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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마리 Apr 20. 2024

면담의 이력

요즘은 학생들과의 면담이 내 일정의 중심이다.

그동안은 어쩔 수 없어 학생들과 만났지만

이제는 내가 만나고 싶어서 그들을 찾아 만난다.


변화의 시작은 작년 2학기부터였다.

한국어의미화용론 수업 시간은 유독 질문이 많다.

학생들을 향한 나의 질문도 많고,

그래서 나를 향한 학생들의 질문도 많다.


유독 질문이 많은 학생이 있었다.

단정한 모습에 언제나 눈빛을 반짝이며

한 순간도 한눈파는 모습 없이 그렇게 열심히

수업 중간에, 쉬는 시간에, 수업 끝나고 나서도 질문을 했다.


가볍지 않았다.

때로는 나를 한계까지 몰아가는 질문도 있었다.

내 지식을 한 번쯤 되돌아보게 하거나

내 지식을 다시 확장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했다.


질문과 대답은 쉬는 시간에도 수업이 끝나고 나서도 이어졌다.

이런 학생이라면 대학원에 와서 학문을 계속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학생과 수업 끝나고 저녁을 같이하고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알게 된 건, 그 학생의 꿈은 당장 국어교사가 되어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지금도 그 꿈은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언젠가 대학원에 와서 공부를 하게 된다면

그때가 언제이든 환영할 것이니

우선은 그동안 꿈꾸어 왔던 것을 열심히 추구해 보라고 말했다.


전공 지식에 대한 질문과 대답에서

진로와 인생에 대한 이야기로 나아갔다.

그 학생과의 대화를 통해서 알게 된 것은

학생들이 이런 이야기에 많이 목말라 있다는 거였다.


겨울방학이 시작되고

그동안 써 온 글들을 추려

우선 한 권의 수필집을 내고,

내친 김에 시문집과 실용서도 더 내었다.


그러다가 방학을 훌쩍 보내버리고

어느덧 새 학기를 맞아 다시 학생들과 만나게 되었다.

이제 학생들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내 경험에 비추어 조언을 해 주는 게 무척이나 신나는 일이 되었다.


졸업반을 맞아 아직도 진로 고민으로 마음에 번민 가득한

어느 학생과 마주 앉아 차를 마시며 이야기 나누다가

그래도 이렇게 잘 자랐으니 대견하다는 말에

그 학생이 먼저 눈시울을 붉혔고 그 바람에 나도 말을 잇지 못했다.


무언가 명쾌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해도

그렇게 힘들어하는 학생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인정해 주는 말에

그 학생의 얼어 버린 마음이 녹은 것이었다.


그후로 수업을 듣는 어떤 두 학생과 저녁 약속을 잡았다.

지난 해부터 내 수업을 계속 들어온 학생들이었는데

같이 식사를 하자고 하니 뛸 듯이 기뻐하는 모습이었다.

아담한 파스타집에 가서 인생을 이야기했다.


한 학생이 말하길,

수업 시간에 듣던 전공 외 지식에 관하여

더 이야기 나누고 싶은 이들이 많다고 하였다.

겨울 방학 때 연락을 하고 싶었으나 용기가 없었다고 했다.


당장 만나자고 하였고

그 다음주에 다섯이 모여 밤늦게까지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었다.

두 명은 재학생이었고 두 명은 졸업한 학생들이었다.

소박한 음식과 차를 들며 인생 얘기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겨울 방학 때 힘들여 만들었던 책이 큰 도움이 되었다.

낱낱의 글들도 그 나름대로 나의 생각을 정리해 주었지만

그런 글들이 하나의 책으로 묶이니

서 말의 구슬들이 하나의 멋진 목걸이로 재탄생하였다.


이제 내가 품어 온 일련의 생각들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것을 기반으로 하여 학생들에게 체계적으로 이야기를 들려 줄 수 있었다.

전과 달라진 나의 모습 가운데 또 하나의 것은,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에 더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번주에는 작가와의 만남이 있다.

제수씨가 나가는 독서모임에서 나의 첫 수필집을 읽고 불러준 것이다.

다음 달에는 특강도 기다리고 있다.

대학원생들을 위해 쓴 실용서를 총학생회 간부들이 돌려 읽고 기획했다고 한다.


방학 동안 펴낸 책들은

이번 학기 수업의 부교재로도 쓰이고 있다.

어떤 학생은 이 책을 작년에 알았더라면

자신을 그렇게 가혹하게 대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하였다.


그 학생은

그 책을

자신의 짧은 인생에서

가장 감명 깊은 예술작품이라고 하였다.


그 학생은

나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작가로 만들어 주었다.


급하게 내느라고,

출판사 눈치를 보지 않으려고

그렇게 자가 출판으로 낸 이 책 세 권은

내가 나를, 학생들을 더 잘 이해하는 바탕이 되고 있다.


이제 시작이다.

나도 그렇고

나와 만나는 학생도 그렇다.

면담의 이력은 이렇게 본격적인 시작을 맞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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