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이 도청 당하고 있어.”
중학교 1학년 때, 내 기억에 처음 있는 어머니의 조현병 증상이었다. 그 전부터 어머니는 종종 이상한 증상을 보이셨다. TV를 틀어놓고 대화를 하거나, 라디오를 듣겠다며 굳이 자동차까지 가곤 했다. 때때로 허공에 대고 이야기를 하곤 했지만, 그것이 조현병 증상이라고는 감히 생각하지 못 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까. 어머니는 고작 서른 살에 남편을 잃었다. 7년 후에 어머니가 돌아 가셨으며, 그 다음 해 언니가 자살을 했다.
생각해 보면 미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 어린 나이에 소중한 사람을 하나 둘 잃기 시작한 어머니는 그래도 꿋꿋이 살아냈다. 자신만 바라보는 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들이 의지할 떄는 어머니밖에 없었으며, 마찬가지로 어머니에게도 남은 건 아들 뿐이었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작은 학원을 운영 하셨는데, 같은 자리에 1년 이상 있지 못한 걸로 보아 재능은 없었나 보다. 그러다 초등학교 옆에 학원을 차리게 되었는데, 어쩐 일인지 제법 운영이 잘 되었다.
어쩌면 어머니는 드디어 인생이 풀린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인생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다. 건물주의 부탁으로 그 친척을 학원 강사로 두게 되었고, 강사는 어머니의 학원이 탐이 났던 모양이다. 그 뒤로는 조금 뻔한 얘기다. 건물주가 이런 저런 이유로 어머니를 내쫓고, 그 친척이 학원의 원장이 되었다. 마침내 악착같이 버티던 어머니의 정신줄이 끊어졌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었을까. 탓할 누군가가 필요했기 때문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그동안 참고 버텼던 슬픔이 한 번에 몰려온 것이었을까.
어머니는 자신이 망한 이유가 정부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본인의 아버지가 이북에서 높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나라 차원에서 자신을 방해한다고 믿었다. 자신이 서른 살에 남편을 잃었던 일, 언니가 자살하고 눈 뜨고 학원을 빼앗긴 일, 어머니는 그 모든 일이 누군가의 치밀한 계획이라고 믿었다. 물론 그 모든 일에는 누군가의 치밀한 계획 같은 건 없다. 아버지는 암에 걸렸을 뿐이며, 학원이 망한 이유는 말 그대로 운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어머니에게는 그저 원망할 대상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이 모든 불행이 그저 우연이고 하필 그 우연의 주인공이 자신이라는 것 보다야, 누군가가 자신을 방해하는 게 개연성이 있어 보이니 말이다.
때때로 미디어는 조현병을 아름다운 소재로 담는다. 조현병에 걸린 주인공이 스스로 병을 극복하고 제대로 된 삶을 살아 간다거나, 가족들이 힘을 합쳐 역경을 이겨낸다. 그러나 조현병은 그렇게 로맨틱한 병이 아니다. 누군가 자신의 목숨을 노린다고 여기기 때문에 어떠한 경제 활동도 하지 않는다. 아들의 졸업식에 갔다가 살해 당할까봐 차마 가지 못하며, 아들은 영문도 모른 채 어머니와 함께 찍은 졸업 사진 한 장이 없다.
내게 어머니는 짐일 뿐이었다. 내 유년 시절을 망가뜨린 장본인이며, 지금은 가장의 책임을 떠넘긴 무책임한 어른이다. 때떄로 잘난 어른들은 그래도 어머니인데 잘 하라고 말하지만, 내겐 여전히 어머니가 낯설고 어색하다. 누군가는 내게 힘든 상황인데도 잘 자랐다고 말한다. 물론 그것도 그뿐이다. 그 무엇도 달라지지 않는다. 내 어린 시절은 여전히 망가졌으며, 지금은 가장의 무게를 진 채 외로히 걷고 있다. 조현병은 미디어가 다루는 만큼 낭만적이지 않으며, 나를 성장시키는 고난일 확률도 매우 적다. 어머니는 매일 누군가가 자기를 해치려 한다는 공포감에 살아가며, 나는 그런 어머니를 보며 늙어갈 뿐이다. 그래, 그저 늙어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