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종종 평화를 말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평화는 늘 전쟁의 문턱에서만 또렷해진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
중동의 끝나지 않는 분쟁,
그리고 한반도의 휴전선 앞에서
나는 오래된 질문을 다시 꺼내 들었다.
평화는 정말 가능한가.
아니면 평화란,
강한 힘과 강한 힘이 맞닿아 만들어내는
잠깐의 정적에 불과한 걸까.
나는 한때 이렇게 생각했다.
만약 인간 위에
절대적인 존재가 있다면,
전쟁은 멈추지 않을까.
직접 통치하지 않더라도
선을 넘는 순간
자연재해처럼 개입하는 존재가 있다면,
인류는 더 이상 서로를 죽이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그 상상은
비윤리적일 수 있지만,
솔직히 말해 꽤나 평화로워 보였다.
그러나 곧 깨달았다.
그 평화는
자유를 대가로 한 안정이었고,
선택을 포기한 평화였다.
조용하지만,
숨 쉬기 어려운 세계.
역사를 돌아보면
성군들은 늘 강한 권력을 쥐고 있었다.
질서는 있었고,
안정은 유지됐다.
그래서 나는 다시 흔들렸다.
권력이 분산된 인간적인 세상은
오히려 파멸을 부르는 구조가 아닐까.
그러나 곧 알게 됐다.
문제를 만든 건
강한 권력도, 약한 권력도 아니었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
성군의 다음에 폭군이 왔을 때
중앙집권은 곧바로 재앙이 되었고,
절대자의 부재는 혼란을 낳았다.
우리는 늘
두 개의 실패 사이에서
겨우 균형을 잡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질문했다.
영웅은 어디에 있는가.
난세에는 영웅이 나타난다지만,
이 시대에
그 역할을 자처할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영웅이라는 개념 자체가
이미 시대착오일지도 모른다.
한 사람의 힘으로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는 믿음은
너무 많은 피를 요구해 왔다.
그제서야 나는
평화에 대해
다른 정의를 떠올리게 되었다.
평화는
목표가 아니라 상태가 아닐까.
도달해야 할 이상이 아니라,
겨우 유지되는 균형.
전쟁이 없는 순간이 아니라,
전쟁이 이득이 되지 않는 구조.
누군가가 선해서가 아니라,
싸우는 것이
손해가 되는 설계 위에서만
평화는 잠시 머문다.
그럼에도 나는
이 결론 앞에서
이상한 공허를 느꼈다.
이게 전부라면,
우리는 결국
폭력의 관리자에 불과한 건 아닐까.
그래서 나는
다시 나 자신에게로 돌아왔다.
나는 예전에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신은 불공평할까?”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었을까.
왜 나는 평범한 안전을 갖지 못했을까.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 질문의 끝에서
다른 문장에 닿아 있다.
신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했던 건
내가 이 세계를 어떤 태도로 통과해왔는가였다.
오늘 내가 던졌던 질문들
평화, 권력, 절대자, 영웅, 전쟁
그 모든 질문은 결국
하나의 문장으로 모였다.
“구원이 없는 세계에서,
나는 어떤 인간으로 살아갈 것인가.”
이제 나는
완벽한 평화를 꿈꾸지 않는다.
절대자의 개입도,
영웅의 등장을 기다리지도 않는다.
대신
이것만은 분명히 느끼게 되었다.
평화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선택의 방향이라는 것을.
힘을 가졌을 때
쉽게 휘두르지 않는 선택,
정의를 말할 때
타인을 지워버리지 않는 태도,
세계를 바꾸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내 삶만은
폭력의 논리에 맡기지 않겠다는 결심.
나는 더 이상
세상을 구원하고 싶지 않다.
대신,
망가지지 않게 지키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전쟁을 끝낼 수는 없어도,
적어도
증오를 복제하지 않는 사람.
영웅은 아닐지라도,
방관자도 아닌 사람.
그래서 지금 나는
이렇게 말해본다.
평화란,
총성이 멈춘 순간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 어떤 태도로 세계를 지나왔는가의 기록이라고.
우리는 신도 아니고,
절대자도 아니며,
영웅일 필요도 없다.
다만,
흔들리면서도 끝내 자기 자리를 잃지 않으려 애쓰는 존재라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게
이 불완전한 세계에서
내가 선택한
가장 현실적인 평화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