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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작가 May 18. 2017

익숙한 것

사소한 것이 아니다


  이틀 전 회사에 하나밖에 없는 화장실 변기가 막히는 사고가 발생했다. 아무것도 모른 채 변기 뚜껑을 열었다가 소스라치게 놀란 기억이 난다. '범인이 누구인가' 하는 의문은 이내 '어디서 용변을 보아야 하나' 하는 걱정으로 바뀌었다. 회사가 위치한 대림시장 주변은 공중화장실도 없거니와 상가 화장실은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기에 몹시 곤란한 상황이 된 것이다. 혹여나 운 좋게 하나쯤 발견한다 해도 짧지 않은 시간, 적지 않은 횟수의 스킨십으로 친밀해진 기존의 화장실에 비할 바는 되지 못할 것이었다.

  갑자기 들이닥친 재앙에 회사 사람들 역시 모두 난처해졌다. 당장에 카페 영업을 중단해야 했고, 악취를 해결해야 했으며, 마려운 소변을 참아야 했다. 사람들의 표정은 어두워졌고 어딘가 모르게 신경이 예민해진 것 같았다. 원초적인 욕구가 해결되지 않는 불편을 겪으면서 사람들은 공격적이어졌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그 누구도 이러한 일을 예상하지 못했다.

  사실 매일 이용하는 공간이지만 화장실을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손님들이 방문하면 가장 먼저 보이는 카페 인테리어와 메뉴판 구색을 맞추는데 급급했을 뿐, 더럽고 미천한 공간인 화장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익숙해서 그 소중함을 몰랐던 것일 뿐, 결코 등한시할 것이 아니었다. 결국 사람을 불러서 변기를 뚫는 것을 포함한 큰 비용을 초래하고 말았다.

  익숙한 것. 그것은 사소한 것과 동치가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익숙하다는 이유로 그 가치를 잊고 산다. 익숙한 화장실 변기 하나가 부재한 상황도 이렇게 불편할진대, 익숙한 사람이 없어지면 얼마나 힘겨울 것인가. 익숙한 것에 더 잘 하자. 케케묵은 진부한 이야기일지라도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겨야 할 교훈이다. 혹은 익숙한 교훈이라고 할까.
  


by CLNA

[출처] 잡상 031. 익숙한 것의 부재|작성자 HELLO GEN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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