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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광진 Feb 12. 2020

왜 자산재분배인가?

자산재분배 역사와 재산권에 대한 재고

1.자산재분배의 역사 : 토지제도


역사적으로 자산재분배는 토지를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당시 사회가 토지를 매개로 한 계약사회였기 때문이다. 토지를 재분배하면 농민들은 그 토지를 활용해서 농사를 짓는다. 이것은 소수 지배계급이 땅을 독점하면서 농업생산력이 떨어지는 것과 달리 일할 사람들에게 땅을 나눠주는 것이 농업생산력을 높인다. 즉, 토지를 분배받은 농민들이 국가 생산력을 견인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토지분배 제도인 정전제는 일 할 사람들에게 토지를 분배하고, 그 사람이 죽으면 분배받은 토지를 다시 왕이 회수(왕토사상에 기반)하는 방식이다. 그렇게 회수된 땅은 또 다른 사람들에게 분배된다. 정전제는 통일신라 성덕왕 21년에 시행되었고, 정도전 조선개국 과정에서는 과전법으로 시행되었다. 비록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정약용의 여전법, 이익의 한전론, 유형원의 균전론 등 다양한 모습으로 재현되기도 했다. 이처럼 정전제는의 현재의 자본주의에서 생산수단을 소수가 독점하는 방식과는 대비되는 제도이다.


그렇다면 지금 시대 자산재분배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현대사회가 토지를 생산수단으로 삼는 농경사회는 아니기 때문에 지금은 어떤 자산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에 대해 달리 생각해야 하고, 여기서 우리의 역사적 상상력이 요구된다. ‘정책적 검토’가 아닌 ‘역사적 상상력’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기존에 당연하다 여기거나 안된다고 생각했던 관성을 넘는 발상을 해보자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재산권 개념과 거래의 기본을 이루는 시스템에 대해서 재고해보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의 자본주의시스템, 그 링 위에서만 사고가 맴돌게 된다. 먼저 역사적으로 재산권이 생겨난 배경과 화폐경제/신용경제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2. 재산권에 대한 재고 : 노예제를 합리화한 재산권 개념


배타적 소유권, 재산권 개념은 로크가 최초가 아닌 로마 시대에 등장했다. 로마제국 시대에 노예에 대한 소유가 시작되면서 노예소유주의 소유권을 정리해야 했다. 이것이 재산권 개념의 출발이 되었다. 재산권을 물건과 사람 간의 관계로 흔히 오해하지만, 사람과 사람 간에 발생하는 권리의 문제이다. 내가 무인도에 혼자 있을 때 사과나무가 있다고 하자. 그 사과나무에 대해 내가 재산권을 갖고 있다고 표식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그 섬에는 나 혼자뿐인데. 즉, 재산권은 내 소유물에 다른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권리이다. 

그렇다면 왜 노예의 탄생과 함께 재산권의 개념이 탄생했을까? 


노예제 이전까지 인류는 자연을 공유했다. 자연의 자원을 신으로부터 빌려 쓴다는 개념이다. 그러나 노예는 빌려 쓰는 것이 아니다. 전쟁포로로 데려온 노예의 생사여탈권은 노예주인에게 있다. 노예를 소유한다는 것은 노예를 처분할 권리를 포함했다. 여기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보호받는 배타적 권리가 필요했다. 


사람이 사람을 지배하는 것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자유의 개념도 변화시켜야 했다. 그리스와 초기 로마에서 자유의 개념은 친구가 될 권리, 즉 공동체에 속하는 것을 뜻했다. 그러나 로마 후기 노예제 시기에 이르러서는 자유를 양도 가능한 개념으로 변화시켰다. 전쟁 포로인 노예에게 죽을 것인지 노예로 살 것인지를 묻고, 그 포로가 노예가 되는 것을 자발적으로 선택하면, 노예 스스로 자신의 자유를 주인에게 양도한다는 것이다.


 노예제 사회인 로마가 붕괴되면서, ‘양도 가능한 자유’ 개념이 사라졌다. 그러다가 1400년대에 자연권 사상으로 다시 등장했는데, 당시 자연권은 사람의 자유가 마치 물건처럼 양도 가능한 것으로 보았다. 17세기 로크에 이르러서는 인간의 노동력도 팔 수 있다는 개념으로 정립되어 자본-임노동 관계의 기초가 되었다. 즉 인간의 노동력을 사고파는 현대판 노예제를 합리화한 것이다. 

이처럼 재산권은 사실상 인간이 인간을 소유하고 지배하는 것을 합리화하기 위해 출발한 개념이며 이것이 현대에 임노동 관계의 기본이 되었다.


3. 화폐경제 : 화폐-전쟁-노예제


축의 시대라고 불리는 철기혁명시기에 전쟁의 규모가 커지고 잔혹해졌다. 전쟁에 승리한 국가 제국이 되고, 전쟁포로들을 노예로 삼았다. 이런 전쟁과 노예의 시대에는 화폐경제가 발달한다. 전쟁을 계획하는 국가는 용병들을 모집할 때, 당장 경제적 보상을 해줄 수 없기 때문에 화폐를 통해 미래의 보상을 약속했다. 화폐에 왕의 얼굴을 찍어서, 전쟁 승리 후 전리품을 나눠 가질 수 있는 약속 증서로 활용한 것이다. 그런데 이 전쟁은 기존의 공동체를 파괴하고, 기존의 경제 질서를 망가뜨린다. 사람들이 죽고 없어져서 모든 재산권과 채권-채무 관계도 소멸되는데, 살아남아 이긴 사람들만이 전리품을 가져간다. 그래서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화폐-전쟁-노예제가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시스템이라고 명명한다. 


반면 전쟁이 아닌, 상대적 평화 시기에는 신용경제가 나타난다. 어음을 사용하고, 신용에 기반해서 거래하며 상호부조의 원칙으로 운영된다. 고대사회와 중세사회에서 화폐는 보조적으로 쓰일 뿐 기본원리는 신용과 신뢰로 거래가 이뤄졌다. 


이렇게 인류역사는 신용경제와 화폐경제가 반복되면서 발전해왔다. 큰 맥락에서 역사를 보면, 고대(신용경제) - 축의시대(화폐경제) - 중세(신용경제) - 근대(화폐경제)로 선형적으로 발전했다. 로마제국이 있던 축의 시대와 근대는 역사에서 예외적으로 전쟁을 수반한 약탈의 사회였다. 이 예외적 시기를 제외한 대부분 인류는 신용경제로 살아왔다.


4. 화폐경제와 신용경제의 특징


화폐경제와 신용경제를 특징을 살펴보자. 화폐를 사용하면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지 않아도 거래가 가능하다. 반면 신용경제는 신뢰와 신용을 전제로 하기 떄문에 거래에서 관계가 중요하다. 화폐경제는 분업화된 사회, 개인화된 사회에서 발달한다. 반면 신용경제는 공동체가 필요하다. 화폐경제는 즉 재산권이 강화되는 반면 신용경제는 계약권과 대인권이 강화된다. 화폐경제는 관계가 없기 때문에 모든 부채를 기록하고, 부채 자체가 영원성, 절대성을 가진다. 즉, 채무자에게 혹독하고, 채권자의 권한이 높아진다. 그래서 약탈적 부채 위기를 불러온다. 반면 신용사회는 부채가 절대적이지 않다. 공동체 유지가 더 중요하므로, 부채는 공동체에 복속된다. 채무자에게 관대하고, 채권자의 권한이 제한된다. 중세에 이자 수취를 죄악시 여겼던 것을 보면 그러하다. 이는 공동체 유지를 위한 선제적 조치이다. 


5. 나오며. 신용경제로의 회복을 위해


인류는 공동체를 전제로 한 신용경제로 더 오래 살았다. 지금은 예외적인 화폐경제 시기이고 재산권에 대해서 너무 당연하게 생각한다. 거기에 우리는 근본적인 문제는 던진 것이다. 신용경제로의 회복을 목표로 한 사회대개조 설계가 가능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다. 이것이 역사적 상상력의 출발점으로 두고 다음 글을 이어 나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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