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정신건강의학과가 있는 8층짜리 건물 일층 카페 앞에서 바로를 멈춰 세우고 비밀작전을 지시하는 특수 요원처럼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의사 선생님이 물어보면.”
“뭘?”
“병원 사람들이 돌아다닐지도 모르니 쉿.”
할머니가 검지를 입에 갖다 대더니 CIA 요원처럼 신중한 표정으로 주위를 살폈다.
“에이, 여기 우리 밖에 없는데.”
바로는 할머니가 별 일 아닌 거에 쓸데없이 진지하다고 생각했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 법이야.”
할머니가 바로에게 얼굴을 가까이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할머니의 입에서 단내가 났다.
“약 먹었는지 말이야. 약 먹었냐고 물어보면 먹었다고 해. 알았지?”
“왜?”
“안 먹었다고 하면 의사가 기분 나빠할 거니까. 지 말 안 들었다고.”
“응. 그렇구나.”
바로는 바닥의 블록을 운동화 끝으로 툭툭 쳤다. 할머니는 바로가 정신과에서 받아온 약을 먹이지 않았다.
“이 약이 너를 무기력하게 해.”
정신과 상담을 마치고 돌아오는 내내 굳은 표정으로 말이 없던 할머니는 집에 오자마자 약을 뺏었다.
“그런데 할머니, 약을 안 먹어도 괜찮을까? 더 안 좋아지면 어떡해?”
“정신과에서 주는 약에는 잠 오는 성분도 있다더라. 우울하니까 잠을 자게 하는 거야. 우울한 생각 못 하게.”
바로는 발끝을 세워 바닥의 블록을 따라 그렸다.
“할머니 가게에 자주 오는 여자 있지? 그 여자 딸도 고등학교 때 딱 너 같았대. 갑자기 우울증이 왔대. 갑자기는 아니지. 고등학교 입학하고 적응을 못하더니 우울증이 왔다더라. 처음엔 적응하느라 힘들어서 저리 짜증을 내는구나, 했는데 점점 심해졌대. 그래서 청소년 센터에서 하는 무료 심리 상담도 받아 보고, 정신과도 다녀 보고 했는데 의사가 그랬대. 꼭 약을 먹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약을 안 먹어도 나을 수 있다고.”
“그래서 어떻게 됐어?”
“지금은 싹 다 나았대.”
“약 안 먹고?”
“그래. 안 먹고. 지금은 싹 나아서 에스케이에서 상담원으로 일하면서 잘 살고 있대. 결국 대학은 못 갔지만 말이야.”
“그렇구나.”
“대학이야 못 가면 또 어떠니. 살아 있으면 그게 기적이지.”
할머니가 휴, 시무룩한 날숨을 쉬었다.
“나는 그 의사가 명의라고 생각해서 널 거기로 데려가려고 했는데 그 사이 폐업하고 다른 도시로 갔대.”
“왜?”
“왜긴. 장사가 안돼서 그렇지. 춘천도 이제 건물마다 병원이야. 인구도 얼마 안 되는데 말이야. 아픈 사람이 넘쳐 나는 건지 원.”
할머니가 따뜻한 손으로 바로의 앞머리를 쓸어 정돈해 주었다.
“약 처방부터 하는 의사도 있다더라. 너는 약 먹어서 고칠 우울증이 아니야. 내가 보기엔 너는 착하고 건강하고 한없이 예뻐. 우리 지은이랑 똑같아.”
“그럼 정신과는 왜 다니는 건데?”
“지푸라기라도 잡아 보는 거야. 네가 너무 충격받았을 거 아니야. 엄마를 살리겠다는 둥 하는 소리 의사한테 속 시원하게 털어버리고 마음 좀 풀리라고. 할머니는 바빠서 네 얘기만 듣고 앉아 있을 수가 없어. 가여운 내 새끼.”
할머니가 눈물을 훔쳤다.
“응.”
바로는 고개를 까딱까딱 흔들었다.
“내가 보기엔 할머니가 우울증인 거 같은데?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나잖아.”
“이그, 이 귀여운 것. 할머니는 뭐가 우울증 인지도 몰라. 우울할 땐 시무룩했다가 성질났다가 기분 좋을 땐 미친 여자처럼 실실 웃다가 하면서 그냥 살아.”
할머니가 코를 찡긋했다.
“할머니 말대로 해. 알았지? 약 먹었냐고 물어보면 먹었다고 해. 꼭. 알았지?”
근심 가득한 눈빛으로 바로를 바라보며 할머니는 몇 번이고 다짐을 받았다.
‘엄마도 약을 안 먹었으면 살았을까. 내가 엄마 약을 숨겨 두었어야 했을까. 그랬으면 깊은 잠에 빠지지 않았을까.’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니?”
할머니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로를 보았다.
“할머니,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는 마법 같은 건 정말 없는 걸까?”
“그건 영화 속 이야기지.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오는 마법은 없단다. 생사는 인간이 손쓸 수 있는 게 아니지.”
“하지만 세상은 넓은 거잖아. 세상 어딘가에 죽은 사람을 살리는 마법이 있을지도 모르는 거잖아. 우리는 우주에 대해서도 아주 일부만 알고 있고 바다 속도 제대로 아는 게 아니라면서. 지구 중심에는 상상도 못 한 세계가 있을지도 모른대.”
“바로 생각엔 어떤 세계가 있을 것 같은데?”
“엄마를 다시 살아나게 하는 마법의 세계. 독사과를 먹고 잠이 든 엄마는 백설 공주처럼 깨어나지는 않겠지? 왕자 같은 게 있을 리 없고 있다 해도 엄마를 깨울 리 없지. 하지만 만약, 잠든 엄마를 깨운다면? 그럼 엄마도 눈을 뜰 수 있을까?”
“의사 선생님한테도 그렇게 이야기했어?”
바로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자 할머니가 휴, 하고 한숨을 쉬었다.
“잘했어. 뭐라든?”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냥 듣고 있어. 하지만 듣고 있는 눈치는 아니야. 지난주엔 한참 듣다가 이렇게 대꾸해 주었어. 음, 엄마를 다시 만나는 비현실적인 악몽을 매일 꾸는구나.”
바로는 할머니가 듣건 말건 이야기를 계속했다.
“할머니, 나는 엄마를 깨울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래야 해. 엄마를 다시 만나야 해.”
“그래, 할머니도 그런 마법이 실제로 있었으면 좋겠구나. 지은이가 보고 싶구나.”
할머니의 코가 빨개지고 눈시울이 벌게졌다. 바로의 눈망울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엄마는 수시로 할머니가 바로를 얼마나 예뻐하셨는지 알려주었다. 얼마나 자주 얘기했는지 귀에 딱지가 앉다 못해 나중엔 그러니까 결국 나더러 할머니한테 은혜를 갚으라는 건가?라는 생각을 하기에 이를 지경이었다.
“할머니가 나를 그렇게 예뻐했어?”
“그렇다니까. 너를 처음 본 날부터 사랑에 빠진 것처럼 말이야.”
“왜?”
“그야 엄마 아들이니까 그렇지. 얼마나 더 얘기를 해야 이해하겠니? 할머니가 유독 너를 엄청 예뻐하셨다니까. 그러니까 우리 바로도 할머니한테 잘해야 돼. 알았지?”
“그런데 왜 내가? 엄마가 하면 되잖아.”
대답 대신 엄마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엄마가 죽고 며칠 동안 바로의 밥을 챙겨주고 바로를 정신과 앞까지 데려다주던 할머니는 식당을 오래 비워둘 수 없어 만천리로 돌아갔다. 할머니가 만천리로 돌아가고 바로는 결국, 학교를 그만두었다. 학교엔 엄마가 자살했다는 소문이 쫙 퍼졌다. 동네에도 소문이 돌았다. 소문이야 신경 안 쓰면 그만이긴 하지만 엄마가 자살했다는 사실이 계속 상기되는 것은 견디기 싫었다. “쟤네 엄마 자살했대.”라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매일 들렸다. “쟤네 엄마 자살했대.”는 “쟤네 엄마 쟤 때문에 죽었대.”, “쟤가 엄마 죽였대.”로 들리기 시작했다. 차라리 애들이 가장 싫어하는 애랑 키스했다는 소문이 도는 편이 훨씬 나았다.
아빠는 멀쩡한 척하며 회사를 나가고 있었지만 실은 살짝 넋이 나가 있었으니 아빠의 허락을 받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할머니 집으로 가고 싶어요.”
아빠는 자포자기한 듯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아빠도 내심 이 순간을 바랐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일을 해야 하는 처지다 보니 학교도 다니지 않는 아들이 혼자 집에 있는 것보다는 낫다고 이성적으로 판단한 것이라고 바로는 생각했다.
할머니 닭갈비집은 삼십 년 된 닭갈비집이었다. 할아버지가 학교를 그만두자 할머니는 닭갈비집을 차렸다.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너희 엄마가 다른 음식보다 특히 닭갈비를 좋아했잖아.”
막김치를 담그기 위해 주방 한편에 쭈그리고 앉아 막 자른 배춧잎에 고춧가루 양념을 버무리며 할머니가 말했다.
“엄마가 그랬어?”
“그랬지. 언제였더라? 너희 엄마 초등학교 졸업식 때였나? 그땐 학교 졸업하면 중국집에 가서 짜장면을 먹었거든. 근데 중국집이 만원인 거야. 그 시골에 중국집이 열몇 개씩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는 자리를 잡지 못하고 그 옆에 있던 닭갈비집으로 들어갔어.”
“할아버지도 있었고?”
“할아버지랑 다 같이 먹었지. 할아버지가 그 무렵 사고가 크게 나서 학교를 그만두었잖아. 그 덕에 졸업식날 다 함께 외식이란 걸 했지. 그때부터 닭갈비가 가장 맛있다고, 뭐 먹고 싶어? 하고 물으면 닭갈비,라고 답하곤 했어. 그래서 할아버지 다치고 뭐해 먹고살아야 하나, 했을 때 닭갈비집을 차린 거야.”
“그랬구나. 엄마가 닭갈비를 좋아하긴 했지. 이 정도로 좋아하는 줄은 몰랐어.”
“아빠랑 엄마랑 자주 싸웠니?”
오후 세 시, 저녁 장사에 사용할 양배추를 채 썰며 할머니가 물었다. 바로는 할머니 옆에 앉아 커다란 대야에 가득 담긴 양배추를 한 개씩 나무 도마에 올려주었다.
“아니, 꼭 그런 것은 아니야. 친구들 얘기 들어보면 다들 그러고들 살아. 우리 집이 더 나쁘거나 좋거나 할 것도 없어. 우린 평범해, 할머니.”
“어이구, 즈그 엄마 보내더니 한 오백 년 산 늙은이 같은 소리 한다.”
할머니가 피식, 웃었다.
“아빠가 엄마를 때리니?”
바로는 고함을 내지르며 아빠의 등을 주먹으로 퍽퍽, 때리는 엄마의 모습을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 그럴 거야. 네 아빠가 그럴 사람이 아니지.”
“할머니는 아빠 미워?”
“아빠를 왜 미워해? 아빠는 불쌍한 사람이야. 아빠한테는 이제 너밖에 없어.”
할머니가 애달픈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렇긴 하지.”
“너희 아빠는 착한 사람이야. 내가 본 사람 중에서 가장 착한 사람이라는 걸 믿어.”
바로는 할머니가 채 썬 양배추를 대야에 옮겨 닮고 럭비공같이 생긴 양배추를 도마에 올렸다.
“다 할머니 잘못이야.”
착착 착착, 할머니의 손목 스냅에 따라 양배추가 리듬에 맞춰 국수 가락처럼 잘렸다.
“부부 싸움을 하고 나면 지은이를 불러 앉히고 한소리를 해댔지. 엄마가 맞고 있는데 구경만 하고 있었다고.”
할머니가 한숨을 쉬었다.
“어느 날 지은이가 그러더라고. 학부모 모임을 갔더니 네 친구 엄마가 ‘자기네 집 밤마다 부부 싸움한다며’ 그러더래.”
할머니가 칼질을 멈추었다.
“아버지는 밤새 엄마를 때렸었지. 그래서 나는 폭력적이지 않은 남자와 결혼했는데 맞고 사는 여자로 보이는가 보네. 폭력의 면사포를 쓰고 있나 봐. 하하하!”
“별 시답잖은 농담을 한다고 핀잔을 주는 대신 상처 주어서 미안하다고 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어. 생각해 보면 지은이는 엄마를 무척 아끼는 아이였어. 할아버지랑 싸우고 세상 꺼진 얼굴을 하고 누워있으면 찬밥에 물을 말아서 냉장고에서 이것저것 밑반찬을 꺼내 가져다주었어. 지은이가 마음을 담아 차려온 밥을 먹고 다시 힘을 내서 일어나 방 밖으로 나오곤 했었지. 용돈을 아껴 빨간 립스틱을 사주기도 했어. 할머니랑 시장에 오고 가며 봐 둔 화장품 가게에 들어가서 립스틱을 고르고선 뿌듯해했다더구나. 할머니가 결혼식 갈 때마다 하는 진주 귀걸이 있지? 그것도 네 엄마가 사준 거야. 진짜 진주는 아니지만. 지은이는 뭐든 예쁘고 귀한 것을 보면 할머니에게 주고 싶어 했던 귀한 딸이었어.”
할머니 볼에 눈물이 흐르고 말을 잇지 못했다.
“가여운 내 딸.”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던 여자가 손을 들고 큰소리로 불렀다. 여자 곁엔 이십 대 딸과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아들이 함께 앉아 있었다.
“초파리가 닭갈비에 앉았어요. 바꿔 주세요.”
“여기는 산 바로 아래라 초파리야 늘 있어요. 주위를 보시오. 온통 산이잖수.”
할머니가 팔로 초파리를 쫓아내는 시늉을 했다.
“초파리가 닿자마자 떼어냈는데.”
“그래도 바꿔 주세요.”
여자가 성질을 내자 여자의 딸과 아들이 딴청을 피우며 조용히 엄마를 설득했다.
“괜찮아, 엄마. 그냥 먹어.”
여자의 딸이 만류했지만 여자는 차가운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바로는 할머니에게 다가가 할머니 팔을 잡았다.
“할머니.”
할머니가 흠, 하고 한숨을 쉬었다.
“바꿔 드릴 테니 기다리시우.”
“자리를 옮겨드릴게요.”
바로는 손님들의 자리를 옮겨주고 철판 위에 맛있게 구워진 닭갈비를 그릇에 담아 주방에 가져다 놓았다.
금요일 저녁은 회식하는 사람들로 가게가 숨 쉴 틈 없이 바빴다.
“걸어 다닐 틈도 없이 뛰어다녀야 하지만 식당에서 음식 들고 뛰어다니다간 더 큰 사고가 나니 아무리 바빠도 식당에선 뛰지 말아야 해.”
알바 첫 주 주말에 할머니가 손님 많을 때 주의 사항을 알려 주었다.
“손님이 많으면 화내는 손님도, 짜증 내는 손님도 예민한 손님도 많아. 다다익선 알지?”
“그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라는 뜻이잖아.”
“진상이든, 뭐든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야.”
“여기요. 따로 앉으라고 해서 따로 앉은 건데 이쪽 테이블엔 쌈 안 줘요?”
“이쪽에서 닭갈비를 조리할 거라서요.”
“그래도 아줌마가 따로 앉으라고 해서 따로 앉은 건데 이쪽 테이블에도 김치랑 동치미랑 쌈을 똑같이 주셔야 되는 거 아니에요?”
줄무늬 티셔츠를 입은 남자가 뾰족하게 항의했다.
“말씀하시면 더 드려요. 갖다 드릴게요.”
다다익선을 생각하며 바로는 김치와 동치미와 상추쌈을 한 세트씩 더 가져다주었다.
“우동 사리 2인분 주문했는데 이거 2인분 맞아요?”
팔짱을 끼고 닭갈비가 익어가는 것을 지켜보며 여자가 물었다.
“네. 맞아요.”
“적어 보이는데.”
여자의 의심스러운 가자미눈이 철판의 우동 가락을 세고 있었다.
“더 드릴까요?”
“정말요?”
바로의 말에 여자의 얼굴이 화색이 돌았다.
“더 드릴게요.”
바로는 주방으로 가 데쳐놓은 우동사리를 더 갖다 주었다.
“많이 드렸어요. 1인분보다 더 삶았는데 그냥 더 드렸어요.”
“어머나! 젊은 학생이 센스가 있네. 잘 먹을게요. 고마워요.”
여자의 얼굴이 금세 환해졌다. 바로는 만족해하는 여자의 얼굴을 확인하고 닭갈비를 뒤적여주기 위해 다른 테이블로 갔다.
“이건 어쩔까?”
닭갈비를 먹고 있는 손님이 한 테이블이 남았을 때 바로는 할머니에게 물었다.
“어쩌긴, 우리가 맛있게 먹어야지. 그깟 초파리가 잠깐 앉았다고 음식이 썩는 것도 아니고. 하여간 요즘은 별거 아닌 일에도 유난들이야. 중요한 건 죄다 묻어 버리고 말이야.”
할머니가 주방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열 시가 되자 식당을 마감하고 바로와 할머니는 초파리가 킁킁거리며 냄새만 맡고 간 닭갈비를 홀에 가지고 나와 동그란 닭갈비 테이블 앞에 모여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