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함을 껴안는 특별함
"지극히 평범하다."
가장 모나지도, 가장 특별하지도 않은 말.
우리는 이 단어를
때로는 기준처럼,
때로는 잣대처럼,
때로는 안락함처럼 사용한다.
그런데 문득, 이렇게 물어보게 된다.
“정말 평범함을 평준화할 수 있을까?”
“그리고, 누가 누구에게?”
“지극히 평범하다.”
평범.
평균.
평준화.
보통.
가장 모나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단어들.
하지만 그 안에는 언제나 기준이라는 말 없는 선이 숨어 있다.
“평범한 얼굴”,
“평범한 직업”,
“평범한 감정” 같은 말들은
누군가의 시선 아래서
존재를 보통으로 묶어두려는 의도를 품는다.
그래서 나는 묻는다.
정말, 평범하다고 해서 평준화할 수 있을까?
누가, 누구에게?
곧 생각이 바뀐다.
그 ‘누가’는 외부가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것은
내가 나에게 건네는 말일지도 모른다.
“나는 왜 이렇게 평범할까?”
“나는 왜 특별하지 않을까?”
그렇게 우리는
스스로를 기준으로부터 규정하고,
그 규정 안에서 자신을 축소시키기도 한다.
“평범하다는 감정은, 어디서 오는 걸까?”
“그건 나쁜 것이기만 한 걸까?”
아니,
그건 어쩌면 내가 선택한 안락함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드라마틱한 서사만으로 살 수 없다.
누군가는 잊히는 일상 속에서 평화를 찾고,
누군가는 높낮이 없는 온기 속에서 진심을 느낀다.
평범함은 틀이 아니라, 쉼이 될 수 있다.
정의당하지 않아도,
스스로 인정할 수 있다면—
그건 이미 내 방식의 특별함이다.
그렇게 ‘평범함’을 껴안을 줄 아는 사람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그래서 나는 이제,
누군가가 내게 “넌 평범해”라고 말해도
그걸 부정의 낙인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나는 평범한 게 좋다.”
그렇게 스스로 말할 수 있다면—
그건 존재에 대한 포기가 아니라,
존재에 대한 깊은 수용이다.
평범하다는 말 앞에서
주눅 들 필요도, 과장할 필요도 없다.
그 단어를
누가, 누구에게 말했느냐보다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결국 내 삶의 방향이 된다.
나는 오늘도 평범하게 살았고,
그게 나에게는 참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