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어른'으로 대해준 고마운 사람들에게

어른 연작 1

by 이수빈

“어른이란 뭘까?”

가끔, 한번씩, 뜬금없이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문장이다. 자기 일은 자기가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일까, 아니면 내 몸 하나는 건사할 줄 아는 사람? 그것도 아니면 생각이 성숙한 사람일까, 혹은 주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일까? 글쎄다. 여전히 어른은 어렵다. 다만, 앞에서 말한 이 모든 것들과 적어도 비슷한 방향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자연스럽게 이어서 오는 다음 질문, “지금 나는 어른일까?”

이 문장에 대한 답도 언제나, 그렇듯, 망설여진다. 어른이라고 인정해버리기엔 여전히 아이같은 면이 있고, 그렇다고 인정하지 않기엔 어른이 되고 싶으니까. 대신 이렇게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른에 가까워지고 있는 중’ 이라고.


내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내 주변에 나를 어른으로 대해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막 스무 살이 되었던 나를 마냥 어린 아이로만 보지 않고 어른으로 존중해준 사람들, 그 사람들이 있었기에 나는 아이에서 어른의 세계로 무사히 넘어올 수 있었다. 아이가 어른이 될 때는 아이로서 충분히 보호받아본 경험도 중요하지만, 어른으로서 충분한 존중을 받아본 경험 또한 중요하니까. 여기에 얽힌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꽃망울이 개화를 준비하던 3월, 막 대학에 입학한 스무 살 새내기였던 나는 학교 근처에서 동아리 뒤풀이가 파하고 M언니와 함께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M언니는 07학번으로 17학번인 나와는 자그마치 열 살 차이가 났다. 스무 살과 서른 살. 이렇게 고학번의 선배와 만나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었고, 앞자리가 다른 나이대의 선배는 더욱이 만나본 적 없었다. M언니와는 이날 뒤풀이 자리에서 처음 만났는데, 안전한 귀가를 이유로 집 방향이 같은 사람들끼리 묶었고 자연스레 우리는 꽤 오래 시간 같이 걸어가고 있었다.


집이 점점 가까워지고 그에 반비례해 얘깃거리가 떨어지기 시작했을 때, 분위기가 어색해지는 게 싫었던 나는,


"언니가 보기에는 저희가 되게 애기처럼 보일 것 같아요. 행동이나 생각이 어려보이기도 할 것 같고요. 하하!" 라고 괜히 더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언니는 잔잔히 웃으면서,


"너희가 왜 애기야. 스무 살인데 다 성인이지. 너희가 하는 생각, 행동 다 존중해."


무심히 지나가듯 툭, 던진 언니의 말에 나는 누가 내 머리의 뒤통수를 한 대 때린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방금 전까지 있었던 뒤풀이 자리와는 너무 대조적이었기 때문이다. 뒤풀이에서 대학교 1학년들보다 한 살 많았던 스물 한 살 선배들은 새내기인 우리들을 애기라고 부르며 귀여워했다. 그 분위기에 휩쓸려 새내기들이 더 어리광부리며 행동했던 것도 분명히 있었고. 그런데 지금 나보다 열살이나 많은 언니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다. 어른이니 존중한다는 말. 그냥 지나가는 말일 수도 있었을 그 말이, 나에겐 꽤나 큰 울림을 주었다. 생각해보니 언니는 좀 달랐다. 함부로 새내기들의 말을 재단하거나 어린 아이의 행동으로 치부하지 않았다. 뒤풀이 자리에서도, 함께 걸어온 시간 동안에도. 그 순간 M언니가 참 커 보였다. 나를 어른으로 대해준 사람을 처음 만난 순간이었다.


시간이 흘러 파릇한 새순이 돋아나는 5월, 동기와 함께 다음 수업을 기다리며 카페에서 과제를 하고 있는데 같은 과 선배인 J언니가 우리를 찾아왔다. 별 말 없이 장미꽃 한 송이와 편지를 주길래 우리가 어리둥절해 하니 언니는 오늘이 성년의 날이라며 축하해주려고 왔다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스무 살이 된 새내기들에게 선배들이 장미꽃을 주며 축하해주는 게 우리 과의 전통이었다.


꽃도 물론 좋았지만 더 인상적이었던 건 J언니의 편지였다. 분홍빛 종이에 꼭꼭 눌러쓴 글씨체가 예뻤다. 그 속에 꾹꾹 눌러 담은 마음도. 편지엔 이렇게 써져 있었다.


조금조금, 그리고 어느 순간 어른이라고 불리기 시작하고, 작은 자유를 얻은 대신 너무 큰 책임도 생기고, 어렵고 힘들 때도 많은 게 불안도 한 게 성년의 시작일 테지만, 수빈아 너의 시작을 응원해!


덕분에 성장할 수 있었다. 어른이란 어떤 건지 알려준 고마운 사람들 덕분에.


아이와 어른의 과도기 시기인 스물에 나를 어른으로 대해주고 말과 행동을 해주는 사람들을 만났기에 나는 무사히 어른의 세계에 발을 들일 수 있었고, 내 삶과 선택에 책임을 질 줄 아는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어른은 나이가 되었다고, 성인식을 하다고, 또는 법적지위를 부여한다고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주위 사람들이 어른으로 대하고 그에 합당한 태도를 보여줄 때, 아이는 어른이 된다.


그때 J언니는 고작 스물셋이었다. 그 당시엔 까마득한 선배라고 생각했는데 겨우 세 살 차이였다니. 젊지만 결코 어리지 않은 나이, 그 나이의 무게감과 가뿐함을 가르쳐 주었던 나의 선배들이 생각나는 꽃피는 봄이 왔다.

J언니가 준 성년의 날 장미꽃과 쪽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