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조현병 환자였다. 그녀는 고작 서른의 나이에 남편을, 나는 태어난 지 3년 만에 아버지를 잃었다. 내가 처음 어머니의 이상함을 눈치챈 건 15년 전, 내 나이 14살이었다. 어머니는 마치 누군가에게 말하듯 허공에다 혼잣말을 했다. 밤이 되면 라디오를 듣겠다며 차에 가기도 했다. 분명 이상하긴 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 행동의 이상함을 잡아 내기에도, 그 이상함을 인정하기에도 나는 너무 어렸다.
하루는 어머니가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설명해주었다. 정부에서 당신의 목숨을 노리고 있으며, 정부는 TV와 라디오를 통해 자신에게 말을 건다고 믿었다. 자신이 며칠 전 배가 아팠던 이유 역시 누군가의 독살 시도라고 주장했다. 나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어머니에 대한 모든 감정이 분노로 바뀌었다. 그 안에는 분명 연민이 있었지만, 나는 연민을 베풀만큼 여유롭지 못했다. 나의 어머니가 조현병 이라는 사실이, 내가 조현병 환자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나를 끔찍이도 조여 왔다. 아버지가 없는 것도 모자라 어머니가 조현병 환자라니.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받아드릴 방법조차 떠올리지 못했다.
집에 가면 어머니가 있었다. 방 한 켠에 누워 허공과 대화하는 어머니, 직장은 둘째치고 어떠한 활동도 하지 않으시는 어머니, 어머니가 있는 그 집이 싫었다. 아니, 어머니가 너무 싫었다. 나는 언제나 화내고 있었다. 그러지 않으면 견디지 못했다. 어머니에게는 늘 소리를 질렀고 종종 욕을 하기도 했다. 동네에서는 저 집 자식은 어머니한테 욕을 한다고 수근거렸다. 어머니는 남편도 없이 홀로 자식을 키우는데, 그 자식은 부모 감사한지를 모른다며 손가락질했다.
대학교에 다니면서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어머니는 여전히 병에 시달렸지만, 당장 내 눈에 보이지 않았다. 함께 지내질 않으니 그만큼 내가 받는 고통도 줄었다. 진짜 문제는 군 입대 이후 찾아왔다. 자식이 군대에 가자 어머니의 병세는 매우 빠르게 나빠졌다. 아, 나는 어쩌면 어머니를 제 때 돌보지 못한 벌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자책감에 시달리는 사이 어머니의 상태는 더욱 심각해졌고, 마침내 자신의 아들마저 본인을 죽이려 한다는 망상에 잡아 먹혔다.
나는 결국 어머니를 강제 입원시키기로 했다. 휴가 일정에 맞춰 모든 준비를 끝냈다. 부대에도 입을 맞추기 위해 미리 이야기를 했다. 내 얘기를 들은 행정 보급관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그는 “그럼 자식이 부모를 정신병원에 집어넣는다는데 기분이 좋겠냐?”라고 덧붙였다. 세상에게 나는 여전히 불효자였다.
나는 아직도 어머니를 입원시키던 날을 잊지 못한다. 어머니는 이게 무슨 일이냐며 계속 되물었고, 나는 그저 눈물을 삼켰다.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겠다던 어머니는 자식이 손을 내밀자 그제서야 발걸음을 뗐다. 어머니가 병원에 들어가고 얼마나 울었는지를 모른다. 이게 정말 어머니를 위한 일일까? 그저 내가 편하기 위해서는 아닐까? 그래도 단 한 가지는 분명했다. 단언컨대 내가 제일 불행했다.
어머니는 아직도 병원에 있다. 어서 퇴원시켜 달라던 시절이 무색할 만큼, 너무 잘 지내고 있다. 어제는 어머니에게 지금 행복하냐고 물었다. 어머니는 그렇다고 답했다. 병원에 있으니 억지로 사람을 만나 좋고, 시설도 마음에 들어 계속 있고 싶다고 했다. 그리곤 나는 행복하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자책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던 때도 있었다. 물론 지금도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했다. 호전되는 어머니를 보며 ‘내가 어머니를 조금만 더 신경 썼더라면’이라는 생각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다 최근 ‘네가 어머니를 구한 거야.’라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쏟아졌다. 단 한 번도 듣지 못한, 아니 스스로도 생각하지 못한 말이었다.
생각하기 나름이란 뻔한 말은 하지 않겠다. 그저 살아 남기를 바란다. 지옥 같은 가족 안에서도, 모두가 자신을 손가락질 하는 것 같은 상황 속에서도, 악착같이 살아 남기를 바란다. 울어도 살아서 울고, 힘들어도 어떻게든 버텨 보자. 감히 상황이 나아질 거라고 말하진 않겠다. 그저 여기 꿋꿋이 살던 한 소년을 기억해 주길 바란다. 세상에서 자신이 제일 불행하다고 믿으면서도, 꾸역꾸역 하루를 버텨 낸 소년을 기억해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