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무능함이 들킬까봐 매일매일 조마조마합니다
첫 출근 날, 나는 내가 뭔가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행동했다. 14년 경력이라는 말을 꺼낼 때마다 스스로도 "오, 나 좀 괜찮은 경력자네?" 하는 기분이 들었다. 자기소개서에 적었던 화려한(?) 프로젝트 경험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런데 3개월쯤 지나면서부터 이상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나...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이게 맞나? 내가 이걸 제대로 하고 있는 건가?'
'내 실력이 언제쯤 들통날까?'
블라인드에는 비슷한 고민들이 엄청 쏟아지고 있다.
"경력 9년 차인데 새 회사에서 3개월째 허우적대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출근할 때마다 '오늘은 내 무능함이 들킬까?' 조마조마합니다. 경력이 있다는 이유로 높은 연봉을 받고 이직했는데, 아직 이렇다할 성과를 제대로 못내서 너무 미안하고 불안해요."
"저도요... 7년 차로 이직했는데 가끔 제가 사기꾼 같다고 느껴요. 이력서에 적은 건 다 팩트인데, 막상 이 회사에서 일하려니 모르는 게 너무 많아서요. '이 정도밖에 못해요?'라는 말 들을까봐 매일매일 살 떨립니다."
리멤버 커뮤니티에도 비슷한 글이 올라왔다.
"10년 차 개발자입니다. 새 회사로 이직해서 4개월 됐는데 아직도 코드베이스 파악이 안 돼요. 주니어들이 질문하면 대답을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저보다 연차 낮은 사람들이 저를 어떻게 생각할까 두렵습니다."
댓글에는 공감의 목소리가 가득했다.
"저는 12년 차인데 신입처럼 일하고 있어요. 경력직이라고 기대치가 높으니까 더 부담스럽고..."
"경력사원 채용 공고에 '즉시 업무 투입 가능자' 이거 X사기 같아요. 누가 즉시 되는데요? 즉시 되는 사람이 있기나 한가요?"
"면접 때는 자신 있게 말했는데, 막상 일 시작하니 제가 제일 무능한 것 같아요."
이 현상에는 이름이 있다. 바로 '가면 증후군(Impostor Syndrome, 임포스터 신드롬)'.
실제로는 충분한 능력이 있는데도 자신이 사기꾼처럼 느껴지고, 언젠가는 무능함이 들통날 거라고 믿는 심리 상태를 말한다.
신기한 건, 이 증상이 무능한 사람보다 오히려 유능한 사람에게 더 많이 나타난다는 거다. 왜 그럴까?
진짜 무능한 사람은 자기가 무능한 줄 모른다. (이건 던닝-크루거 효과)
반대로 능력 있는 사람일수록 자기가 모르는 게 얼마나 많은지 알고, 그래서 불안해한다.
특히 경력사원으로 이직했을 때 이 증후군이 가장 심하게 나타난다.
왜 그런가 살펴보면,
"경력 10년이면 이 정도는 하시겠죠?"
"이전 회사에서 이런 프로젝트 하셨다면서요? 그럼 이것도 쉽게 하실 수 있겠네요?"
회사는 당신이 만능 해결사일 거라고 기대한다.
그런데 당신은 알고 있다. 이전 회사의 성공이 온전히 내 능력 때문만은 아니었다는 걸. 팀원들의 도움, 회사의 시스템, 운, 타이밍... 여러 요소가 맞아 떨어진 결과였다는 걸 알고 있다.
신입사원은 비교 대상이 없다. 다들 처음이니까.
그런데 경력사원은?
당신보다 오래 있던 동료들이 있다. 그들은 이 회사의 시스템을 훤하게 꿰고 있다. 내부 용어도 술술 쓰고, 누구한테 무엇을 물어봐야 하는지도 안다. 암묵적인 룰도 이미 체득했다.
당신은 그들을 보며 생각한다.
'나만 모르는 거 아냐? 나만 못하는 거 아냐?'
신입사원이 "이거 모르겠어요"라고 말하면, "아직 신입이니까 당연하지"라는 반응이 돌아온다.
근데 경력사원이 같은 말을 하면?
"경력직인데 그것도 모르세요?" 이런 반응이 나올까봐 두렵다. 그래서 모르는 걸 숨긴다. 혼자 끙끙 앓는다. 밤 늦게까지 자료를 찾아본다. 그러다 보면 더 지치고, 더 불안해진다.
리멤버에 올라온 또 다른 글이다.
"8년 차 마케터인데요. 새 회사에서 '경력직이시니까 알아서 잘 하시겠죠?'라는 말만 듣고 방치됐어요. 이전 회사 성과를 면접에서 어필했으니 이제 똑같은 걸 여기에서도 해내야 하는데... 환경이 다르니까 같은 방식이 안 통해요. 근데 이걸 말하면 '그럼 왜 경력직으로 뽑았냐'는 소리 들을 것 같아서 입도 뻥끗 못하겠어요."
이직 후 가면 증후군이 찾아오는 전형적인 순간들이 있다.
Moment 1. "이전 회사에서 (도대체) 어떻게 하셨어요?" 질문받을 때
이전 회사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뭔가 허세를 떠는 것 같다.
실제로는 팀원들과 함께한 성과인데, 말하다 보면 내가 다 한 것처럼 들린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한다.
'아... 나 너무 과장하는 거 아냐?'
Moment 2. 첫 프로젝트 결과물 제출할 때
'이 정도면 괜찮을까? 아니면 기대에 못 미칠까?'
이메일 보내기 전에 몇 번이고 다시 확인한다. 그리고 피드백을 기다리는 시간이 고문이다.
"역시 별로네요"라는 말이 돌아올 것만 같다.
Moment 3. 회의에서 의견 물어볼 때
"경력이 있으시니까 한번 의견 주시겠어요?"
이 한마디가 압박으로 느껴진다. 뭔가 그럴듯한 말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아직 상황 파악도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뭘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블라인드에 이런 글도 있었다.
"경력 5년 차로 이직했는데, 회의 때마다 'OO님 생각은 어떠세요?'라고 물어봐요. 근데 저는 아직 우리 회사 상황도 잘 모르고, 어떤 게 좋은 의견인지 감도 안 오는데... 적당히 두루뭉술하게 말하고 넘기면 스스로 '나 완전 사기꾼이네'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신입사원은 '배워가는 사람'이다. 실수해도 괜찮다. 모르는 게 당연하다.
근데 경력사원은? '이미 아는 사람'으로 간주된다. 그래서 실수하면 더 크게 느껴진다.
게다가 이직할 때 우리는 자신을 '판매'했다. 이력서와 면접에서 가장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성공한 프로젝트만 이야기했고, 어려웠던 순간은 '극복한 경험'으로 포장했다.
그래서 이제 그 이미지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생긴다.
한 선배가 술자리에서 이런 말을 해줬다.
"면접은 마케팅이야. 당연히 좋은 면만 보여주는 거지. 근데 일은 현실이거든. 당연히 괴리가 있을 수밖에 없어. 그게 정상이야. 근데 많은 사람들이 그 괴리를 '내 잘못'이라고 생각해. 근데 그게 아니거든?"
가면 증후군의 아이러니는, 정작 주변 사람들은 당신을 사기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다.
이런 비슷한 고민의 글이 블라인드에 올라왔는데, 익명으로 물어본 적이 있다.
"경력직으로 새로 온 사람이 적응 못 하는 것처럼 보이면 어떻게 생각하세요?"
댓글 반응은 의외였다.
"당연히 적응 기간 필요하죠. 우리도 다 그랬어요."
"오히려 완벽한 척하는 사람이 더 이상해요."
"3개월 정도는 배우는 시기라고 생각해요."
"경력직이라고 다 아는 거 아니잖아요. 회사마다 다른데."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남들은 나를 가혹하게 평가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나를 가장 가혹하게 평가한다.
리멤버에 올라온 글 중에 이런 게 있었다.
"저는 팀에 새로 온 경력직 팀원이 너무 완벽하려고 애쓰는 게 오히려 걱정돼요. 모르는 거 물어보면 같이 배워가면 되는데, 혼자 끙끙 앓다가 나중에 문제가 커지는 경우를 많이 봤거든요. 경력직이라고 다 알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럴 수도 없는데 말이죠."
방법 1. 적응 기간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경력 20년 차가 이직해도 3~6개월은 적응 기간이다.
이건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환경 변화의 문제다. 새로운 시스템,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문화. 이 모든 걸 익히는 데 시간이 걸리는 건 당연하다.
내가 아는 한 임원은 이렇게 말했다. (그 임원의 조직에는 경력사원 채용이 엄청 많다)
"나는 이직한 후에 처음 6개월은 '학습 모드'라고 생각해. 이 기간엔 실수해도 괜찮아. 오히려 그래야 빨리 배우지."
방법 2. 모르는 걸 숨기지 마라
"이거 처음 해봐서 잘 모르겠는데, 조언 좀 구할 수 있을까요?"
이 한마디가 얼마나 큰 차이를 만드는지 많은 경력사원들이 모를 수도 있다.
사람들은 완벽한 사람보다 솔직한 사람을 더 좋아한다. 그리고 도와주고 싶어 한다.
14년 차에 이직했을 때, 나는 팀 미팅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 경력은 좀 있는데, 여기서는 완전 햇병아리예요. 많이 가르쳐주세요. 바보같은 질문 많이 할 거예요."
이 한마디 후에 팀 분위기가 확 풀렸다. 사람들이 먼저 다가와서 이것저것 알려줬다.
완벽한 척하지 않으니까 오히려 더 빨리 배울 수 있었다.
드라마 대행사에 이런 대사가 있다. "약점이라고 해서 꼭 제거해야 하는 건 아니죠, 강점은 자신을 타인에게 각인시키는 방법이고, 약점은 자신을 타인에게 사랑받게 하는 방법이니까 숨기지 말고 타인에게 잘 드러내면 사람들의 환호를 받을 수가 있죠."
방법 3. 작은 성공을 기록하라
매일 저녁, 5분만 투자해서 "오늘 내가 잘한 것 3가지"를 적어보자. 아주 간단한 거라도 좋다.
새로운 시스템 사용법 하나 익혔다
동료에게 도움을 요청해서 문제를 해결했다
회의에서 유용한 질문 하나를 던졌다
이런 작은 것들도 전부 성과다. 몇 개월 적은 걸 모아서 읽어보면, "아, 나 생각보다 많이 성장했네" 하는 걸 깨닫게 된다. 블라인드에 이런 댓글이 달린 글을 본 적이 있다.
"저도 이직 초기에 가면 증후군 심했어요. 그래서 매일 '오늘의 작은 승리' 노트를 썼거든요. 6개월 뒤에 읽어보니까 진짜 많이 달라져 있더라고요. 첫 달엔 '회의 내용 이해했다'가 승리였는데, 6개월 후엔 '프로젝트 리드했다'가 됐어요. 이 노트가 없었으면 저는 아직도 제가 무능하다고 믿었을 거예요."
방법 4. 이전 회사와 비교하지 마라
"예전 회사에서는 이게 쉬웠는데..."
이 생각은 독약이다. 당연히 쉬웠다. 몇 년 동안 익숙해진 환경이었으니까.
지금은 새로운 환경이다. 비교 자체가 공정하지 않다.
대신 이렇게 생각해보자.
"3개월 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하면 어때?"
이게 훨씬 의미 있는 비교일 것이다.
방법 5. 동료에게 솔직하게 물어보라
용기 내서 먼저 온 동료에게 물어봤다.
"처음 오셨을 때 적응하는 데 얼마나 걸렸어요?"
그가 웃으며 말했다.
"나? 6개월? 1년은 완전히 적응한 건 아니었어. 지금도 가끔 모르는 거 물어봐."
그 순간 깨달았다.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이런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질 수 있.
진짜 사기꾼은 능력이 없는데 있는 척한다.
그런데 가면 증후군을 겪는 사람은? 능력이 있는데 없다고 느낀다.
당신이 이 글을 읽으며 공감하고 있다면, 당신은 사기꾼이 아니다. 오히려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자기 기준이 높고, 그래서 불안한 거다.
리멤버에 올라온 글 중에 가장 와닿았던 댓글이 있다.
"가면 증후군은 무능한 사람의 증상이 아니라, 성장하는 사람의 증상입니다. 당신이 불안한 이유는 당신이 못나서가 아니라, 당신이 더 잘하고 싶어서입니다."
블라인드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이직한 지 6개월 됐는데, 오늘 팀장님이 '덕분에 팀이 많이 좋아졌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아직도 부족한 게 많다고 생각했는데... 3개월 전 제가 걱정했던 것들이 이제는 우스워 보여요. 그때 그렇게 불안해할 필요 없었는데 싶어요."
가면 증후군은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사라진다.
작은 성공이 쌓이면서, 동료들의 신뢰가 생기면서, 나 자신의 리듬을 찾으면서.
그러니까 지금 당신이 사기꾼처럼 느껴진다면, 그건 당신이 정상이라는 증거다.
새로운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라는 증거다.
이직 후 6개월, 사기꾼 같은 기분이 드는 건 당신만의 문제가 아니다.
거의 모든 경력사원이 겪는 통과의례다. 심지어 20년 차도, 임원도, 누구나 겪는다.
중요한 건 이 감정을 어떻게 다루느냐다.
완벽한 척하지 마라. 대신 솔직해져라.
모르는 걸 숨기지 마라. 대신 배우는 자세를 보여라.
과거의 당신과 비교하지 마라. 대신 성장하는 당신을 기록하라.
그리고 기억하자.
당신이 여기 있는 이유는 당신이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면접관이 바보가 아닌 이상, 사기꾼을 뽑지 않는다.
당신은 사기꾼이 아니다. 단지 적응 중인 유능한 사람일 뿐이다.
다음 글에서는 "내향적인 사람이라 관계 맺기가 더 어렵습니다"라는 주제로 이야기 해보려 한다. 1회에서 관계 맺는 방법을 배웠지만, 성향에 따라 그게 더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 내향적인 사람들을 위한 현실적인 생존 전략을 나눠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