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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oklogue Jan 04. 2022

시드니에서 출산하기 3

우리집 사랑의 총량이 복리가 되는 순간

2021년 9월 15일 예정일을 4일 앞두고 진통이 시작되었다. 


와이프가 수축과 통증이 느껴진다고 하여 병원에 전화하니 통증의 간격이 얼마나 되느냐고 묻는다. 불규칙적이고 30분 내외라고 답하니, 병원 오지 말고 수축의 주기가 5분 내외가 되거나 양수가 터지면 오라고 한다. 그렇다 호주는 산모가 조금 아프다고 병원 오면 집으로 돌려보낸다. 


집에서 병원은 20분 거리. 어차피 지금 가면 Panadol (진통제) 이나 주면서 집에 갔다가 다시 오라고 할게 뻔하기 때문에 그렇게 집에 기다렸다. 와이프는 밤새 끙끙거렸지만 소리를 지르거나 짜증을 내진 않았다. 낮이 되어서 수축의 주기가 10분 내외로 줄어들긴 했지만 아직 병원이 받아줄 정도는 아니라서 마냥 집에서 또 기다리기만 했다. 


이건 나의 판단 이었는데 와이프의 의견대로 그냥 낮에 병원에 갈걸 그랬다. 와이프는 아프다고는 했지만 드라마처럼 심한 통증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고, 표현도 잘 하지 않았었지만 와이프가 잘 참는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다. 그렇게 저녁이 되어 수축 주기가 점점 짧아 지고 통증 지속 시간도 길어지고 있었다. 아직 수축이 5분 주기는 아니었지만, 와이프는 너무 아프다고 일단 병원에 가자고 했다. 


Westmead Hospital Birth Unit  분만실

저녁 6시 쯤, 출산을 대비해 준비해둔 병원가방을 들고 병원으로 향했다. 출산을 위해 사설 병원(유료 혹은 개인보험이 있으면 보험으로 커버)과 공공병원(무조건 무료-영주권이나 시민권이 있다면)을 두고 고민을 했었는데 분만실에 들어와 보니 공공병원도 시설이 준수했다. 당시엔 시드니가 코로나로 부분 봉쇄 조치 중이라 병원에 가려고 해도 이틀 전에 PCR 검사를 받고 음성 결과가 있어야 쉽게 분만실로 갔다. 결과가 없거나 양성이면 특별 격리실로 보내지기 때문에 병원 오기 전날 검사를 받은 상태라 다행이었다. 


지난 10개월 그리고 병원에 도착하고 많은 시간이 지나도 의사는 만날 수 없다. 호주가 그렇다. 간호사가 들어와서 이런 저런 테스트를 하고 특히 태아의 상태를 꼼꼼하게 모니터링 했다. 


우리의 계획은 자연분만에 무통주사(Epidural)로 진행하는 것이었다. 겁이 많은 와이프는 임신 초기부터 에피듀 에피듀 노래를 불렀는데, 통증에 대한 두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막상 출산이 가다 올 땐 소리를 지르지도 짜증을 내지도 않고 가끔 아프다고만 하고 꽤 잘 참고 있었다. 


한 두 시간이 흐르고 여전히 수축 주기가 짧아지진 않아서 간호사는 강한 진통제를 주며(모르핀을 준 것 같다) 집에 갔다가 수축 주기가 더 짧아 지면 올래? 밤새 여기 있을래? 선택을 제안 했고, 와이프는  그냥 병원에 밤새 머물기로 했다. 왜냐하면 강한 진통제를 맞으면 어차피 병원에서 상태 모니터링을 위해 몇 시간 있어야 한다.

자정이 넘어서 통증은 심해지지만 아직 출산의 신호는 없었고 새벽이 돼서 생에 처음으로 산부인과 의사를 만났다. 


태아 모니터링 리포터를 보더니 수치들이 자연분만 하기엔 좋지 않을 수도 있다고 제왕절개 (Secarean Section)를 제안했다. 하지만 태아나 산모의 건강이 나쁘지 않았기에 조금 더 기다렸다가 유도분만으로 자연분만을 시도해보자고 나의 의견을 말했고, 유도분만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그 때는 몰랐고 당시에 가장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긴 했지만 그 때 바로 제왕절개를 했어야 했다.  


와이프의 진통은 심해져서 결국 무통주사와 유도분만을 위해 마취사가 왔고, 무통주사는 척추에 구멍을 내고 연결을 하고  유도분만은 혈관으로 옥시토신 (Oxytocin)을 투여 했다. 어떤 물질인지 내가 물었고 간호사가 옥신토신 이라고 하길래 이건 일명 사랑의 호르몬이라고 연애 할 때나 팡팡 나오는 호르몬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자궁 수축 호르몬이라고도 했다. 


간호사가 유도분만을 위해 양수를 임의로 터뜨렸는데, 간호사가 초보인지 한번에 못하고 여러번 찌르고 앉아 길래 와이프 걱정에 조금 무례한 말을 했다. 뭐라고 했는지는 넘어가자. 양수가 터지고 새벽 3시가 넘어가면서 의사가 유도분만을 위해 자궁을 집게 같은걸로 벌리고 나에게 태아를 보여줬다. 작은 구멍 사이로 아이의 머리카락이 보였다. 아들 빨리 나와 화이팅 한번 하고.  


아이가 나오려면 자궁이 9cm 정도 열려야 하고 적어도 시간이 지날 수록 점점 열려야 하는데 시간이 지나도 5cm 이상 열리지 않았다. 문제는 옥시토신의 양을 늘리고 수축이 있을 때마다 태아의 혈압이 떨어졌다. 수축이 멈추면 혈압이 다시 정상으로 올라갔다. 


의사는 다시 우리에게 제왕절개를 추천했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자궁도 잘 열리지 않고 아이에게도 문제가 있어 보였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수술에 동의를 했고 전신마취를 위해 마취사가 다시 척추로 마취액을 투여했다. 


새벽 4시반이 넘어 수술실로 이동했고, 시드니에서 가장 큰 병원답게 수술실이 엄청 많았다. 우리는 13번 시어터에 배정 받고 와이프가 먼저 수술실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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