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에 누워서도 업무 메일 확인하는 당신에게

일 생각 스위치 끄는 방법

by 멈미


침대에 누웠다. 침실의 불을 껐다.

자려고 눈 감았다. 그런데 내 손이 나의 생각과는 달리 먼저 움직여 핸드폰을 집어 든다.

"혹시 급한 메일이 왔나? 미리 확인하면 내일 할 일이 줄어드니까..."라고 생각하며

회사 어플을 클릭하고 업무 메일함을 연다.


블라인드와 리멤버 커뮤니티에도 이런 글과 댓글이 올라왔다.

"침대에 누워서도 메일 확인함ㅋㅋ 혹시 급한거 있을까봐.. 이거 병인가요?"

ㄴ "저도 그래요 자기 전에 메일함 한번 더 열어봄"

ㄴ "침대에서 슬랙 확인하는 거 개공감"

ㄴ "퇴근 후에 일 생각이 멈추질 않음. 심지어 남친보다 일 생각이 더 남ㅋㅋㅋ"

"온보딩 후 몇개월 지났는데요. 적응하려고 아둥바둥 노력 중이라 퇴근하고 나서도 계속 일 생각을 멈출 수가 없어요 ㅠ 일 생각을 안하고 싶다는 생각도 결국 일 생각의 일부더라구요.. 어떻게 하면 퇴근 후에 산뜻하게 쉴 수 있을까요?"


사실 나도 그랬다. 아니 아직 현재 진행형이지만 서서히 옅어지고 있다.

예전에는 침대에 누워서도 업무 메일 확인했다. 주말에도 노트북을 펴고 다음 주 회의 준비와 굵직한 일들을 정리했다. 샤워하면서도 할 일을 떠올렸다. 일 생각 스위치를 끌 수가 없었다. (이 정도면 CEO 아님?ㅋ)


10회를 읽고 온 당신에게

10회에서 번아웃 극복법에 대해서 얘기했다.

삶에서 중요한 가치 적어보기

신체에 자극 주기

의식주의 질 높이기

근데 번아웃을 극복했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퇴근하고도 회사 생각이 멈추지 않는다. 침대에 누워서도 업무 메일 확인한다.

주말에도 월요일 회의 준비한다. 이건 일과 삶의 분리(워라밸) 문제다.


"일 생각을 안 하려는 생각"도 결국 일 생각이다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George Lakoff)는 이렇게 말했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자"고 하면, 결국 코끼리 생각을 하게 된다.

"퇴근하고 일 안 하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순간, 우리는 이미 망했다.

자려고 누워서 "흑역사 생각하지 말자"고 하면, 수영장 바닥에 눌러뒀던 풍선이 수면 위로 떠오르듯 흑역사가 주르륵 떠오르는 것처럼.

블라인드에 이런 글이 있었다.

"'일 생각 하지 말자 하지 말자' 하는데 그 생각 자체가 일 생각임 ㅋㅋㅋ 이거 무한루프 아님?"

맞다. 무한루프다. 그래서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일 생각 스위치 끄는 방법 1: 퇴근 후 할 일 리스트 만들기

퇴근 후에 일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할 일"에서 안정을 찾는 타입이다.

뭔가를 수행하고 있다는 감각이 중요해서, 퇴근하고 나서 멍 때리며 저녁이 찾아오면 "내가 이렇게 생각 없이 살아도 되나?" 하는 타입.

그래서 침대에 누워서도 업무 메일을 확인한다.

"내일 할 일 확인해야지.", "혹시 급한 메일이 와 있진 않을까?"

그렇다면? 퇴근 후의 일정까지 전부 정해보자.


필자의 지인 사례를 소개해본다.

매일 아침 출근하면 할 일을 정리하되, 퇴근 후 할 일까지 리스트에 넣었다.

예를 들어, 아래와 같은 식으로 말이다.

[오전]

- 09시: 팀 회의

- 10시: 밀린 메일에 답장

- 11시: 프로젝트 진척 보고서 작성

[오후]

- 2시: 거래처 미팅

- 4시: 프로젝트 중간 점검

- 6시: 퇴근

[퇴근 후]

- 6시 30분: 지하철로 퇴근하기

- 7시: 저녁 먹기 (마켓컬리 밀키트)

- 8시: 흑백요리사 시즌2 보기

- 9시: 강아지 영상 5개 보기

- 10시: 소파에 누워서 10분 알람 맞춰놓고 조용히 주변 소리 듣기

- 11시: 샤워하고 자기

- ❌ 침대에서 업무 메일 확인 금지


핵심퇴근 후 할 일을 업무와 무관하면서 아주 사소한 것으로 적는다는 것이다.

"강아지 영상 5개 보기", "맥주 마시면서 메이드인코리아 2편만 정주행하기", "소파에 누워서 10분 알람 맞춰놓고 조용히 주변 소리 들어보기" 같은 것들.

그리고 마지막에 "침대에서 업무 메일 확인 금지"를 적는다.


그걸 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퇴근길을 재촉한다.

그러면서 퇴근 후에 맥주를 먹든 유튜브로 강아지 영상을 보든, 그 시간들은 그냥 흘러간 게 아니라 내 통제하에 있었음을 만끽한다.

일 생각 할 시간이 어디 있겠어요?

나태하게, 얼른 맥주캔을 까야만 하는 것이다.

침대에 누워서 업무 메일 확인할 시간이 어디 있어?

강아지 영상 5개를 봐야 하는데.

블라인드에 이런 댓글이 있었다.

"퇴근 후 할일 리스트를 만들어 봤는데 진짜 효과있음 ㅋㅋ 강아지영상 3개 보기, 치킨먹기, 넷플보기 이런거 적어놨더니 퇴근하자마자 그거부터 하게 됩니다. 침대에서 메일 확인할 생각이 안나네요.ㅋㅋ"


일 생각 스위치 끄는 방법 2: 손으로 지워내는 업무 생각

스마트폰으로 모두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현대인의 축복이자 저주이다.

침대에 누워서도 핸드폰을 집어 든다. 회사 메일, 업무 단톡방, 슬랙 등

"혹시 급한 메일이나 메시지 온 거 없나?"


해결법: 휴대폰을 저 멀리 둘 수밖에 없는 일을 찾아보자.

단순해서 그 자체로 명상이 될 수 있는 것들.

업무 이야기보다 더 무거운 두뇌 활동을 요하는 것으로 대체하지 않되, 반복적이고 양손을 동시에 쓰는 일이라면 더 유용하다.


요즘 MZ세대가 하는 것들이라고 한다. (필자는 트민남은 아니다)

1. 요리하기

밀키트 요리: 마켓컬리, 오아시스 밀키트.(탈팡해서 쿠팡은 뺐다) 손으로 재료 썰고, 볶고, 담기.

깍둑썰기: 식재료를 사다가 무한대로 깍둑썰기를 해서 샐러드 재료 준비.

손으로 반죽하기: 쿠키 반죽, 만두피 빚기 등.

"퇴근하고 요리하기 시작했는데, 양손으로 재료 썰고 볶고 하다보면 회사생각이 안나고 이게 뭐라고 집중하게 되네요. 핸드폰 볼 생각 1도 안남ㅋㅋ"

2. 가구 조립, 공예

이케아 가구 조립: 손으로 나사 조이고, 조립하기. (생각보다 되게 어렵다)

가구 공예: 손사포질, 페인트칠 등.

뜨개질, 자수: 양손으로 반복 작업.

"이케아 가구 조립하면서 일 생각 싸악 사라집니다. 집중 안하면 부품이 남아 있거나 모자라거든욬ㅋㅋ. 집중해야 됨. 다른생각할 틈이 없음 핸드폰도 저 멀리 치워둠"

3. 베이킹

쿠키 굽기: 반죽 치대고, 모양 만들고, 오븐에 넣고.

빵 만들기: 반죽 발효 시키고, 성형하고, 굽기.

"베이킹 시작했는데 반죽치대는동안 머리가 깔끔하게 비워지네요. 손으로 하는 작업이라서 그런지 집중하게됩니다. 침대에서 메일 확인 하던 거 완전 사라짐요~"


손을 움직이는 감각에 집중하면서, 그 사이 일 생각으로 꽉 찼던 머릿속에 작은 창을 하나 여는 것이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완전히 떨쳐지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는 그 틈새로 일 생각이 휘발하게끔 둔다.

그리고 핸드폰을 저 멀리 둔다.

양손이 밀가루 반죽에 묻어 있으면, 핸드폰을 만질 수 없다. 내 입으로 들어갈 음식 재료를 손질하는데 화장실에도 들고 들어가는 핸드폰을 만질 수 없다. 침대에 누워서 업무 메일 확인할 일도 없다.


일 생각 스위치 끄는 방법 3: '서툼'을 즐길 수 있는 공간 찾기

일 생각을 계속하게 되는 원인 중 하나는, 직장인으로서의 나를 회사에 벗어두고 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솔직해지자면, 침대에 누워서도 업무 메일을 확인하는 내가 조금은 멋지다고 생각하진 않았나?

"나는 열정이 있어. 프로페셔널이야."

그런 태도는 일하는 나를 스스로 사랑하게 만들어서 업무에 열정을 쏟고 집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소중하다.

하지만 문제는 타인을 평가하기 전에 스스로를 먼저 평가하고 자책하게 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나는 왜 퇴근해서도 한심하게 일 생각을 하지?"

"이렇게 생각 없이 막 쉬어도 되나?"

일하는 나에 매몰된 채로 탈출하지도, 즐기지도 못하는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해결법: 퇴근 후에, 아주 기초적인 것도 못 하는 나를 만나보자.

그 공간에 출석하는 것만으로 기특하기 짝이 없다고, 그거면 됐다고 해줄 만한 작고 귀여운 나를 만나보는 것이다.


요즘 MZ세대가 하는 것들:

1. 클라이밍

손재주 없어도 괜찮음

문제 하나 푸는 데 몇 주 걸림

천천히 성장하는 재미

"클라이밍 시작했는데 한 문제 푸는데 3주걸렸네요.ㅋㅋㅋ근데 그게 좋더라구요. 회사에서는 성과를 내야하는데 여기서는 못해도 내가 기특합니다. 침대에서 메일 확인하던 것도 안 하게 되구요."

2. 서핑

파도 한 번 타는 데 몇 달 걸림

못해도 바다에 있는 것만으로 힐링

"서핑 3개월째인데 아직 파도도 못탑니다.ㅋㅋㅋ 근데 바다에있는것만으로도 너무 좋네요. 뭔가 결과를 내지 않아도 되서, 회사생각이 안나요."

3. 근력운동 (필라테스, 요가, 헬스)

살면서 근력운동 제대로 해본 적 없는 사람에게 추천

천천히 성장

못해도 괜찮음

블라인드를 보니 어떤 분은 스위치를 끄는 방법 중 하나로 폴댄스를 시작했다고 한다.

연차가 쌓이고 관리자 포지션으로 넘어갈 즈음.

살면서 근력 운동을 제대로 해본 적 없었는데, 5년이 지난 지금 중급반과 초급반 사이를 오가고 있다고 한다.

사람이 노력한다고 다 되는 건 아니라는 것을 매일 체감하고 있지만, 그 사실이 본인에게 주는 쾌감이 있다고 한다.

못하면서도 놓지 않는(포기하지 않는) 기특한 나는 사실 사회생활 어디에서도 만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못하면 그만두는 것도 직업인의 덕목이라고들 하니까.


추가 보너스: 근력운동의 과학적 효과

사람의 뇌를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숨뇌: 숨 쉬는 것 관장

파충류의 뇌: 본능적으로 위기 감지, 감각 느끼기

대뇌피질: 이성과 사고 담당

사슴이 물을 먹다가 이상한 소리를 감지했을 경우, 본능적인 보호 본능으로 온 근력을 긴장시켜 도망갈 수 있도록 대기시킨다.

이상한 소리가 바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대로 긴장을 풀면 되는데, 문제는 스마트폰과 업무 스트레스로 절여진 현대인은 회사를 나와서도(퇴근 후에도) 이제 긴장을 풀어야 한다는 것을 스스로의 몸에게 설득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대뇌피질이 아무리 "이제 쉬어야 해, 그만 긴장해야 해"를 외쳐도 몸은 그렇게 돌아가지 못한다.

그래서 침대에 누워서도 업무 메일을 확인한다.

몸이 아직 긴장 상태에서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럴 땐?

근력운동으로 폭발적으로 근육을 긴장시킨 후, 헬스장을 나오는 행동, 또 샤워를 하는 행동으로 근육 긴장도가 높은 구간과 아닌 구간을 나누어주는 것이다.

그런 행동을 통해서 자유의지만으로는 풀 수 없는 긴장을 기계적으로 털어내는 것이다.

실제로 근력운동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헬스장을 나오면 하루 종일 있었던 스트레스 중 자잘한 것들은 알아서 떨어져 나가더라고 말한다.

그것은 스스로 몸에게 가르쳐준 것이다. 이제 그냥 쉬어도 된다고.

블라인드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헬스 시작했는데 운동 끝나고 샤워하고 나오면 회사 스트레스가 다 날아간다. 진짜 신기하다. 몸이 긴장 풀었다고 인식하는 듯 하다. 그래서 그런지 침대에서 메일 확인하던 것도 안하게 된다."


마치며

침대에 누워서도 업무 메일을 확인하는 당신.

이건 일 생각 스위치를 끄지 못했기 때문이다.

번아웃을 극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과 삶의 경계를 긋는 것도 중요하다.


일 생각 스위치 끄는 방법 3단계

퇴근 후 할 일 리스트 만들기 (강아지 영상 5개 보기, OO콘텐츠 2개 보기, 침대에서 업무 메일 확인 금지)

손으로 지워내는 업무 생각 (요리, 가구 조립, 베이킹 등 → 핸드폰을 아주 멀~~~리 둔다)

'서툼'을 즐길 수 있는 공간 찾기 (클라이밍, 서핑, 근력운동 등 → 몸의 긴장을 풀어준다)

블라인드에서 이런 글을 발견했다.

"위 3가지 다 해봤는데요. 진짜 효과있음. 퇴근 후 할일 리스트 만들고 요리하고 클라이밍 다니기 시작했더니 침대에서 메일 확인 안하게 되네요. 일 생각할 틈이 없습니닼ㅋㅋ"


다음 12회에서는 "일이 재미없어 졌어요"를 다룬다. (일은 원래 재미 없는 거 아닌가?ㅋㅋ)

번아웃도 극복하고, 워라밸도 찾았는데, 일이 재미없다면?

일의 의미를 다시 찾는 법, 함께 알아보자.


[Point]

1. "일 생각 안 하려는 생각"도 결국 일 생각이다. 코끼리 프레임.

2. 퇴근 후 할 일 리스트 만들기: 강아지 영상 5개 보기, 맥주 마시며 콘텐츠 보기, 침대에서 업무 메일 확인 금지.

3. 손으로 지워내는 업무 생각: 요리, 가구 조립, 베이킹 등 양손을 쓰는 반복 작업. 핸드폰을 저 멀리 둔다.

4. '서툼'을 즐길 수 있는 공간 찾기: 클라이밍, 서핑, 근력운동 등 못해도 "기특한 나" 만나기. 몸의 긴장을 풀어준다.

5. 근력운동은 과학적으로 근육 긴장을 풀어주는 효과가 있다. 침대에서 업무 메일 확인하는 것도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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