 뿐이다. 그런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는 어느 곳에서도 힘들 수밖에 없다.
준비하고 대비하라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는 게 맞듯이, 새로운 곳의 분위기와 관습법(일하는 방식이나 대인관계 등)을 파악하고 그에 맞추거나 적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새로운 곳에서는 이전 회사와는 다른 분위기와 고유한 프로세스가 있을 거라 예상하고 이를 대비하는 마음을 가져라.
리얼리티 수용
이직 후 적응이 안 됐다는 걸 알려주는 지표 중 하나가 '여기는 왜 이렇지? 예전 회사는 안 그랬는데.. 이상하네..'라는 거다. 그리고 적응했다는 걸 알려주는 핵심적인 지표는 '여기는 이렇구나! 예전 회사와는 다르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이유와 좋은 점도 있네!'라는 생각이다.
정리해서 보자면, '왜?'라는 생각을 많이 해봐야 소용없다. '왜?'에 대한 진정한 해답은 새로운 회사에 충분히 적응하고 익숙해지고 이해하고 나면 보인다.
회사 밖에 의지할 사람들을 활용하라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이 나를 적극적으로 위로하고 돌봐줄 거라 쉽게 기대하지 마라. 대신 새로운 사람들과 친해지고 적응하기까지 내가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회사 밖의 인적 네트워크나 관계 자원을 적극 활용하는 게 필요하다.
과거를 생각하며 새 출발을 다짐하라
헤어진 연인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보지 않고 아쉽고 좋았던 점을 가지고 후회해 봐야 소용없다. 과거에 힘들었던 점들을 상기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선택을 적극 즐기면서 새로운 곳에서의 새 출발을 다짐해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상상하고 계획하라
지금, 그리고 현재 기준으로 보았을 때에는 아직도 적응 과정이다. 당연히 힘들고 이전 회사와는 다른 새로운 종류의 스트레스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고3이 대학에 합격하는 날을 생각하며 그 과정을 견디듯이, 과정을 이겨내고 적응한 후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장기적 관점으로 접근하길 바란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과 연애를 시작하거나 결혼을 하더라도 서로의 스타일에 적응하는 데에는 일정 기간이 필요하다. 자녀를 낳는 게 인생에서 비교할 수 없는 행복이라고 말하지만, 부모 역할에 적응하는 것 또한 낯설고 새로운 과제일 것이다.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가서 새 출발을 하고 싶다면 그 나라의 관습과 문화에 적응하는 것 역시 필수다.
마찬가지로 이직의 경우에도 이런 적응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꼭 기억해야 한다.
이런 적응 과정이라는 관점으로 현재의 심리적 어려움을 조망한다면 좀 더 잘 견딜 수 있으며, 그 과정을 극복하고 이겨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
상상하고 꿈꿔라. 적응 후 펼쳐진 당신의 새로운 역할과 즐거움에 대해
다음 회 예고
"저의 무능함이 들킬까 봐 불안합니다"
다음 회에서는 경력사원이 느끼는 내면의 불안과 그것을 다루는 법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