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창조자가 되기 위해 묻는다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실패하면 쿠데타, 성공하면 혁명.”
마법사 카드가 딱 그렇다.
같은 능력, 같은 말재주를 가졌어도
어디로 향하느냐에 따라
창조자가 될 수도, 사기꾼이 될 수도 있다.
타로 카드에는 양면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무조건 좋은 카드도, 무조건 나쁜 카드도 없다. 사람도 마찬가지 아닐까. 우리는 선하면서 동시에 악하다. 심리학에서는 이걸 양가적 감정이라고 부르는데, 참 적절한 표현인 것 같다.
마법사 카드를 펼칠 때마다 나는 두렵다.
타로 상담을 하려면 말을 잘해야 한다. 아니, 잘해야만 한다. 카드를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걸 어떻게 전달하느냐가 더 중요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위로도 해야 하고, 때로는 조심스럽게 쓴소리도 해야 하고, 희망이 있다는 걸 알려주기도 해야 한다. 결국 전달해 주는 입장이기에, 말을 잘해야 상담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그런데 때로는 그 말재주가 두렵다. 타로리더를 비웃는 사람들이 있다. '어차피 말빨이지', '희망고문', '엔터테인먼트'. 그런 말들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철렁한다. 혹시 나도 그렇게 보이는 건 아닐까. 아니,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어가는 건 아닐까.
그래서 나는 나름 열심히 노력한다. 사실 듣기 좋은 말이 뭔지 알고 있다. 어떤 말을 하면 사람들이 좋아하는지 상담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그런데 나는 그 말들을 최대한 안 하려고 노력한다. 진짜 필요한 말을 하려고 한다. 위로만 해주는 게 아니라, 때로는 불편한 진실도 말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카드를 펼치는 순간마다 진심으로 생각한다. 이 사람이 조금이라도 나아졌으면 좋겠다고. 단순히 기분이 좋아지는 게 아니라, 정말로 성장했으면 좋겠다고.
그런데도 불안하다. 내 노력이 충분한 걸까?
무서운 건, 경계가 모호하다는 것이다.
듣기 좋은 말과 진짜 필요한 말, 위로와 희망고문, 서비스와 사기. 그 경계는 생각보다 가깝다. 어쩌면 종이 한 장 차이일지도 모른다. 상담이 끝나고 나면 가끔 혼란스럽다. 방금 내가 한 말이 정말 필요한 말이었을까? 나는 노력했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정말 충분했을까? 끝나지 않는 고민으로 밤을 새울 때도 있다.
마법사 카드를 보면 탁자 위에 검, 컵, 완드, 펜타클이 놓여 있다. 네 가지 도구, 각자 다른 힘을 가진.
처음 타로 상담을 하면서부터 감사하게도 사람들이 많이 찾아주셨다. 그런데 나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이게 내 길이라는 걸. 또 다른 나의 길이 있다고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사업이나 다른 일들도 많이 시도해 보았다. 하지만 돌아보면 다 내 길이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타로는 계속 곁에 있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나를 찾아 주셨다. 하지만 나는 그걸 외면하면서, 계속 다른 걸 찾았다.
그런데 결국 깨달았다. 내가 원하는 도구와 내게 맞는 도구는 다르다는 것을. 내가 들고 싶은 도구와 내가 잘 쓸 수 있는 도구는 다르다는 것을.
상담을 하다 보면 내담자분들을 보면서 생각한다. 많은 사람이 자신은 특별한 능력이 없다고 말한다. 어느 분야에서도 1%에 들지 못한다고 좌절한다.
나도 그랬다. 아니, 나는 조금 달랐다. 내 도구가 있다는 건 알았는데,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우리 모두에게는 각자의 도구가 있다는 걸. 원하든 원치 않든, 마음에 들든 안 들든.
마법사의 탁자 위에도 네 가지 도구가 놓여 있지 않은가. 마법사가 검을 들고 싶어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정작 그에게 맞는 건 컵일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글로, 어떤 사람은 그림으로, 어떤 사람은 말로. 누군가는 음식으로, 누군가는 손재주로, 누군가는 따뜻한 공감으로. 나는 카드로. 내가 원했던 도구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게 내 도구다. 그리고 이제는, 이 도구가 좋다.
그런데 도구를 받아들였다고 끝이 아니다.
어쩌면 그게 시작이다. 문제는 그 도구를 어디에 쓰느냐다. 같은 말재주도 희망을 줄 수도 있고, 속일 수도 있다. 같은 카드도 위로가 될 수도 있고, 희망고문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이제 내 도구를 받아들였다.
그래서 더 두렵다. 이걸 제대로 써야 하는데.
마법사 카드는 또 하나 무서운 게 있다.
이 카드는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은 상태라는 것이다. 세상을 바꿀 능력은 있지만, 아직 세상을 바꾸지 않았다. 창조자가 될지, 사기꾼이 될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가능성으로만 가득 차 있다.
나는 내 도구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매일 상담을 하면서도 확신할 수가 없다.
나는 정말 이 도구를 제대로 쓰고 있는 걸까?
그래도 나는 오늘도 카드를 펼친다.
그리고 오늘도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걸까? 내가 하는 말이 정말 이 사람에게 필요한 말일까? 내 노력이 충분한 걸까?
이 질문들을 계속 던지는 것, 어쩌면 그게 나를 사기꾼이 되지 않게 막아주는 유일한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질문을 멈추는 순간 경계도 멈추는 것 같아서. 질문을 계속하는 한 나는 적어도 창조자의 방향을 향해 걷고 있는 거라고 믿고 싶다.
이런 질문은 비단 타로에만 해당하는 게 아닐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이, 내가 하는 말이, 내가 맺는 관계가 진심인지 습관인지, 도움인지 해가 되는지. 우리는 모두 그 모호한 경계 위에서 살아간다. 그렇기에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 그게 우리가 인간인 이유가 아닐까.
마법사 카드는 나에겐 참 두렵다.
어느 쪽으로든 갈 수 있는 카드이기에,
오늘도 이 카드 앞에서 멈춰 선다. 그리고 다짐한다.
오늘도 진심을 다하겠다고. 오늘도 듣기 좋은 말보다 필요한 말을 하겠다고. 오늘도 사기꾼이 아닌 창조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완벽하지 않을 거다. 실수도 할 거다.
그래도 노력은 멈추지 않을 거다. 나는 오랜 시간 끝에 내 도구를 받아들였다. 이제는 이 도구를 올바르게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안니발레 카라치, ‘헤라클레스의 선택’ (1596)]
젊은 헤라클레스 앞에 두 여신이 나타난다. 한 여신은 험난하지만 명예로운 길을, 다른 여신은 안락하지만 타락으로 이어지는 길을 제시한다. 헤라클레스는 아직 선택하지 않았다. 창조자가 될지, 사기꾼이 될지. 그 선택은 매 순간 우리 앞에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