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낱이라는 말 앞에서
“한낱.”
기껏해야,
대단한 것 없이,
다만 살아가는 존재.
누군가에게는
그저 보통,
그저 그런,
그저 지나가는 이름일지도 모르겠다.
‘한낱’은 원래 부사라는 걸 안다.
하지만 나는 그 단어를 단순히 하찮음이 아닌,
작지만 포기하지 않는 존재의 상징으로 쓰고 싶었다.
문법보다, 그 단어가 품은 감정의 울림을 따르기로 했다.
나는
이 단어가 오래 남는다.
어딘가 묵직하게,
나를 붙잡는다.
‘한낱 인간’,
‘한낱 감정’,
‘한낱 하루살이’.
이 말 속에는
자신을 낮추는 듯한 고백이 있으면서도,
어디선가 날아오르고 싶은 의지가 느껴진다.
기름 묻은 날개를 털며
버둥거리는 하루살이처럼—
누구도 돌아보지 않는 자리에서
비상을 준비하는 마음.
어쩌면 우리는
거창한 이름 없이
드러나지 않는 감정으로
수없이 흔들리며 하루를 버텨내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흔들림 안에는
언제나 방향이 있고,
소망이 있고,
다시 날아보려는 숨결이 있다.
나는 그걸 ‘한낱의 용기’라고 부르고 싶다.
‘한낱’이라는 말은
작음을 뜻하는 말이 아니다.
그건 오히려
“작지만 포기하지 않는 존재”를 부르는 말이다.
나는 지금
그 ‘한낱’으로 살고 있다.
대단하진 않지만,
가볍지도 않게.
한낱이라서,
나는 낮게 날고
낮게 숨 쉬며
조용히 살아간다.
하지만
이 한낱의 호흡 속에는
다시 날아오를 시간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누군가 내게 말한다 해도,
“너는 기껏해야 한낱이야.”
나는 조용히 대답할 것이다.
그래, 나는 한낱이야.
하지만 나는 지금도
날아오를 준비를 하고 있어.
그렇다면 묻고 싶다.
"당신은 지금,
어떤 이름으로 자신을 부르고 있는가?"
※ 『한낱』이라는 표현은 국어사전상 부사이나,
본 연재에서는 존재의 크기와 감정의 밀도를 상징하는 시적 언어로 재해석하였습니다.
문법적 완전성보다는 문학적 울림과 철학적 사유의 흐름을 우선한 표현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