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타게 찾던 멘토는 나의 곁에 있었다.
멘토는 현명하고 신뢰할 수 있는 상담 상대, 지도자, 스승, 선생의 의미이다. 이 단어는 <오디세이>에 나오는 오디세우스의 충실한 조언자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에 출정하면서 집안 일과 아들 텔레마코스의 교육을 그의 친구인 멘토에게 맡긴다. 멘토는 오디세우스가 전쟁에서 돌아오기까지 무려 10여 년 동안 텔레마코스의 친구, 선생, 상담자, 때로는 아버지가 되어 그를 잘 돌보아주었다.
수많은 자기 계발서에서 멘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멘토는 성공의 길을 알려주기도 하고, 멘티의 잠재력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멘토하면 떠오르는 직업군은 선생님이다. 학창 시절 만난 선생님의 사소한 칭찬 혹은 조언으로 위대한 예술가가 탄생하기도 하고, 방황의 길에서 손을 내밀어준 선생님 덕에 삶을 포기하지 않고 이어나가기도 한다.
그동안 나의 멘토는 누구였을까. 학창 시절에 나를 가르쳐 주신 선생님들 중 그 누구와도 나의 장래나 현재 고민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다. 가장 가까운 어른이었던 부모님과의 대화도 안정적인 직장이나 건강에 대한 조언 그 이상은 아니었다.
지난달 유튜브에서 멘토의 조건과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강의를 듣게 되었다. 강연자의 말에 따르면, 멘토는 으레 나보다 나이가 많아 인생 경험이 풍부한 직장 상사나 스승을 꼽을 수 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강연자 본인은 자신의 와이프가 멘토의 역할을 해준다고 했다.
‘부부가 멘토가 될 수 있다고?’ 강연자의 마지막 말을 듣고 나니, 내가 애타게 찾던 멘토가 실은 나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의를 다 듣고 나서, 10년의 연애 끝에 결혼을 하게 된 신랑과 나의 사이를 곰곰이 되돌아 보았다. 스무 살에 연애를 시작한 덕에 20대 내내 그리고 내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에는 신랑이 항상 함께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선택을 꼽자면 대학을 졸업하고 수능을 다시 보기로한 사건이다. 신랑은 내가 미래를 선택하고 결정을 내리는데 아주 큰 역할을 했다. 바로 나의 고민을 2년 먼저 겪었기 때문이다.
나의 방황기가 시작되기 2년 전, 신랑은 원하는 대학으로 원서를 내고 무려 2월에 마지막 추가 합격생 전화를 받았다. 새로운 학교에서 공부하는 신랑이 모습은 꽤나 고생스러워 보였지만 그 속에서도 자신의 꿈을 위해 정진하는 모습이 즐거워 보였다. 도전하지 않으면 성공도 없음은 당연지사, 20대 중반의 나이가 뭐 늦었다고 주저할까 싶었다. 결국 당시 남자친구던 신랑의 모습과 응원에 힘입어 수능 원서를 접수했다.
“여보는 멘토가 누구야?”
신랑도 나와 같이 생각할까 싶어 어느 날 저녁, 물음을 던졌다.
“L교수님 그리고 E형이 내 멘토 같아.”
신랑은 졸업한 지 8년이 지난 지금도 꾸준히 지도 교수님의 생신이며 명절 때마다 감사를 표시한다. 예상했던 대답이기에 그러려니 하고 내 대답을 이어갔다.
“생각해 보니 난 여보가 멘토인 것 같아. 내가 수능을 다시 보기로 결정 했을 때도 그렇고 말이야.”
10년이라는 장기연애를 하면서, 가까이 붙어 지내던 때는 초반 1-2년뿐이었다. 우리는 해를 번갈아 서로의 수험 생활을 곁에서 지켜봐야 했고, 단골 데이트 장소는 도서관이었다.
먼저 수험 생활을 끝낸 신랑이 지방으로 내려가게 되면서 긴 장거리 연애가 시작되었다. 연애 마지막 해에는 둘 다 중요한 시험을 준비해야했다. 고학생인 우리 둘은 시간도 돈도 부족했지만, 편도 3시간이 걸리는 무궁화호를 타고 주말마다 만났다. 기차를 타고 오가며 고학생 시절을 함께 보내온 우리 부부는 서로에게 큰 힘이 되는 존재였다.
20대 시절을 함께 보낸 신랑은 자신감 넘치고 반짝이던 처음 모습과 많이 달라졌다. 가정사와 경제적 어려움이라는 풍파 속에서도 공부를 이어가며 생각과 마음이 보다 깊어졌다. 우리 커플은 물리적 거리감이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서로의 연을 끊지 않고 함께했다. 인생의 멘토를 20대 때부터 쭈욱 가장 가까운 곳에 두고 있었다고 새삼스레 깨닫자, 신랑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 내 대답을 들은 신랑은 나를 멘토라기보다는 인생의 동반자이며 지지자라고 대쪽같이 답했지만.
아이가 태어나고서는 육아와 집안일이라는 공동의 과업이 생기게 되었다. 연애 기간 동안 다툰 일이 거의 없었던 우리도 육아와 집안일에 대한 의견 충돌로 자주 부딪히곤했다. 아이를 낳기 전, 각자의 일에 집중하며 응원을 보내고 배려하던 우리가 복잡한 이해관계에 빠지게된 것이다. 조부모님의 도움이 없이 둘이 오롯이 육아를 맡았던 상황인지라, 상대의 일이 육아에 영향을 미치고, 육아로 인해 내 일이 영향을 받게 된 탓이다.
서툰 육아에 익숙해지고 나서는 바쁜 와중에 서로를 위해 스케줄을 조정하고, 육아와 집안일의 역할을 분담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애쓰고 있을 서로의 노고를 미루어 짐작하며 응원의 메시지를 보낼 여유도 되찾게 되었다. 10년의 장기 연애에서 다져온 믿음과 신뢰로 앞으로 새롭게 주어진 우리의 과업도 잘 해결해 나가길바란다.
인생의 동반자이자 나의 멘토여! 서로 머리를 맞대고 우리 가족이 탄 배의 키를 함께 쥐고 가자. 바람이 어느 방향으로 부는지, 돛을 내릴 곳은 어디인지 함께 고민하며 드넓은 바다에서 뜨고 지는 태양을 매일 함께 바라보자. 서로의 꿈을 응원하는 동료이자 고민을 나누는 친구이며 절망과 좌절 속에서 다시 일어나도록 지켜봐 주고 기다려주는 든든한 조력자가 내 곁에 있었음에 새삼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