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쌀집에서 잃어버린 파란색 강아지 인형과 나

어릴 적 잃어버린 인형을 수십년 째 그리워하던 와이프에게 한 약속

by 멈미

이번 편은 오피스 서바이벌 가이드도, 경력사원 온보딩 가이드북도, 그리고 리더십 이야기도 아니다.

그냥 나의 개인적인 이야기이다. 외전 쯤으로 해두자.


내 필명이 "멈미"인 이유

"멈미가 뭐예요? 무슨 뜻이에요?"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지인들에게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이다. 영어권 아이들이 사용하는 Mummy냐, 아니면 이집트의 미이라의 영어 발음이냐라는 질문을 받기도 했고, 어떤 분은 "멈춘 미래"의 줄임말이냐고 물어보셨다. 그리고 어떤 분은 "머무르다"의 사투리 아니냐고도 하셨다.

사실 멈미는 파란색 강아지 인형의 이름이다.

정확히는, 내 와이프가 수십 년 전에 잃어버린 파란색 강아지 인형이다.


1살 된 아기와 파란색 강아지

와이프가 돌이 막 지났을 무렵, 제법 나이 차이가 나는 사촌 오빠가 선물을 하나 사줬다고 한다. 파란색 강아지 인형 두 개였는데, 엄마 강아지와 아기 강아지가 한 쌍으로 된 인형이었다. ('모견인데 강아지라는 표현이 맞아?라고 하시는 분도 있겠으나, 잠시 해맑았던 영유아의 시선으로 바라보자. 엄마 강아지, 아기 강아지ㅋㅋ)

그중에서 아기 강아지가 와이프의 '베프'가 되었다.

와이프 어머님(장모님)께서 보여주신 오래된 사진첩에는 그 증거가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엄마 아빠랑 놀이터 갔을 때도 아기 멈미, 엄마랑 시장 갔을 때도 아기 멈미, 친척집 갔을 때도 아기 멈미. 모든 사진 속에 파란색 강아지 멈미는 와이프 품에 안겨 있었다.

"얘 없으면 밥도 안 먹었어. 자다가도 멈미 찾으면 난리 났지."

장모님의 회상이다.


쌀집에서 일어난 일

그렇게 찰떡같이 붙어 지내던 아기 멈미가 사라진 날은 와이프가 5살 즈음이었다고 한다.

5살짜리 나의 와이프는 엄마(장모님)랑 동네 시장에 쌀을 사러 갔다고 한다.(왜 쌀을 마트에서 안사고?라고 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예전에는 쌀은 쌀집에서 있었다.) 당연히 와이프는 아기 멈미를 데리고 갔다. 쌀집 아저씨가 쌀을 포대에 담아주는 동안 와이프는 가게 앞 의자에 앉아 멈미를 안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집에 와서 보니 아기 멈미가 없었다. 언제 없어졌는지 어느 누군도 모른다.

"엄마! 멈미가 없어!"

장모님은 황급히 다시 시장 쌀집으로 달려가셨다고 한다. 가게 안을 뒤지고, 의자 밑을 들여다보고, 심지어 쌀 포대 사이까지 찾아보셨지만 아기 멈미는 온데간데 없었다.

"그날 애가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밤새 멈미 찾는다고 난리였어."


엄마 멈미는 위로가 되지 않았다

아기 멈미를 잃어버렸지만, 당시 처가댁에는 엄마 멈미 인형이 있었다.

아기 멈미와 똑같이 생긴, 단지 크기만 좀 더 큰 파란색 강아지였다.

하지만 와이프에게 엄마 멈미는 '그냥 인형'이었다. 아기 멈미처럼 매일 안고 자던, 모든 순간을 함께했던, 그런 존재가 아니었다.

"엄마 멈미는...그냥 거기 있는 인형이었어. 아기 멈미는 내 친구였거든."

결혼 전 데이트 때 와이프가 해준 말이다.

그리고 초등학교 때 이사를 하면서 엄마 멈미마저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한다. 이사 짐 정리하다 보니 없어졌지만 아기 멈미가 없어졌을 때처럼 찾지 않았다고 한다. 사실 그때쯤엔 와이프도 멈미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졌을 때라, 크게 슬프진 않았다고 한다.


"그럼 내가 너의 아기 멈미가 되면 되어줄께."

이 이야기를 들은 건 결혼 전 데이트 때였다.

오래된 사진첩을 보다가 파란색 강아지를 안고 있는 꼬마 와이프의 사진을 보게 됐고, 자연스럽게 멈미 이야기가 나왔다.

"수십 년이 흘렀는데도 가끔 생각나. 지금 어디 있을까? 쌀집에서 누가 주워갔을까? 쓰레기통에 버려졌을까?"

와이프의 눈동자가 왠지 슬퍼보였다.

그때 나는 별생각 없이, 정말 별생각 없이 이렇게 말했다.

"그럼 이제부터 내가 너의 아기 멈미가 될게. 나를 어디든 데리고 다녀."

"...뭐래?"

"진짜로... 나 파란색도 좋아하고, 강아지도 엄청 좋아하잖아. 그리고 내가 고양이상은 아니잖아?"

그 오글거리는(?) 선언 이후, 나는 아내에게 ‘멈미’가 되었다.



결혼 10년차, 여전히 멈미

처음엔 그냥 귀여운 애칭인 줄 알았다.

"멈미야, 뭐 먹을래?" "멈미 오늘 회사 어땠어?" "멈미, 이거 좀 봐봐."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멈미가 단순한 애칭이 아니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와이프는 정말로 나를 '어디든 데리고 다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는 와이프의 단짝 친구이자 애착 인형이 되었고, 와이프 회사 회식자리만 빼고 왠만한 곳은 같이 다녔다.

그로부터 10년이 흘렀지만, 와이프는 여전히 나를 '멈미'라고 부른다.


필명이 된 멈미

솔직히 처음에는 브런치 필명을 뭘로 할까 고민이 많았다. 본명? 너무 평범하고 왠지 부담스럽다. 별명? 딱히 없다. 멋진 필명? 생각이 안 난다. 멋지고 대중적인 필명은 이미 선점당했다.

그때 와이프가 옆에서 말했다. "필명 멈미라고 하면 안 돼?" "...멈미?" "응. 나는 멈미가 제일 좋은데."

그렇게 나는 "글쓰는 멈미"가 되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내가 쓰고 싶은 글들이 결국은 사람 얘기였다. 조직에서 살아남는 법도, 리더십도, 축구(아직 안썼지만 축구를 주제로도 곧 글을 써볼 예정이다)도, 결국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야기이다. 완벽해 보이는 이론이나 원칙보다는, 조금 삐뚤어지고 어설프더라도 진짜 사람 냄새 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수십 년 전 동네 시장에서 잃어버린 파란 강아지 인형처럼, 우리 모두는 직장에서, 삶에서, 뭔가를 잃어버리고 찾기도 하고, 때로는 누군가의 찐친이나 위로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만약 내가 쓴 글이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된다면, 그게 바로 내가 "멈미"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자, 이제 나의 필명에 얽힌 우리 가족의 얘기를 했으니, 다시 본업인 직장 생활과 관련된 얘기로 돌아가 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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