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19일
남부여행을 끝내고, 친구 3명은 일정상의 이유로 새벽에 한국으로 먼저 귀국하게 되었다. 나는 나머지 친구 2명과 함께 울란바토르의 근교지, 테를지로 당일치기 여행을 다녀왔다. 사실, 이미 인턴 초창기에 출장 때문에 약 1달간 테를지에서 살다 온 상황이었다. 호텔이 아닌 게르에서 말 그대로 유목민 생활을 겪었기 때문에 그 당시 나에게 테를지는 여행지의 개념보다는 업무를 위해 가는 곳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테를지는 울란바토르에서 약 1시간 정도면 도착하는 관광지이기 때문에 시간적 여유가 없는 관광객들이 최근 많이 방문하는 추세이다.
울란바토르에서 테를지를 가는 셔틀버스도 존재하지만, 국립공원이다 보니 테를지 내에 관광명소들을 한꺼번에 방문하기에는 접근성이 떨어진다. 그래서 보통은 투어 신청을 하는 편이다. 다행히도 인턴쉽을 했던 회사의 몽골인 상사분이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친구분을 운전기사로 소개해주셔서 개인 승용차를 타고 테를지 여행을 편하게 다녀올 수 있었다.
이날은 날씨가 참 청명했다. 한 시간을 달려 처음 도착한 곳은 '칭기즈칸 마동상'. 이전에 tv 프로그램에서 보고, 몽골여행을 갔을 때 꼭 한번 가보고 싶었는데! 역시나 멀리서부터 보이는 압도되는 동상의 모습. 사진에서 보는 것보다 진짜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주차장에서 내려 계단을 올라가면 1층 박물관 입구가 나온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 박물관 내부에는 몽골의 문화가 가득 담겨있었다. 칭기즈칸을 비롯한 칸(왕)들의 초상화가 걸려있었는데 맨 위에 걸려있는 칭기즈칸의 위치에서 그의 위상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세종대왕 같은 느낌일까?
초상화 옆쪽으로는 또 엄청난 규모의 장화가 눈에 뜨인다. 기네스북에 등재된 세계에서 가장 큰 장화라고 한다. 몽골은 정말 뭐든지 다 큼직큼직하다.
드디어, 마동상의 하이라이트. 박물관 중앙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갔다. 공간이 협소하고, 사람들이 줄을 꽤 서있어서인지 10분 정도 시간이 소요되었다.
전망은 사실 그렇게 대단한 풍경은 아니었다. 한국에서는, 특히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넓은 논밭 뷰를 볼 수 있다 정도. 오히려 반대편에서 압도적인 크기로 우리를 내려다보는 칭기즈칸의 모습이 더 인상적이었는데 그가 차고 있는 벨트에 담겨있는 몽골 국기의 일부 모양을 보니 다시금 그에 대한 몽골인들의 존경심과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이후, 우리는 운전기사님의 추천을 받아 테를지 공원 내에 있는 한 식당에 갔다. 메뉴는 초이왕(몽골식 비빔국수)과 고기볶음. 초이왕은 이전에 먹었던 맛과 비슷했는데 저 고기볶음이 생각 외로 맛있었다. 오랜만에 친구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은걸.
점심을 먹은 후 다음 장소로 향하기 전, 이전에 내가 1달간 업무를 했었던 출장지에 잠깐 들렀다. 관광지가 아닌 진정한 몽골의 자연을 보여주고 싶었달까. 더욱이 내가 살았던 게르와 몽골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친구를 보여주고 싶었다. (정말 힘들었던 시절...)
때마침 지나가는 양 떼들과 말을 딴 유목민. '몽골' 하면 가장 떠오르는 가장 상징적인 사진. 그냥 바라만 보고 있어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테를지 당일치기 두 번째 장소는 '거북바위'이다. 딱 봐도 거북이 같이 않은가? 몽골 사람들에게 거북바위는 학창 시절 수학여행 개념으로 꼭 한 번쯤 오는 곳이라고 한다. 바위 뒷면으로 가면 전망으로 향하는 험한 돌길이 있다. 인위적으로 다듬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안전에 유의해서 올라가자.
거북바위 위에서 보는 테를지 국립공원의 모습. 고비사막에 비해 나무도 많고, 푸르르다.
거북바위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내부에 관광객들이 많이 다녀간 흔적이 보인다. 거기서 안쪽으로 들어가게 되면 돌과 돌사이의 아주 작은 틈이 있다. 사람이 들어갈 수도 있다는 운전기사님의 말씀에 감히 도전해 봤다가 큰코다침. 생각보다 엄청 좁고, (마른 사람들만 입장 가능한 수준) 발을 내딛는 땅이 멀었다. 나중에 올라오는 건 더 힘들다.(누군가 위에서 잡아줘야 함)
힘들게 틈으로 들어가서 본 전망. 생각보다 별거 없어서 당황했지만, 성공했다는데 의의를 두기로 했다.
다음으로 향한 마지막 관광명소는 '아리야발 사원'. 사실 몽골인의 상당수는 무교인데, 그나마 주된 종교는 불교이다. 사원에 가기 위해서 주차장에서부터 약 30분 이상 걸어서 올라가야 하는데, 명언이 적힌 엄청나게 많은 팻말이 오르막을 따라 서있다. 영어로도 적혀있어서 읽어가며 올라가는 재미가 있다. (물론 반대편에도 다른 명언이 적혀있어서 내리막길을 내려올 때는 다른 명언을 볼 수 있다.)
이날은 날씨가 꽤 더워서 정상까지 올라가는데 땀을 한 바가지 흘렸다. 사원은 한국의 불교사원들과 엄청 크게 다른 점은 없었다. 친구들과 의자에 걸터앉아 잠깐 땀을 식히며 여행이 끝나감을 실감하였다.
사원을 내려와서는 목을 축일 겸 이곳에 하나밖에 없는 카페에 들렀다. 사건의 발달은 여기서부터 시작이었다. 현금이 부족해서 친구가 차로 현금을 가지러 간 사이, 카페에 있던 사장님의 어린 아들이 바의자에 앉아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내 휴대폰을 쳐서 바닥에 떨어졌다. 휴대폰 뒷면 액정이 와장창 깨졌고, 이 상황을 운전기사님께 이야기하였다. (운전기사님은 몽골 현직 경찰이셨다.) 운전기사님은 카페 사장님에게 휴대폰 액정 수리비 값을 요구했고, 사장님은 알았다고 대답을 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돌연 표정이 변하면서 앉아 있던 자신의 아들을 때리기 시작하였다. 친구들과 나는 너무 놀라 어쩔 줄 몰랐다. 아이는 울면서 밖으로 도망 나갔고, 아빠도 따라 나갔다. 운전기사님이 아빠를 말렸지만, 그의 화를 다스릴 수 없었다. 아이가 맞는 모습에 나는 마음이 좋지 않아 수리비를 안 받아도 된다는 의사를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사건이 마무리되었지만, 찝찝한 기분이 가시질 않았다. 몽골인은 워낙 야생의 환경에서 커오다 보니 자립심이 강한 반면, 거칠고 강한 기질을 가지고 있는 편이다. 특히, 사람들의 마인드가 한국의 1970/80년도와 비슷하여 가정폭력이 일어나도 타인이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하물며 현직 경찰이 그러한 광경을 목격했음에도 폭력을 제지하지 않을 정도이니... 어쩌면 그 사장님은 우리의 동정심을 유발하고자 우리가 보는 앞에서 폭력을 자행했을 수도 있을 거라고 친구가 말했다. 어떤 이유에서였든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
차를 타고 돌아가는 길에 친구들과 나는 앞서 겪은 충격적인 사건으로 인해 기분이 몹시 좋지 못했다. 조금이나마 우리의 꿀꿀한 기분을 달래고자 운전기사분이 중간에 노상가게에 들러 아이락(몽골식 전통 음료)을 사주셨다. 아이락은 말젖으로 만든 발효주로 시큼한 맛이 특징이다. 몽골 여행 시 도전해 볼 만은 하나 호불호가 많이 갈릴 것 같은 술이다.
저녁즈음에 다시 울란바토르로 돌아왔다. 그래도 마지막 밤은 시내를 구경시켜주고 싶어 친구들을 이끌고, 국영백화점 근처 식당에 갔다. 친구들이 이제껏 몽골 여행하면서 가장 맛있어했던 음식. 한국인에게 몽식은 도전하기 꽤 까다로운 것 같다.
그런 다음 내가 애정하는 'UB street food'에 데려왔다. 비록 평일이라 사람은 많이 없었지만, 분위기가 좋아 여행을 마무리하며 친구들과 이야기 나누기 좋았다.
다음날 ub cab을 불러 친구들을 공항으로 배웅한 뒤,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7박 8일 동안의 여름휴가 끝!
1년이 훨씬 지난 지금 이 시점에서 여행을 돌아보니, 짧은 시간에 정말 다이나믹한 일들이 많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비에 홍수가 나고, 조난을 당하고,... 당시 인턴십 생활 덕분에 몽골이라는 나라에 대해 친구들에게 더 많이 소개해줄 수 있었고, 나 역시 한국에서부터 몽골까지 먼 거리를 다 같이 날아와준 친구들 덕분에 혼자서는 가보기 힘든 여행지들을 방문할 수 있었다. 언젠가 기회가 또 닿는다면, 이번에는 몽골의 겨울을 구경하고 싶다. 여름과는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친구들과 잊지 못할 추억을 남길 인생 여행지를 찾고 있는가? 예상치 못한 변수가 계속 발생하는 곳. 그렇기에 몸은 불편할지라도 광활한 자연에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곳. 기회가 닿는다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몽골로 떠나보자.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날인, 지금이 바로 적기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