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 모든 재앙의 시작,

by 지은

꽤 오랫동안 힘들어도 계속 지속했던 직업이었다.

남들이 듣기에는 그저 멋져 보이는 그런 직업이기도 했다. 애초의 시작점에서부터 강렬히 나를 끌어들였던, 그것은 나를 기쁘게 하기도, 슬프게 하기도, 어쩔 때는 예상치 못한 곳까지 나를 끌고 데려가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였던가, 공부로는 곧 죽어도 대학을 못 갈 것 같은 나는 여느 때처럼 인터넷을 뒤져, 예술로 무얼 해야 먹고살 수 있는가에 대해 며칠 동안 찾아보았다. 고심 끝내 찾아낸 것이, 예술경영이었다.

무언가 예술이긴 한데, 뒤에 경영이 붙어 있어, 꽤나 있어 보이면서도, 엄마를 안심시켜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이거다."

엄마를 간신히 설득해 한 입시학원까지 오게 됐는데, 당시 선생님의 인상이 약간 사짜 느낌이라 믿음이 가지 않았으나, 더 이상의 공부가 싫었던 성격 급한 나는 무작정 하겠다고 나섰다.


첫 번째 수업이 있기 며칠 전, 나는 스스로 서점에 들러, 예술경영과 관련된 책들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그 분야에 대한 흥미를 끌어올리려는 듯한 행위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웃긴 얘다.

서점에는 학교 또는 학원에서 시킨 참고서를 사러 가거나, 누가 서점에 같이 가달라하면, 잡지에 붙어 있는 별책 부록에 더 관심이 많던 내가 제 발로 거길 찾아가 예술이니 경영이니 하는 책들을 뒤적거린다는 게 말이다. 서점 아저씨가 그날따라 나를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는 것은 괜한 기분 탓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대망의 첫째 날 수업, 가방 속에는 비장의 무기처럼 예술경영의 책들이 몇 권 들어 있었고, 노트와 펜을 꺼내, 진지한 표정으로 수업을 들었다. 첫째 날 수업이 무성영화와 관련된 수업이었는데, 이게 도대체 경영과 무슨 연관인진 모르겠으나, 심오하고 지루해서 꽤나 예술적이라 느꼈다. 사실 살짝 졸았던 것 같기도 하다.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은 과제로 영화 한 편을 보고 감상문을 써오라고 하셨고, 이게 끝인가? 예술은 봤고, 경영은? 의문에 찬 나는 원장실로 찾아갔다.

쭈뼛거리며 찾아간 원장실에서 선생님께 나는 "저는 예술경영과에 가려는데, 그 수업은 언제 하나요? 이건 보니까 영화 연출 수업 같던데..." 선생님은 눈길도 주시지 않고, '아 맞다'라는 말과 함께. 예술경영과 관련된 과제를 하나 더 내주셨다.

"그럼 너는 이 과제 하나 더 해오면 된다."

흔들리는 눈동자와 함께 얼떨결에 들고 나온 과제종이와 퇴장한 나는 혼란스러웠다.

경영 수업을 따로 배우지 못해서도 아니고, 생각보다 저 원장 진짜 사짜네 라고 느껴서도 아니다. 단지, 과제가 두 개라서. 이유는 그뿐이었다. 왜 나만 두 개를 해야 하냐 이 말이다.

일단은 본 수업은 영화 연출 수업이었기에, 감상문을 일단 써야 한다는 생각에 영화를 틀었다. (생각보다 단순한 쫄보였기에 과제를 거르는 일은 없었다. 다행인가?) 영화는 너무나도 강렬했다. 지금 것 내가 봐왔던 영화들은 다 무엇인가 싶더라.


충격에 헤어 나오지 못했다. 자비에 돌란의 '아이킬드 마이 마더' 라는 영화였는데, 그 당시 27살의 나이로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아 꽤나 이슈가 되었었던 젊은 감독이었다.


감독만의 화면 색감, 음악, 앵글 모든 것들이 18살의 마음을 매료시켰다. 당시 정형화된 한국영화를 좋아했고, 로맨틱 코미디를 사랑했다. 생각을 많이 하는 예술영화 따위는 싫었으며, 외국영화는 더더욱이 싫어했다. 자막을 읽는 행위 자체가 영화를 온전히 집중하는 데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 글자를 읽기 싫어서였을 지도) 이 모든 나만의 고리타분한 영화 공식을 깬 첫 외국영화였다.

자연스럽게 그 감독에 대해 찾아보고 다른 작품을 찾아보면서, 그 주 내내 그 영화에 대해 친구들에게 말하고 다녔고, 길을 걸을 때는, 그 영화의 ost를 들으며 완벽히 빠져버렸다. 엄마에겐 청천벽력 같은 소식 이었겠지만, 그렇게 스스로 수업 1회 차 만에 예술경영을 때려치우고 영화연출을 공부하기로 마음을 바꿨다.

그렇게 모든 것은 시작되었다.




*모든 사진은 자비에돌란 영화 - I killed my mother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