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살기 시작한 이후로 엄마는 자주 쓸데없는 카톡을 보내곤 했다. 나는 성의없이 답장하는 게 일이었다. 만나서 저녁 먹자는 인사에는 내 일정대로 할 거 다 하고, 정말 남는 시간에야 보았다. 내가 카톡을 나누는 수많은 사람들 중 제일 뒷전으로, 제일 건성으로 답장을 보내게 되는 사람이 엄마다. 사랑하는 마음의 크기와는 별개다.
재작년 봄이던가, 엄마가 혼자 저녁 먹기 싫다고 해서 우리 동네로 오시라 했다. 화기애애하게 저녁 먹던 중에 출생률 걱정하는 뉴스가 우리 대화의 화젯거리가 됐다. 이런 일에 관심이 없는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라 더 절망적인 주간이었다. 요즘 여자들이 왜 애를 안 낳는지, 왜 결혼 안 하는지, 대책이랍시고 세우는 건 얼마나 한심한지, 세상이 어찌나 험한지 한껏 적의를 높여 떠들었다. 그런데 엄마가 나의 적의에 불을 지핀다.
"여자들은 애 낳고 집에 있는 게 제일 좋아 그러니까."
"내가 그런 얘기하지 말라는 교육하고 다니는 사람인데 그런 소리가 나오니 엄마는."
"너도 그러니까,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비난 문자 받고 나쁘게 말하는 사람들 많다며. 그 고생하지 말고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편한 거라고."
(이어진 대화 중략)
안그래도 뭘해도 욕만 먹는 일이라 늘 위축되는데 하나뿐인 내편 가족들이 똑같은 말을 하는 게 너무 야속해서, 있는 힘껏 쏘아붙였다. 내가 하는 일을 진심으로 존중받고 응원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 외로워져 못나게 굴었다. 밥맛도 뚝 떨어졌다. 엄마도 그랬는지, 다 먹었으면 일어나서 가자고 했다. 발끈해서 섭섭하다고 하면 엄마가 미안하다고 대꾸해줄 줄 알았는데, 엄마는 주차장에 도착할 때까지도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런 태도에 더 섭섭해져서, 이게 틀린 건줄 알면서도 몸이 움직이질 않아서 엄마가 탄 은색 마티즈가 주차장을 빠져나갈 때까지 손도 흔들지 않고 쳐다만 봤다.
그러고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엄마의 만행(?)을 고해바치면서 다른 사람이 얘기할 때는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엄마가 그러는 건 너무 상처라고 떠들어댔다. 친구도 섭섭했겠다 맞장구쳤고, 통화가 끝날 즈음 보니 한 시간 전에 엄마한테 10개가 넘는 카톡이 와 있는 걸 발견했다. 의절하자고 하면 어떡하지, 내가 너무 매정했는데. 그런 생각에 두려워서 고민고민하다가 열었다.
엄마는 화가 나서 말을 안 한 게 아니라, 어떤 말에 내가 버튼이 눌렸는지 모르니까 더 말을 할 수가 없었던 거다. 자신의 어떤 말 때문에 딸이 더 상처받을지 모르니까 말을 거두고 아낀 거였다. 나는 무수하게 상처를 준 뒤에도 사과를 제대로 못했는데, 엄마는 사과한 것도 사과했다. 나랑 얘기할 때 한없이 약자가 되는 엄마의 말마디마디가 마음이 아팠다.
그러고 나서야 보인다. 평소에 선크림도 안 바르던 엄마가 드라이도 하고 입술도 바르고 왔던 모습이. 딸이 내어준 시간이 귀하고 설레서 분주히 준비했을 시간들이. 엄마가 소태가 있는 것 같다고 말할 때 몸에 정말 이상이 있나 같이 찾아보고 원인을 짚어볼걸, 별 거 아닌 것처럼 가볍게 대꾸했던 내가, 엄마가 혼자 차로 돌아가면서 오만 생각을 떠올리며 얼마나 외롭고 아쉬웠을지. 문자를 보내놓고도 답이 없는 딸 기다리며 얼마나 마음 졸였을지. 내가 이땅의 진정한 불효녀다.
엄마 문자 받은 얘길 하니까 친구가 그런다.
"우리는 엄마 못 이겨, 평생. 그들은 우리가 제일 중요한 사람이라. 아유, 엄마랑 싸우고 이백 받고, 아주 엄청난 장사꾼이구만."
언젠가 엄마가 나를 떠나고 난 뒤에도 평생 이 날이 나를 괴롭히고 끌어안겠지. 매일 따블로 실천해도 다 갚지 못할 사랑을 부지런히 실천하고 살아야 할 텐데- 하는 다짐을, 이효리가 엄마랑 여행하는 프로그램 영상 틀어놓고 일하다가 하는 바람에 남기는 기록. 사람들은 뒤로 돌아누워 우는 이효리가 짠해 울던데, 나는 그 뒤에 엄마가 택시에서 나한테 기대- 하면서 아까 효리의 말을 쳐낸 미안함을 덜고픈 마음이 보일 때 눈물이 터지더라구.
https://youtu.be/qF4bWHTi-4Y?si=V0VA_ieCUD-tlE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