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으로 인한 지출을 아끼면

미안합니다, 젊은 그대

by 비단구름

이렇게 코로나가 발생할 줄도, 이렇게까지 장기전이 될 거라고도 2019년엔 까마득하게 몰랐기에 용사들더러 전역하고 여행 가라고 했었다.


용사들이 태어날 무렵인 2000년 즈음 병장 월급은 13,700원이었다고 한다. 십삼만 칠천 원이 아니라, 만 삼천 칠백 원. 2020년 기준 용사들의 월급은 사십만 원에서 오십만 원 정도 된다.(이병 408,000, 일병 441,600, 상병 488,100, 병장 540,800) 이십 년 전에 비해 많이 올랐고 꾸준히 인상될 전망이다.


복학 후 대학 등록금에 보태고, 대학을 다니지 않는 용사들은 전역 후 사회생활의 종잣돈이 될 수 있도록 현실적인 인상을 기대해본다. 예산과 여러 사정이 허락한다면 분단국가라는 특수성과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징병제는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최저시급 정도는 보상해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국방의 의무는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지만 열정 페이로 일하는 것이 당연한 것은 아니다. 당연한 것은 미안함과 감사한 마음이다.


용사들에게 월급 받으면 어떻게 하냐고 묻는다. 이십대니까, 아직 어리니까, 월급을 몽땅 남김없이 써버리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많은 용사들이 월급의 반을 저축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또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 어떻게 그렇게 돈을 모으냐고 물으니 군것질에 딱히 흥미가 없고 군대에서 딱히 돈 쓸데가 없단다.

하루에 한 갑 정도 흡연을 하는 용사들은 한 달에 십오만 원 정도를 지출한다. 담배값을 제외하고 저축을 하는 용사들도 있지만 약간의 군것질을 하고 휴가 나갔다 오면 월급이 흐지부지 사라지는 경우도 많다. 금연클리닉을 방문하는 용사들의 금연 동기 중 하나가 '돈이 아까워서'이다.


월급 모아서 뭐할 거냐고 물으면 어떤 용사들은 운동화를 산다고 하고 어떤 용사들은 패션에 관심이 많아서 옷을 산다고 하고 어떤 용사들은 잘 모르겠다고 한다. 잘 모르니 일단 써버리기보다 우선 모으고 보는 어린 용사들이 대견하고 든든하다.


군것질에 흥미 없고, 담배도 안 피고, 여자 친구도 없고 돈 쓸 곳도 없어서 통장에 돈이 쌓이고 있으나 이 돈을 어디다 써야 할지 모르겠다는 용사들에게 나는 제대하고 여행을 가라고 제안했었다.(코로나로 이런 상황이 될 줄은 몰랐으니)


전역 후의 삶이 꽃길이기만 하면 좋겠지만 현실은 또 고민이 산더미다. 복학하면 학점 관리해야 하고 스펙도 이것저것 만들어야 하고 공채를 줄이는 추세 속에서 취업 준비도 해야 한다. 어떤 용사들은 취업 대신 시험 준비를 할 수도 있다. 스트레스받으며 열심히 준비하여 마침내 원하던 직업을 갖는다고 끝이 아니다. 새 문을 열고 들어간 곳엔 새로운 스트레스가 있는 법이다.


무엇보다 직업인의 세계로 들어가면 몇 달은커녕 한 달도 여행하기가 쉽지 않다. 여행 갈 테니 한 달 휴가 쓰겠다고 하면 그만두고 나가는 게 빠르고 쉽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몇 달이든 며칠이든 내 여행의 기간을 내가 실컷 정할 수 있는 첫 번째 시기는 어쩌면 제대 직후다.


이왕이면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관광지! 이왕이면 멀리 갈 수 있는 곳! 나중에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고 가족이 생기면 짧은 휴가와 비용 부담 때문에 가까운 유명 관광지나 휴양지를 선택하게 된다.


군 복무 기간 동안 월급의 절반을 모으면 이백만 원 정도 모을 수 있다. 너무 어려운 형편이 아니라면 아직은 부모님께 생활비로 보태드리지는 않아도 된다. 부모에겐 부모의 역할이 있으며 대부분의 부모는 부모 노릇을 하기 위해 부족하고 힘들어도 최선을 다한다.

더구나 용사들의 부모님들은 대부분 아직 한참 경제활동이 가능한 50-60대이다. 아들이 힘든 군 생활하며 빠듯한 월급을 저축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용사들의 부모님들은 행복할 것이다. 저축액의 액수보다 아들의 계획성과 경제관념에 크게 기뻐할 것이고 부모님께 기쁨을 드렸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무엇보다 군에서 모은 그 돈은 고생한 여러분 본인을 위해 재투자해야 한다. 부동산 투자, 주식 투자, 비트코인보다 나에게 투자하는 것이 가장 수익률이 훌륭하다. 그런 의미에서 대학 등록금에 보태는 것도 좋다. 여행도 나를 위한 투자다.


이백만 원은 결코 적은 돈은 아니지만, 누군가에겐 매우 큰돈이 분명하지만, 앞으로의 인생에 드라마틱하게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지금은 용사 여러분의 미래를 위해 투자할 시기다.

직업인이 되고 본격적으로 경제활동을 하게 되면 제로금리일지언정 약간씩이라도 모아두는 편이 낫다. 앞으로 용사 여러분이 진짜 욕심나는 것을 손에 넣기 위한 비용을 치르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양의 목돈이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스스로에게 투자한 것이 먼 훗날 결실을 맺을 때, 연로한 부모님께서 더 이상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가 생활비도 보태드리고 용돈도 드릴 때이다. 지금은 용사 여러분부터 자리 잡고 볼일이다. 자기 할 일 잘하는 것, 그게 효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