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메일로만 소통하는 회사와 메신저로만 소통하는 회사에 다녀보고 쓴 후기
앞의 글에서는 이메일을 활용한 업무 소통에 대해 다루어 보았다. 이어서 메신저 소통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회사의 규모가 작고 업무의 민첩성이 중요시되는 조직일수록 메신저 소통을 선호하는 것 같다. 지난 수년 동안 업무 메신저는 혁혁한 발전을 거듭해왔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국내의 업무 메신저 시장은 춘추전국시대였다. 회사의 규모에 따라 무료로 공개된 개인용 메신저를 이용하는 곳부터 자체 개발을 통해 자신들의 회사에 특화된 메신저를 만들어 쓰는 곳도 있었다.
공개된 개인용 메신저를 이용하는 경우에는 개인의 삶과 회사의 삶이 잘 분리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무언가를 지시하거나 요청을 하는 입장에서는 편리했지만 주로 지시를 받거나 보고를 하는 입장에서는 개인용 메신저의 사용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개개인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또한, 회사의 여러 시스템과 통합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중으로 등록하거나 동기화가 되지 않는 등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용 메신저를 이용하는 기업들은 아직도 많고, 적절하게만 사용한다면 충분히 실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훌륭한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자체 개발을 통해 메신저를 보유한 기업들도 많이 있었다. 자체 메신저의 유일한 장점은 사내 시스템과의 통합이 잘된다는 것뿐이었던 것 같다. 일단 사용성이 최악이었다. 메신저 장인(?)들이 만드는 것이 아니다 보니 UX부터 반응속도까지 미묘하게 답답한 느낌을 주는 경우가 많았다. 쏟아지는 여러 부서들의 요구사항을 들어주다 보면 바깥에 있는 시장에는 선보일 수 없는 수준의 괴물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았고, 바쁘게 변화하는 여러 IT시스템들과의 통합에 대한 지원의 우선순위도 낮았기 때문에 회사 시스템과 연동이 필요한 경우에만 사용하는 등 점점 자연도태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요즘 업무 메신저들을 너무나도 괜찮은 것들이 많다. 메신저들을 비교 분석하는 글은 아니므로 구체적인 메신저의 이름에 대한 언급은 피하도록 하겠다. 최근의 업무 메신저들은 충분히 추상화된 설정 기능들을 제공한다. 이러한 기능들을 활용해 다양한 업무시스템과 잘 통합하여 심리스 한 업무 소통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개인용 메신저와는 별개로 활용할 수 있어 개인적인 소통 공간과 업무적인 소통 공간을 완벽히 분리할 수 있다.
메신저 소통의 가장 큰 특징은 "즉각적"이란 것이다. 무거운 주제부터 가벼운 주제까지 다양한 주제에 대해 빠르게 소통할 수 있다. 소통 과정 중에 여러 사람들이 동시에 참여할 수 있다. 글로 이야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말로 하는 것보다는 신중하게 되고 적절히 앞의 문맥을 곱씹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어서 밀도 있는 커뮤니케이션을 유지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여러 가지 이모지들을 활용해 잘게 쪼개진 마이크로 리액션을 할 수 있는 것도 덤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반면에 말로 하는 것보다는 실수할 가능성이 낮지만, 충분히 숙고하고 쓰는 글보다 신중할 수는 없다. 가끔 빠른 템포의 대화 흐름 속에서 정신을 집중하지 않으면 실수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나는 이메일로 작성했다면 하지 않았을 것 같은 뉘앙스의 발언을 메신저 소통 중에 하게 되는 경험이 종종 있었다. 물론 메신저의 삭제 및 수정 기능을 활용하여 위기를 무마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동시에 소통하는 채팅창이 많아지면 개별 문맥을 전환하고 유지하는데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든다. 특히, 진득이 앉아서 고민해야 하는 직무 특성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메신저의 문맥 전환이 업무 집중도를 현저히 떨어뜨리기도 한다.
업무 소통 수단으로 메신저만 주로 활용을 했던 시절에 대한 나의 경험을 한마디로 정의해보자면 좀 정신없었던 것 같다. 메신저로 이야기하게 되면 중요한 결정이나 결론을 내리기가 힘들거나 결론을 내려도 뭔가 결론을 내린 것 같은 느낌이 잘 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느꼈다. 이야기가 계속 진행 중 인 것인지 액션을 해야 하는 것인지를 캐치하는 것이 힘들었고, 시간이 흐른 뒤에 그 결정 내용을 다시 찾으려고 할 때도 어려움이 있었다.
결론적으로 나는 업무 소통 수단의 적절한 조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메일만 쓰거나 메신저만 쓸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사안에 따라 적절한 수단을 잘 활용해야 한다. 몸 담았던 회사 중에 결론이 잘 나지 않는 건이 있어서 벌써 몇 주째 똑같이 주간보고에 결정이 필요하다고 올라오는 글이 있었다. 내용을 들어보면 만나서 회의도 했고 메신저로 소통도 했지만 R&R 의 애매함 때문에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내가 제안한 것은 이메일로 보내보시라고 말씀을 드렸다. 제안하는 사람과 제안받는 사람이 서로만의 격리된 공간과 시간에서 충분한 문맥을 가지고 생각을 해볼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줄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당시에 이 의견은 한마디로 거절당했다. "우리 회사는 메신저만 쓰는 게 문화라서 이메일은 안 쓰는 게 좋아요". 거절의 이유는 다소 납득하기 어려웠다. 우리가 지켜야 할 원칙은 소통을 하는 것이지 특정 수단을 강제하는 것이 아니다. 이메일이란 수단을 활용하는 것이 소통을 저해하는 행위 즉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 아니라면 필요에 따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화'라는 단어를 듣고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 나오는 구절이 불현듯 떠올랐다.
자연은 가능하게 하고, 문화는 금지한다.
집단이 무언가를 못하게 막는 것으로부터 오는 우월감을 느끼는 것이 우리의 특징인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