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도의 새롭게 펼쳐질 세계를 기대하며
지난 연말 크리스마스이브에 나는 비장한 각오를 했다. 이번 주말 동안 진지한 마음으로 새해 계획을 세우겠다,는 각오였다. 크리스마스이브에 크리스마스와 전혀 상관없는 각오를 한 셈이었다. 그날 나는 예약했던 발레 수업까지 빠지면서 동네 새롭게 오픈한 찜질방으로 향했다. 그날은 발레 수업 마지막 날이고 수업에 가지 않으면 수업비만 날리는 셈이었지만, 나의 머릿속에는 뜨끈한 물에 몸을 담그고, 구석구석의 묵은 때를 벗겨내서 새로 태어난 기분으로 새해를 맞이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었다.
목욕을 갔다 온 후 여유 있게 밥을 먹었고, 집안 청소를 했다. 조금만 쉬자고 생각하며 넷플릭스로 '재벌집 막내아들'도 봤고 낮잠도 잤다. 개운한 몸, 적당히 부른 배, 따뜻한 침대, 따사로운 햇살, 적당한 흥미를 유발하는 드라마. 그렇게 토요일 하루를 보냈다. 아기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한 축복과는 전혀 상관없는 마음가짐으로.
저녁이 되니 조금씩 마음이 무거워졌다. 오늘 책상에 한 번도 앉지 않았네. 이번 주말에 내년 한 해를 계획하기로 마음먹었는데, 오늘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하루가 갔구나, 싶은 마음에 주섬주섬 노트북을 켰고, 지난 한 해 내 생활의 중심이 무엇이었는지를 되돌아보았다.
다른 해와 비교하여 2022년에는 내게 의미 있는 한 해였다. 막연하게 생각했던 글쓰기에 관심을 갖고, 글쓰기에 좀 더 다가갔던 한 해였다.
2022년 초 에세이 강좌에 등록했다. 좋은 강사님 덕분에 에세이를 쓰는 기본 틀을 갖출 수 있었다. 막연하게나마 한 해 열심히 써서 에세이 공모전에도 도전해보면 좋겠다는 꿈도 꾸게 되었다. 그 자신감을 바탕으로 에세이 강좌가 끝난 후에는 백일 동안 글을 쓰는 과정에 등록했다. 백일동안 매일 글을 쓰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나의 사고는 글을 쓰는데 적합한 사고로 훈련되었다.
에세이가 가진 자기 고백적 성향의 글이라는 한계를 뛰어넘고자 매일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 글감이 없을 때는 소설을 쓰기도 했다. 정식 소설의 조건에 부합해보면 되지도 않는 글일 수도 있겠지만 시작된 이야기는 결말을 지으려고 노력했고, 매일 무엇인가를 쓰는 것에 의의를 두었다. 백일 글쓰기 과정이 끝난 후에는 소설 창작수업도 등록했다.
치열했던 2022년 상반기에 비하면 하반기에는 다소 느슨하게 보냈다. 인풋이 있어야 아웃풋이 있다는 생각에 독서 토론 모임에도 참가해 보고, 다른 사람들의 글을 많이 읽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매일 글을 쓰지 않았다. 한 주에 두세 편 쓴 글을 개인 블로그에 저장했다. 사적인 내용과 솔직한 감정을 바탕으로 쓴 글일수록 비공개로 설정하는 일이 잦아졌고, 처음부터 독자를 염두에 두지 않은 비공개글은 퇴고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기에 완성도도 떨어졌다. 이런 시간이 길어지면서 무엇인가 글쓰기에 있어서의 외적 자극이 필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쓰기에 적당한 강제성과 이에 대한 책임감, 잠재적 독자에 대한 의식적 글쓰기를 위해서는 브런치에 응모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 관심만 갖고 실천에 옮기지 못했는데 이제 더 이상 미룰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한 해를 마감하는 길목에서, 새해맞이의 준비가 필요했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주제로 글을 쓰는 것이 좋을지 생각해 보았다. 내가 글을 쓰고자 하는 방향이 무엇인지, 어떤 분야가 나만의 독특한 경험과 생각이 녹아있는 글을 쓸 수 있을지 막막했다. 고심하며 글을 썼고 브런치 작가에 응모했다. 그것이 내가 새롭게 시작될 2023년을 준비하는 자세라고 생각했다.
신청 사흘 만에 답이 왔다. '귀하를 브런치 작가로 모십니다.' 마냥 기쁘진 않았다. 브런치 작가가 되는 것은 내가 들인 수고만큼의 허들이었겠구나, 싶었다. 그렇지만 낙방한 것보단 기분 좋은 답변이었다.
브런치 작가로서 내게 좋은 점은 이제 최소한 개인 블로그에 일기인지 끄적거림인지 모호한 글을 혼자 쓰고 공개도 못한 채 '비공개'로 설정해 놓는 일은 없을 거라는 점이었다. 비공개로 설정하는 글은 '비공개'일만큼 딱 그만큼의 수고가 들 뿐이기 때문이었다.
이제부터 브런치에 글을 올릴 때 나는 지난 백일 글쓰기 프로젝트에 참가했을 때처럼 매일 글쓰기에 부담을 가질 것이다. 한편으론 뭐든 써나갈 것이다. 막연하게나마 독자를 의식해서 쓰는 글이니만큼 글을 쓰는 과정에서 많은 고민을 할 것이고, 몇 번의 퇴고를 거칠 것이고, 자기 검열을 하기도 할 것이다.
때로는 그 과정이 힘들 수도 있지만 나는 내 앞에 펼쳐질 새로운 세계가 벌써부터 흥미로워졌다. 어쨌든 새해에는 웃을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 그것이 브런치를 통해서라면 더욱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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