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 끝나고 집에 가면 사흘은 누워있어야 합니다

내향인을 죽이는 세 가지: 첫 인사, 스몰토크, 단체 모임

by 멈미

"커피챗 10번 신청하세요."

이직 1주차, 선배의 조언이었다.

"빨리 사람들이랑 친해져야 해요. 적극적으로 다가가세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아... 망했다' 싶었다.

10번? 하루에 2명씩? 그것도 처음 보는 사람들한테 먼저 다가가서?

그날 저녁, 나는 모바일 오피스의 조직도를 열어놓고 한숨을 쉬었다. '이거... 내가 할 수 있을까?'


커피챗 10번? DM 1번 보내는 것도 전쟁입니다

블라인드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이직 2개월 차입니다.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 맺기가 중요하다는 건 알겠는데... 저는 내향적인 성격이라 다른 사람들한테 먼저 말 거는 게 너무 어려워요. 점심시간마다 혼자 밥 먹고, 회의 끝나고 사람들 수다 떨 때도 그냥 자리 뜨고... 이러다가 팀에서 완전 아웃사이더 되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댓글에는 비슷한 고민들이 쏟아졌다.

"저도요... 회식 자리에서 조용히 있으면 '재미없는 사람'으로 찍힐까봐 무리해서 말 많이 하는데, 집 가면 완전 탈진해요."

"커피챗 신청하라고 하는데 뭘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냥 '커피 한잔 하실래요?' 이게 말이 안 나와요."

"팀 회식 때 사람들이 막 떠들고 있는데 저만 조용히 있으면... 팀장님이 'OO님은 왜 이렇게 조용해요?' 하시는데 정말 답답해요. 저 원래 조용한 사람인데..."

리멤버에도 비슷한 글이 올라왔다.

"경력 6년 차로 이직했는데, 이전 회사에서는 오래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친해졌거든요. 근데 새 회사에서는 '적극적으로 관계 맺으세요'라는 압박이... 저는 원래 조용한 편인데 이걸 어떻게 바꿔야 하나요?"

블라인드에 또 다른 글.

"커피챗 신청하려고 슬랙 DM 창 켜놓고 30분 동안 고민했어요. '안녕하세요' 네 글자가 안 써지네요. 결국 못 보내고 창 닫았습니다.ㅎㅎ"


에너지 충전 방식이 다를 뿐, 무능한 게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걸 짚고 넘어가야 한다.

내향적이라는 건 '사람을 싫어한다'는 뜻이 아니다.

'에너지를 얻는 방식이 다르다'는 뜻이다.

외향인은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에너지를 얻는다. 회식 끝나고 2차 가면 더 신난다. "이왕 나온 거 한잔 더 하자!"

내향인은 혼자 있을 때 에너지를 충전한다. 회식 끝나고 집에 가야 회복된다. "제발... 집에 좀 보내주세요..."

그런데 조직에서는 외향적인 사람을 '적극적'이고 '친화력 좋은' 사람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내향적인 사람은? '소극적', '폐쇄적', '팀워크가 부족한' 사람으로 오해받기 쉽다.

한 선배가 이런 말을 해줬다.

"회사는 외향인 중심으로 돌아가. 회식, 네트워킹, 커피챗... 전부 외향인한테 유리한 시스템이야. 근데 내향인이 능력이 없는 건 아니거든. 단지 방식이 다를 뿐이지."


내향인을 지치게 만드는 3가지

1. 먼저 다가가기가 부담스럽다

"안녕하세요, 커피 한잔 하실래요?"

외향인한테는 이게 별거 아니다. 근데 내향인한테는? 이 한마디를 꺼내기까지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100번은 돌린다.

'지금 바쁜 거 아니야? 갑자기 이상하게 생각하는 거 아니야? 거절당하면 어떡하지?'

그렇게 고민하다가 결국 DM을 못 보낸다. 창만 켜놓고 30분, 1시간... 그러다 퇴근 시간.


2. 가벼운 대화(스몰토크)가 어렵다

엘리베이터에서 동료와 마주쳤다.

외향인은 자연스럽게 말을 건다. "어제 야근하셨어요? 힘드셨겠다~"

내향인은? 어색한 미소를 짓고 핸드폰을 본다.

'뭐라고 말을 걸지? 날씨 얘기? 너무 뻔한가? 업무 얘기? 너무 딱딱한가?'

그렇게 고민하다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아무 말도 못 한 채로 헤어진다.

리멤버에 이런 댓글이 달렸다.

"저는 깊은 대화는 괜찮은데, 스몰톡이 제일 어려워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점심시간에 사람들이 수다 떨 때 저만 조용히 밥만 먹게 돼요."


3. 여러 명이 모이면 기 빨린다

1:1은 괜찮다. 오히려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근데 5명, 10명이 모인 자리는? 완전히 다른 게임이다.

말이 빠르게 오가고, 목소리 큰 외향인들이 대화를 주도하고, 끼어들 타이밍을 잡기 어렵다.

그렇게 한 시간쯤 지나면 완전히 탈진한다.

블라인드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팀 회식 다녀오면 다음 날 무조건 아파요. 물리적으로 피곤한 게 아니라 정신적으로 완전히 방전돼서요. 그래서 회식이 너무 두렵습니다."

나의 회사 동료도 비슷한 결의 애로사항을 토로했다. "요즘은 팀 회식이 많이 없어서 괜찮지만, 예전에는 주로 금요일에 팀 회식을 했는데 팀 회식 끝나면 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 저녁까지, 거의 사흘은 침대에 누워있어야 했어. 아무도 만나기 싫고, 말도 하기 싫고, 그냥 혼자 있고 싶었어."


외향인 코스프레의 대가: 번아웃

아래는 필자 지인의 사례이다. (편의상 A씨라고 하자)

14년 차에 이직했을 때, A씨는 7년 전 이직 때와는 완전히 다른 전략을 썼다.

원래 내향인인 그는 7년 전에는 외향인처럼 행동하려고 무리했다. 첫 주에 커피챗 10번 신청하고, 회의 때마다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점심은 항상 누군가랑 먹으려고 했다.

결과는? 3개월 만에 번아웃.....

회의 때마다 억지로 말을 많이 하다 보니, 집에 가면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주말에는 침대에서 일어나기도 싫었다. 월요일 아침이 두려웠다.

'내가 회사생활에 안 맞는 사람인가?' 이런 생각까지 했다.

근데 문제는 A씨한테 있는 게 아니었다. 외향인의 방식을 따라하려고 했던 게 문제였다. 그래서 A씨는 14년 차 이직에는 다른 전략을 썼던 것이다. 본인 방식대로, 내향인의 방식대로 관계를 맺었다.

블라인드에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이직 초기에 팀장님이 '적극적으로 사람들한테 다가가라'고 하셔서 억지로 그렇게 했어요. 매일 누군가랑 점심 먹고, 회식도 빠지지 않고, 커피챗도 열심히 했죠. 그런데 2개월 만에 완전히 무너졌어요. 출근길에 배 아프고, 주말에도 회복이 안 되고... 결국 심리상담까지 받았습니다."


소수정예 깊게, 1:1 중심, 계획된 대화

전략 1. 양보다 질 - 소수와 깊게

외향인: 10명과 얕게 친해진다.

내향인: 2~3명과 깊게 친해진다.

커피챗을 10번 신청하지 마라. 대신 2~3명을 신중하게 골라서, 그 사람들과 진짜 깊은 대화를 나눠라.

A씨는 이직 첫 달에 딱 3명만 선택했다.

같은 팀 선임 1명 (업무적으로 자주 협업할 사람)

유관부서 실무자 1명 (앞으로 계속 연락할 사람)

같은 시기에 입사한 동기 1명 (비슷한 처지)

그는 이 3명과는 정말 진심으로 대화했다. 형식적인 질문 대신, 진짜 궁금한 걸 물었다.

"여기서 일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언제였어요?"

"팀장님 성향이 어떤 편이세요? 제가 어떻게 커뮤니케이션하면 좋을까요?"

"저처럼 새로 온 사람이 조심해야 할 것들이 있을까요?"

놀랍게도, 사람들은 이런 진심 어린 질문에 진심으로 답해줬다. 그리고 그 3명은 A씨의 든든한 조력자가 됐다.


전략 2. 1:1을 활용하라 - 단체보다 개인

회식 자리에서 10명이랑 동시에 친해지려고 하지 마라.

대신 회식 후에 1:1로 만나라.

A씨는 팀 회식 때는 조용히 있었다. 무리해서 말 많이 하지 않았다.

대신 회식 다음 주에 특별히 대화가 잘 통했던 한 명에게 슬랙 DM을 보냈다.

"지난 회식 때 말씀하신 OO프로젝트 이야기가 인상 깊었어요. 시간 되실 때 좀 더 자세히 여쭤봐도 될까요?"

이게 훨씬 편했다. 1:1에서는 본인 페이스대로 대화할 수 있었다.

블라인드에 이런 댓글을 본 적이 있다.

"저도 내향인인데요, 단체 자리보다 1:1이 훨씬 편해요. 그래서 회식은 조용히 있고, 대신 나중에 개별적으로 밥 약속 잡아요. 그게 저한테는 더 효율적이더라고요."


전략 3. 준비된 질문 리스트 - 즉흥보다 계획

내향인은 즉흥적인 대화가 어렵다.

그럼 준비하면 된다.

A씨는 커피챗 전에 항상 질문 3~5개를 미리 준비했다. 노션에 적어놓고, 화장실에서 한 번 더 읽어봤다고 한다. (왜 그걸 꼭 화장실에서 읽어봤는지는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ㅎ)

준비해둔 질문 예시:

"여기서 일하시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프로젝트가 뭐였어요?"

"새로 온 사람이 빨리 적응하려면 어떤 걸 신경 써야 할까요?"

"팀 문화가 어떤 편인가요? 제가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을까요?"

"ㅁㅁㅁ 시스템 사용할 때 팁 같은 게 있을까요?"

준비된 질문이 있으면 훨씬 편하다. 대화가 끊겨도 다음 질문을 꺼내면 되니까.

그리고 한 가지 팁을 더 드리자면, 질문을 메모장에 적어두되 절대 그걸 보면서 읽지는 마라. 미리 머릿속에 넣어두고, 자연스럽게 꺼내는 게 중요하다.


전략 4. 듣기에 집중하라 - 말하기보다 경청

내향인의 최고 무기는 '경청'이다.

외향인은 말을 잘한다. 근데 내향인은? 듣기를 잘한다.

회의에서 무리하게 많이 말하려고 하지 마라. 대신 다른 사람 말을 진짜 잘 들어라. 그리고 핵심을 정리해서 한 번만 말해라.

A씨는 회의 때 거의 듣기만 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나온 의견 정리해보면, A안은 ○○한 장점이 있고, B안은 △△한 리스크가 있는 것 같은데, 제 생각엔 우선 A안으로 가되 △△ 부분을 보완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사람들이 "오, 정리 잘하시네요"라고 반응했다.

많이 말하지 않아도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다. 마~! 이게 내향인의 스타일이다.


전략 5. 에너지 관리 - 회복 시간을 확보하라

이게 제일 중요하다.

내향인은 사람을 만나면 에너지가 소진된다. 그럼 회복 시간이 필요하다.

A씨는 이직 초기에 이렇게 했다.

월/수/금: 적극적으로 사람 만나는 날 (커피챗, 점심 약속)

화/목: 혼자 업무에 집중하는 날 (점심 혼자 먹기, 회복 시간)

이렇게 리듬을 만들어놨더니 훨씬 지속 가능했다고 한다.

블라인드에 이런 글이 있었다.

"저는 사람 만나는 날과 혼자 있는 날을 번갈아가며 스케줄 짜요. 매일 사람 만나면 탈진하거든요. 이렇게 하니까 관계도 유지하면서 에너지도 관리할 수 있어요."

무리하게 매일 누군가랑 점심 먹지 마라. 일주일에 2~3번만 함께 먹고, 나머지는 혼자 먹어도 괜찮다.

외향인들은 이해 못 할 수도 있다. "왜 맨날 혼자 먹어?"

근데 괜찮다. 설명할 필요도 없다. 당신은 내향인이니까.


내향인만의 무기 - 진정성, 관찰력, 깊이

사실 내향인은 관계 맺기에서 약점만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강점도 많다.

강점 1. 깊이 있는 관계

외향인은 넓고 얕게 친해진다. 내향인은 좁고 깊게 친해진다.(물론 외향인 중에 넓고 깊게 친해지는 사람도 있다.) 조직에서 정말 중요한 건 '많은 사람을 아는 것'이 아니라 '나를 도와줄 사람을 확실히 아는 것'이다.

내향인이 맺은 2~3명의 관계는 외향인의 10명 관계보다 훨씬 든든하다.

위기가 왔을 때 진짜 도와주는 사람은 얕게 아는 10명이 아니라, 깊게 아는 2명이다.


강점 2. 진정성

내향인은 형식적인 대화를 싫어한다. 그래서 만날 때 진심으로 만난다.

사람들은 이걸 느낀다. "이 사람은 진짜 나한테 관심이 있구나."

어떤 동료가 나중에 A씨에게 이런 말을 해줬다고 한다.

"처음에 너 조용해서 무슨 생각하는지 몰랐는데, 막상 1:1로 얘기해보니까 진짜 진심으로 들어주더라. 그게 좋았어. 다른 사람들은 듣는 척 하다가 교묘히 화제 전환해서 막 떠들면서 지 얘기만 하잖아."


강점 3. 관찰력

내향인은 조용히 관찰한다.

누가 누구랑 친한지, 누가 영향력이 있는지, 팀 분위기가 어떤지.

외향인들이 떠드는 동안, 내향인은 보고 있다. 이런 정보는 나중에 큰 자산이 된다.

회의 중에 말은 안 하지만, 누가 누구 말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팀장이 누구 의견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이런 걸 파악한다.

이게 나중에 업무할 때 엄청난 도움이 된다.


외향인처럼 될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될 수도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이거다.

당신이 외향인처럼 행동할 필요는 없다.

조직에는 외향인도 필요하고 내향인도 필요하다.

외향인은 빠르게 네트워크를 만들고, 분위기를 띄우고, 에너지를 준다.

내향인은 깊이 생각하고, 진정성 있게 듣고, 신중하게 판단한다.

둘 다 가치 있다.

문제는 조직이 외향인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거다. 그래서 내향인은 자신을 '문제'라고 생각하게 된다.

아니다. 당신은 문제가 아니다. 단지 방식이 다를 뿐이다.


마치며

이직 후 90일, 내향인이 관계를 맺는 방법은 외향인과 다르다.

외향인의 방식:

많은 사람과 빠르게 친해지기

단체 자리에서 존재감 드러내기

즉흥적으로 대화 이끌기

내향인의 방식:

소수와 깊게 친해지기

1:1에서 진정성 있게 대화하기

준비된 질문으로 경청하기

에너지 관리하며 지속가능하게

어느 쪽이 더 좋고 나쁜 게 아니다. 당신에게 맞는 방식을 찾는 게 중요하다.

무리해서 외향인처럼 행동하지 마라. 3개월 버티다가 번아웃 온다.

대신 당신만의 방식으로, 당신의 속도로, 관계를 만들어가라.

내향인은 광을 팔지 않아도 빛을 낼 수 있는 사람들이니까.


[Point]

내향인은 관계 맺기를 못하는 게 아니라, 에너지를 얻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외향인처럼 10명과 얕게 친해지려 하지 말고, 2~3명과 깊게 친해지는 전략이 내향인에게 더 효과적이다.

단체 자리보다 1:1, 즉흥보다 준비된 질문, 말하기보다 경청이 내향인의 강점을 살리는 방법이다.

가장 중요한 건 에너지 관리 - 사람 만나는 날과 혼자 있는 날을 번갈아가며 지속가능하게 관계를 만들어가라.


다음 글에서는 "회사 내 업무 유관 네트워킹 잘 만드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이직 초기 파트의 마무리로, 실전에서 바로 쓸 수 있는 구체적인 네트워킹 전략을 공유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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