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죽은 날은 비가 오던 맑은 날이었다. 엄마는 까만 단발머리를 귀 뒤에 단정하게 걸고 마법에 빠져 잠이 든 백설 공주처럼 눈을 감고 자는 듯 죽어 있었다. ‘미안하다.’한 문장뿐인 에이포 한 장의 유서를 남기고 엄마는 스스로 죽었다. 유서의 진위 여부에 의심이 갈 법 하지만 살짝 오른쪽으로 뉜 글자들이 엄마의 필체가 틀림없다고 말해주었다. 엄마는 독사과를 깨물고 깊은 잠에 들었는데 누가 엄마에게 독사과를 주었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다들 ‘왜 죽었대?’ 묻기만 할 뿐 아무도 시원하게 답을 하지 못했다.
바로는 입관식을 위해 염을 마치고 누워 있는 엄마에게 다가갔다. 작년 겨울 바로가 다이소에서 천 원에 사서 생일 선물로 준 반짝이는 큐빅 머리핀을 옆으로 넘긴 앞머리에 꽂고 엄마가 죽은 듯 자고 있다고 바로는 생각했다.
엄마에게 독사과를 건넨 사람을 찾기 위해 경찰들이 엄마와 가까운 주변인들을 찾아다니며 탐문을 시작했다. 엄마가 독사과를 깨물던 시간에 바로와 아빠는 점심을 먹으러 갔었는데 자동차의 블랙박스와 식당 주변의 CCTV와 점심을 먹기 위해 들어간 갈비탕 집에서 받은 영수증과 식당의 CCTV가 알리바이가 되었다.
경찰의 추가 조사로 엄마가 스스로 운전해서 집에서 한 시간쯤 떨어진 야산까지 가서 차를 산 아래에 세워 두고 혼자 산으로 올라가는 모습이 밝혀졌다고 엄마 사건 담당 경찰이 아빠에게 말해 엄마의 사인은 의심의 여지없이 자살로 결론이 났다. 엄마의 시체를 살펴본 검안의 역시 타살로 볼만한 특이점은 없다며 엄마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음을 알리는 서류를 작성해 주었다.
독사과를 먹기 구 개월 전부터 엄마는 일주일에 한 번 정신과를 방문했다. 엄마는 바로를 낳고부터 죽 우울해했다고,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니 산후 우울증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고, 그러고 보니 아빠와 연애하던 시절에도 언뜻 쓸쓸해 보이는 미소를 지어 보이기도 했지만 대수로웠던 것은 아니라고, ‘이렇게 갈 줄은 몰랐다’라고 아빠는 무기력하게 회상했다.
엄마는 씩씩하게 혼자 정신과에 다녀왔다.
“같이 가줄까?”라고 바로가 물었을 때 “아니야, 같이 있으면 더 우울해!”라고 씩씩하게 농담을 던지곤 혼자 갔다.
“태워줄까”라고 아빠가 물었을 땐 “당신이 내 우울증의 원인이야!”라고 활짝 웃으며 농담을 던져 아빠는 “왜 또 나한테 그래!”라고 머쓱해했다.
정신과 상담이 있는 날이면 엄마는 트레이드마크인 단발머리에 정성껏 볼륨을 넣고 평소 하지 않는 화장도 하고 형광빛이 나는 코랄 색 립스틱을 발랐다. 옷장에서 꺼낸 블라우스를 대고 거울 앞에 서서 “살이 너무 많이 쪘나?”라고 말하며 미간을 찡그리기도 하고 검정 슬랙스를 입었다가, 네이비 원피스를 입었다 하다 결국에는 “아무것도 한 거 없이 이렇게 늙어 버렸네.” 하고 풀 죽은 소리를 했다.
브런치 카페에서 점심 약속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다녀올게!” 하고 미소 지으며 나가는 발걸음이 경쾌해서 바로는 엄마가 정신과에 가는 것을 바람 쐬러 가는 것만큼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정신과 의사가 엄마의 말을 들어주고 있으니 엄마의 기분이 나아질 거라고 믿었다.
“어땠어?”
바로는 엄마가 집에 들어올 때마다 물었다.
“그렇지 뭐.”
활기차게 나갈 때와 달리 상담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엄마는 지쳐 보였다. 상담을 하느라 진이 빠져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그냥 그랬어.”
엄마는 그대로 소파에 몸 전체를 파묻고 누워 버리기도 했다.
“상담한다고 바로 좋아지나.”
어느 날은 울었는지 눈이 부어 있고 립스틱이 지워져있기도 했다.
“음, 잘 모르겠어.”
짜증을 내며 그대로 방으로 들어가 방문을 닫아 버리기도 했다.
정신과 의사는 엄마와 상담한 첫날 처방전을 써 주었다. 우울증 약을 먹으면 즉시 엄마의 우울증이 나을 줄 알았다. 티브이에서 정신과 전문의들이 말했다.
“감기 걸렸을 때 병원 가는 거를 부끄러워하는 사람은 없죠.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 같은 거예요. 치료를 받으면 낫는 병입니다. 감추지 말고 즉시 병원으로 가 치료받으세요.”
심리 상담 전문가들이 강조했다. 우울증이 있다면 지금 당장 상담받으시라고.
“감기 걸렸을 때 약 먹으면 일주일이면 낫고, 약을 먹지 않으면 칠일이면 낫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잘 먹고 잘 자고 푹 쉬면 결국엔 일주일이면 낫는다는 이야기입니다. 마음을 편하게 하고 복잡한 고민이나 걱정과 불안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잠시 내려놓으세요.”
감기약을 먹으면 감기가 낫는 것처럼, 우울증 약을 먹으면 우울증이 나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우울증 약을 먹은 엄마는 약이 듣는 건지, 듣지 않는 건지 점점 더 무기력해졌다. 약을 먹고 난 후에는 졸음이 많아져 초저녁부터 졸기도 했고 어떤 때는 잠자는 숲 속의 공주처럼 여러 날을 자기도 했다.
“갔다 올게, 엄마.”
바로는 잠든 엄마가 누워 있는 안방 문을 살짝 열고 침대에 누워 있는 바서지는 그림자 같은 엄마한테 인사를 하고 학교에 가곤 했다. 엄마는 가끔 새벽에 깨어 거실 소파에 덩그러니 앉아 있기도 했다. 깨어나선 잠들기 전의 일을 빨리빨리 기억하지 못하거나 드문드문 기억해 내곤 했는데 언제나 가장 먼저 하는 질문은 날짜에 관한 거였다.
“오늘이 며칠이야? 오늘은 무슨 요일이야? 학교는?”
“오늘은 4월 7일이지. 수요일이고. 학교는 갔다 왔지.”
“시간이 참 빨리 가는구나. 벌써 4월이라니. 숙제를 하나도 하지 못했는데 방학이 다 끝나버린 기분이야.”
깨어있을 땐 종종 베란다 밖의 허공을 보기도 했는데 눈의 초점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늘 어디쯤, 건물과 건물 사이 어디쯤을 보는 것 같았다.
엄마는 “죽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하진 않았다. 대신 “살았다”는 말을 했다.
“이만하면 오래 살았다고 생각해.”라고 마흔두 살의 엄마가 말하곤 해서 바로는 엄마가 욕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죽어 버리겠다”라는 말 대신 엄마는 “미안하다”는 말을 하며 울었다.
“옛날에 심한 말해서 미안해.”
“함부로 말해서 미안해.”
“더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엄마가 능력이 없어서 미안해.”
“엄마가 이것밖에 안돼서 미안해.”
“때려서 미안해.”
엄마의 말은 대부분 사실이었다. 엄마는 바로에게 “너 같은 게 태어나서!”라고 무섭게 노려보며 서늘하게 말하기도 했고, 몽크의 절규 속 해골 같은 낯짝으로 “그따위로 할 거면 죽어버려, 네까짓 거 당장 죽어도 눈 하나 깜박 안 해!”라고 기괴하게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아주 넌덜머리가 나.” 하고 미친 날짐승처럼 포효하며 길고 관절 마디마디마다 단단하게 엮인 굵은 손가락으로 바로의 등과 가슴과 배의 얇은 피부가 보랏빛으로 변할 때까지 때리기도 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얼굴이 퍼렇게 질린 채로 엉엉 울며 검푸르게 멍이 든 바로의 허벅지와 팔과 등에 대고 엄마는 사과했다. 눈물을 바닥에 뚝뚝 떨어뜨리며 건네는 엄마의 진심 어린 사과를 받으며 바로는 엄마가 꽤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능력이 없는지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손재주가 좋았다. 무엇이든 엄마 손이 닿으면 살아났다. 미적 감각이 좋아 컵 하나를 골라도 예쁜 것을 골라 집에 놀러 온 아줌마들이 어디서 산 거냐고 샘을 내며 따라 샀다. 교실 미화를 할 때 엄마는 종종 아줌마들에게 불려 나가 예쁜 그림과 글씨를 써주었다. 엄마가 직접 쓰고 꾸민 ‘이달의 생일’ 보드판을 교실 앞 칠판 옆에 붙여 놓고 엄마가 불어 만든 아트 풍선들로 교실 뒤 사물함 위를 알록달록하게 꾸며 놓으면 아침에 등교한 아이들이 “헐, 이것 봐!”, “대박!”이라고 환호했다. 엄마는 손끝에도 뇌가 달려있는지도 모르겠다고 바로는 생각하곤 했다.
아빠는 병원에서 가장 작은 8호 빈소를 구했다. 몇 달 전에 사망한 할머니의 장례식 때 가장 큰 빈소를 마련한 것과 대조되었다. 좋은 일도 아닌데 몇 달에 걸쳐 연거푸 사람들에게 연락을 돌릴 수는 없다는 것이 가장 작은 빈소를 구한 이유였다.
엄마의 빈소를 가장 작은 빈소로 정한 것은 아빠에겐 다행이었다. 엄마의 빈소에 가장 먼저 달려온 외삼촌이 엄마 영정에 국화꽃을 놓기도 전 아빠를 보자마자 아빠의 뺨을 냅다 날렸기 때문이다. 외삼촌이 두껍고 단단한 솥뚜껑 같은 손바닥으로 아빠의 뺨을 치자 ‘찰싹!’이나 ‘철썩!’ 대신 ‘퍽!’ 소리가 나서 분명 손바닥으로 맞는 것을 보았지만 주먹으로 맞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고모들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고 아빠의 직장 사람들에게는 같은 부서 사람들 몇몇에게만 연락을 하였으나 조문은 사양한 관계로 그 꼴은 바로와 외갓집 식구들과 주방에서 일하는 아줌마 두 명만 보았다. 아빠의 뺨에 금세 붉으락푸르락 얼룩빼기 무늬가 생겼다. 외삼촌에게 뺨을 맞은 아빠는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외삼촌은 입술을 꼭 다문 채로 아빠 앞에 서서 아빠를 매섭게 노려보고는 그대로 나갔다. 외할머니는 입구에서부터 통곡을 하며 들어왔고 이모가 곁에서 함께 울며 할머니의 팔을 붙잡고 있었다.
밤 열한 시쯤 나란히 빈소에 들어온 고모들이 엄마 영정 앞에서 짧은 인사를 하고 나갔다. 외갓집 식구들이 빈소 벽에 기대고 앉아 있는 것을 본 고모들이 멈칫하며 서로 눈짓을 보냈다. 인사를 할지 말지 의논하는 것 같았다. 작은 고모가 인상을 쓰며 고개를 재빨리 하나, 둘, 셋, 흔들자 큰 고모가 알았다는 눈짓을 보내고 외갓집 식구들에게 등을 돌리고 지나갔다.
고모들이 외갓집 식구들한테서 조금 떨어진 테이블 앞에 모여 앉아 목소리를 낮추어 소곤거렸다.
“바로 엄마 왜 죽은 거야? 자살했다며? 어떻게?”
“자세히는 안 물었어. 학주가 자세히 말을 안 해. 목을 맸다나 뭐라나.”
“누가 애 딸린 남자한테 시집오겠어. 학주 앞날만 망쳤지 뭐.”
뒤이어 고모들의 사촌이자 아빠의 사촌 여동생들과 사촌 남동생, 사촌 형들이 도착했다. 고모와 고모의 사촌들이 앉아 소곤거렸다.
“바로 엄마한테 남자가 있었다나 봐.”
바로는 자리에서 일어나 도우미 아줌마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여자가 자살했나 봐.”
“애가 아직 어리던데 가여워서 어째.”
“무슨 사연인지 모르겠지만 아이 생각해서 견뎌보지. 에구, 안됐어.”
아줌마들이 종이컵을 쌓아 놓고 접시에 홍어와 전을 담으며 숙덕거리다 바로가 주방으로 들어오자 화들짝 놀랐다.
“왜? 뭐 찾아? 필요한 거 있니?”
머리에 하얀 두건을 쓰고 하얀 허리 앞치마를 한 아줌마가 물었다. 아줌마의 음색은 친절하지도 투박하지도 않았지만 오늘 처음 본 아줌마의 불쌍해 죽겠다는 눈빛은 과하다고 바로는 생각했다.
바로는 육개장 솥에 떠있는 양은 바가지를 잡았다. 육개장을 한 바가지 떠서 그대로 고모와 고모 사촌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로 가서 쏟아붓는 상상을 했다.
“아악!”
하고 비명을 지르겠지. 육개장이 뜨거워서 얼굴에 화상을 입겠지. 화는 나지만 얼굴에 화상 흉터까지 남도록 하는 것은 너무한 거라고, 그렇지만 장례식 장에서 저따위 말을 지껄이는 것은 더 잔인한 거라고 바로는 생각했다.
“반찬 더 줄까?”
옆에 서 있는 아줌마가 물었다. 대답 대신 바로는 은색 직사각형 쟁반을 잡았다. 그리고 고모와 사촌들이 있는 곳으로 가 커다란 직사각형 은쟁반으로 작은 고모 머리통을 냅다 후려갈겼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사촌 고모들 머리통과 그 앞에 앉은 아저씨들 머리통도 내리쳤다. 이번에는 상상이 아니었다. 쟁반으로 머리통을 내리칠 때마다 ‘텅! 텅! 텅!’ 하고 에밀레종이 발악하는 것 같은 소리가 조용하던 빈소에 울렸다.
“무슨 짓이야?”
작은 고모가 소리쳤다. 아빠가 달려 나오고 앉아있던 외삼촌과 이모가 벌떡 일어나 달려와 바로를 말렸다.
“지 엄마 닮아가지고.”
아빠가 작은 고모의 뺨을 때렸다. 작은 고모가 순식간에 붉게 닳아 오른뺨에 손을 얹고 아빠를 노려봤다. 바로는 작은 고모를 노려봤다. 외삼촌이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너 가. 그딴 소리 하려면 가. 너네들도 다 가.”
바로를 꽉 잡고 있던 아빠가 얼굴이 벌게져서 고함을 쳤다. 고모가 씩씩거리면서 나갔다. 고모의 사촌이자 아빠의 사촌들도 때는 이때다 하고 겉옷과 가방을 챙겨가지고 순식간에 빠져나갔다.
“네가 한 짓을 생각해 봐. 너는 며느리 도리 제대로 했냐고!”
아빠가 소리치자 엄마도 소리쳤다.
“당신 집 식구들이 나한테 어떻게 했는지 알면서 나한테 어떻게 그렇게 말해?”
엄마의 고독한 짐승 같은 울음소리가 깊은 밤 거실을 메웠다.
엄마가 독사과를 먹기 전에 아빠가 이렇게 했으면 좋았을 걸, 분이 풀리지 않은 주먹을 쥔 채 바로는 생각했다.
엄마의 빈소를 지키는 사람은 바로와 아빠와 외할머니, 외삼촌과 이모뿐이었다. 새벽 한 시가 되자 조용한 빈소는 침을 삼키는 소리조차 들릴 정도로 고요했다. 외할머니가 자초지종을 묻자 아빠가 설명했다.
“바로와 점심을 먹고 돌아와 보니 지은이가 없었어요.”
바로는 엄마가 혼잣말을 한 뒤 한숨을 쉬고 방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떠올렸다.
“엄마는?”
아빠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엄마는 안방 침대에 그대로 누워 있었다. 등을 보이고 누워 있어 잠을 자고 있는 건지 깨어 있는 건지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함께 가지 않을 거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엄마는 가지 않을 거라고 전하자 “그래? 그럼 할 수 없지. 우리끼리 갖다 오자.”라고 아빠가 심드렁하게 말하고 먼저 밖으로 나갔다.
바로는 냉장고를 열어 요구르트를 꺼내 안방으로 들어가 고무나무 원목 협탁 위에 두었다.
“갔다 올게.”
엄마에게선 어떤 소리도 나지 않았다. 바로는 엄마가 전에 했던 말을 떠올렸다.
“죽고 싶어도 말이야, 죽는 순간은 너무 무섭고 두렵잖아. 눈을 감고 자는 듯이 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평소처럼 자려고 누워서 나는 이제 죽는다, 하고 마음먹으면 다음날 눈이 안 떠졌으면 좋겠어. 조용히 숨이 거두어지는 거지.”
차에 타고 바로는 엄마에게 문자를 보냈다.
‘엄마, 일어나면 요구르트 먹어.’
엄마에게선 답이 없었다.
“차 키가 없어서 외출한 거로 생각했어요. 전화를 해 보았지만 받지 않았어요. 저녁이 되어도 집으로 돌아오지 않아 다시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어요. 밤이 되었는데도 지은이가 돌아오지 않았어요. 전화를 해 보았는데 꺼져 있었어요. 경찰에 신고를 하고 밖으로 나가 동네를 다니며 지은이를 찾아보았는데 찾을 수 없었어요. 바로가 계속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는 계속 꺼져 있었어요. 그래도 어디 있겠지, 어디서 바람 쐬고 있겠지, 기분이 좀 나아지면 돌아오겠지, 하고 생각했어요. 다음 날 아침 여덟 시쯤 경찰한테 전화가 왔어요. 경찰이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고 주소를 알려주며 와 보는 게 좋겠다고 그때부터 불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경찰이 알려준 주소로 갔는데 지은이가.”
아빠의 변명 같은 설명이 중간중간 끊겼다.
“등산객이 발견했다 하더라고요.”
엄마가 죽어서 슬퍼서 그런 거겠지만 외갓집 식구들이 에워싼 중에 엄마의 죽음을 설명하는 것이 버거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대의 상황이라면 틀림없이 엄마는 아빠의 피붙이들에게 호된 조리돌림을 당했을 테니까.
살던 집에서 한 시간쯤 떨어진 야산에서 엄마가 독사과를 깨물었다는 말을 듣고 엄마 영정사진을 보며 ‘지은아, 지은아’ 이름을 부르던 외할머니가 흐느껴 울었다.
“사람이 죽어 나간 집이라고 소문날까 봐, 가는 순간까지 집값 떨어질까 봐, 불쌍한 것이 집에서 멀리까지 갔구나.”
“정신과 상담 잘 다니고 있다고 하지 않았나?”
외할머니와 이모는 계속 눈물을 흘려 눈두덩이 퉁퉁 부어올랐다. 외삼촌이 엄마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미심쩍은 것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아빠에게 꼼꼼하게 질문을 계속했다.
“잘 다니고 있었어요. 약도 잘 먹고 있었고요.”
“그럼, 도대체 뭐 때문에 그런 거란 말이야.”
외할머니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