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운전자를 위한 팁#2
지하차도에서의 위기를 넘기고 아빠와의 운전연수를 이어갔다. 평소 말이 많은 편이 아닌 아빠가 조수석에서 쇼미더머니를 방불케 하는 속사포랩을 쏟아내며 도로상황에 대한 해설을 이어갔다. 두 손은 핸들에, 두 귀는 아빠의 설명에, 두 눈은 전방에, 한 발은 두 페달 사이를 리드미컬하게 옮겨 다니며 뇌용량을 최대치로 활성화시켰다. 사고를 내지 않고 정상적인 주행을 하기 위해선 마치 드럼을 칠 때 네 개의 팔다리를 각각 다른 박자로 움직이는 것처럼, 온몸의 기관이 각자 자신의 몫을 다해 완벽한 합을 맞춰내야 했다.
그렇게 가다 보니 어느새 반환지점인 구립도서관 근처까지 왔다. 메인도로에서 좌회전 신호를 받고 들어가니 차선이 없는 야트막한 오르막길이 나왔다. 초행길인 데다, 차선이 있는 도로를 달리다 차선이 없는 도로를 맞닥뜨리니 살짝 긴장이 됐다. 차폭을 가늠할 수 있게 해주는 차선이 없어지니 양옆에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지 감이 잘 잡히지 않았다. 설상가상 동네 골목이라 도로가에 차들이 주차되어 있어서 난이도가 더 높게 느껴졌다.
그때 앞에서 차가 내려왔다. 내가 당황해서 "어... 어떡하지?" 지금 앞으로 달리는 것도 겨우겨우 하고 있는데 후진이라뇨..?? 이건 마치 이제 막 뒤집기를 한 아기한테 걸어보라고 하는 거랑 똑같은 거였다. 나의 급박한 목소리를 들었는지 아빠가 "서행, 서행"을 외치며 오른쪽으로 붙이라고 했다. 거의 정지하다시피 속도를 줄이면서 오른쪽으로 최대한 붙이자 맞은편에서 오던 차가 비상등을 깜빡깜빡하면서 좁은 틈을 알아서 씽~ 하고 지나갔다.
아빠가 늘 하는 말이 있다. 두 발 자전거는 멈추면 넘어지지만 자동차는 바퀴가 4개이기 때문에 멈춰도 넘어지지 않는다고. 그러니 모르겠으면 일단 멈추라고 했다. 판단이 서지 않을 땐 멈추고 천천히 생각을 한 다음, 어떻게 해야겠다는 판단이 서면 그때 다시 출발해도 전혀 상관이 없다고.
그리고 도로 위에는 나보다 훨씬 먼저 운전을 시작한 고수들이 많다. 어려운 구간은 웬만하면 운전고수들이 알아서 다 지나가 주니 이제 운전을 시작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만 다하면 된다고 했다. 이 말이 은근히 위안이 됐다. 나도 언젠가 고수가 된다면(먼 미래겠지만.. 허허) 내가 초보일 때 나를 배려해 준 고수님들처럼,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을 잊지 않고 초보운전자들을 배려하며 운전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누구나 처음일 때가 있었고 실수할 때가 있었으니까.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왔던 길 그대로 돌아가는 거지만 반대편에서 달리는 길은 또 완연한 초행길이었다. 보이는 풍경도 도로상황도 모든 게 달랐으니까. 그래도 이젠 퇴근시간을 완전히 지난 시간이라 도로가 한산했다. 그동안 긴장하느라 뻣뻣해진 목을 풀고 어깨를 스트레칭했다. 아빠도 한숨 돌렸는지 한참 앞에 마중 나와있던 어깨를 시트에 붙이고 간간이 고개를 돌려 창밖을 봤다.
거의 도로를 전세 낸 것처럼 조용한 구간에선 딴 얘기도 살짝씩 하면서 운행하는데 당장 필요한 정보에 대한 생중계를 멈추고 쉬어가는 얘기를 했다.
아빠가 말하길, 영업용 차량은 늘 바쁘다고 했다. 자동차를 이용해서 직접 영업하는 차량을 의미하는데, 특히 택시나 오토바이는 언제든 급정거할 수 있기 때문에 뒤에 따라가게 되면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이 말을 하기가 무섭게 앞에 가던 택시가 길가에 손을 흔드는 손님을 태우려고 비상등을 켜면서 갑자기 멈춰 섰다. 오, 예언자 아빠. 옆차선으로 차를 옮기고는 아빠에게 엄지 척을 해 보였다. 명심하자. 택시와 오토바이는 언제, 어디서든 멈춰 설 수 있다.
또 포터와 화물차, 기타 영업용 차량의 경우 정해진 시간 내에 물류를 배송해주어야 한다든지 상대방과 언제 만나기로 약속된 시간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마음이 급한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차선을 계속 바꾸면서 급하게 추월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 내가 정말 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웬만하면 양보해 주는 게 좋다고 했다.
화수분같이 나오는 운전고수 아빠의 팁을 듣다 보니, 지하차도를 지나서 직선구간에 들어섰다. 화물차가 2차선에서 가고 있었고 난 그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아빠가 주위를 살피더니 1차선으로 차선 변경하고 화물차를 추월해서 가보라고 했다. 이번에도 일단 아빠가 시키는 대로 했다. 육중한 화물차 옆을 지나갈 땐 심장이 쿵쿵 뛰었다. 차선도 괜히 더 좁게 보이고 핸들을 잡은 두 손에도 힘이 바짝 들어갔다.
아빠는, 화물차의 경우 될 수 있으면 최대한 뒤를 따라가지 않는 게 좋다고 했다. 그런 일이 안 일어나야겠지만, 만에 하나 화물차에 적재된 물건이 뒤로 떨어지게 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고 승용차 보닛보다 높은 적재함 구조상 승용차와 화물차가 추돌하게 되면 승용차 운전자의 부상 위험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그러니 화물차를 만나게 되면 아예 빨리 앞질러가거나 아니면 천천히 가거나 해서 피해 가는 게 좋다. 절대 나란히 달리지는 말아야 한다. 아주 위험한 행동이니까.
아빠와의 첫 도로연수였는데 2시간 동안 배운 게 한 보따리였다. 이래서 실전경험이 중요하다고 하나 보다. 백문이 불여일견. 백번 듣는 것보다 직접 한 번 해보니까 감각이 확 생기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운전이 체력소모가 이렇게 심한지 처음 알았다. 주행연습만으로 이미 지칠 대로 다 지쳐서 주차는 시도해 볼 엄두조차 내보지 못했다.
아빠한테 원래 운전이 이렇게 힘든 건지 물어봤다.
"그럼. 목숨이랑 직결되어 있는데 당연히 힘들지."
"헉, 그럼 모든 운전자가 매일 이렇게 운전한단 말이야? 회사 가서 일하기 전에 에너지 다 쓰겠는데?!"
"아, 그거야 처음 운전하면 몸도 엄청 긴장하고 온 신경을 다 써야 하니까 힘들지. 근데 계속 운전하다 보면 습관이 돼서 지금 신경 쓰는 거에 반의 반도 안 써도 자연스럽게 운전할 수 있게 돼. 나중 되면 편하게 운전할 때가 올 거야. 물론 그렇다고 신경을 아예 안 써도 된다는 건 아니야. 사고는 늘 자신을 과신할 때, 또 방어운전에 소홀해질 때, 예상치 못한 순간에 일어나니까. 뭐든 처음이 힘든 법이야."
오호, 그렇단 말이지. 핸들을 두 손으로 꼭 붙잡고 가는 차린이에겐 아직까진 잘 상상이 되지 않는 미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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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집에 오자마자 곯아떨어졌다. 꿈속에서 나는 아무도 없는 도로 위를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신나게 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